세기의 빅매치다. ‘고질라’와 ‘킹콩’의 대결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관전하는 쾌감을 선사하는, 오랜만의 블록버스터 영화 <고질라 VS. 콩>가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괴수들의 싸움 순위를 결정짓고 말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는 듯한 대결을 그린 <고질라 VS. 콩>을 본 씨네21 기자들의 시사 첫 반응 역시 극명하게 갈렸다. 영화를 보기 전 고질라를 응원할지 킹콩을 응원할지 싸움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봐도 재미있는 관람이 될 것 같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고 이들의 대결을 관람한 후기를 전한다.
괴수들의 전쟁을 지지하는 송경원 기자
워너브라더스와 레전더리 픽처스가 공동 기획한 몬스터 시네마틱 유니버스(몬스터버스)의 최종 목적지. 이 한 판 대결의 무대를 위해 여기까지 꾸역꾸역 빌드업 해왔다. 지구공동설(지구의 속이 비어 있으며, 남극과 북극에 그 비어 있는 속으로 들어갈 입구가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지구의 진짜 왕이신 알파 타이탄의 자리를 두고 최후의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운다.
싸워야 한다,는 명제를 먼저 세워 두고 나머지는 최소한 말이 안 되지만 않게 갖다 붙였다. 당연히 이야기는 허술하고 인물들은 공간이동을 하며 논리는 무시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그런 걸 염두에 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오직 거대 괴수의 액션을 어떻게 실감나게 재현할 것인지에 전부를 걸었다.
기본적으로 익숙한 괴수, 재난물이라기보다는 종합격투기(혹은 프로레슬링)를 특등석에서 관람하는 쪽에 가까운 감각이다. 인기 프랜차이즈 스타인 고질라와 콩이 각자의 기술과 장기를 퍼레이드처럼 펼쳐놓으며 승부한다. 당연히 인간은 조연 혹은 거의 배경이며 괴수들의 다툼으로 인한 인명 피해나 비극 같은 건 돌아볼 새도 없다. 전작 <콩: 스컬 아일랜드>(2017)나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가 현미경과 망원경을 오가며 괴수와 인간 양 쪽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시도라도 했다면 이번엔 카메라의 초점은 온전히 콩과 고질라의 1대1, 혹은 2대1 매치에 맞춰져 있다.
자잘한 것들을 모두 도외시 한 채 완성한 장면은 사이즈의 쾌감을 제대로 구현했다. 때로 어떤 결과물에서 크기는 그 자체로 정의다. 왜냐면 이건 단순히 외형만 키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크기를 키운다는 건 중력의 무게, 현실의 장벽, 이야기의 압박을 모두 짊어진다는 의미다. <고질라 VS. 콩>은 (일정부분 실패하고 대부분을 포기했지만) 그 질량의 쾌감만큼은 제대로 구현한다. 표면적으로 제대로, 진심으로, 사정 봐주는 일 없이 다 때려부순다. 주무대가 되는 홍콩은 섬, 그리고 빌딩의 스카이라인이 빽빽한 도시라는 점 때문에 선택되었겠지만 홍콩이라는 도시가 무너져가는 모습를 볼 때 왠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물론 아쉬움도 크다. 일단 이야기와 캐릭터의 디테일을 다 포기했다. 크기를 증명하기 위해 몸이 울릴 정도의 사운드를 100퍼센트 활용하는데, 괴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까닭에(이건 장르팬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인간 따윈 의미 없다. 그럴 시간에 고질라와 콩 클로즈업 한번 더 한다.) 전반적으로 완급 조절이 없다 보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몸이 지친다.
같은 이유로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이 감상은 대형화면과 심장을 울리는 스피커 사운드 아래에서만 유효하다. 이걸 극장 개봉없이 HBO Max에서만 공개했다면 거의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한편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다면 코로나 이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이렇게 다 때려부수는 식으로 힘과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영화는 이제는 기획되기 어렵다. 여러 의미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어쩌면 최후의 괴수물이 아닐까 싶다.
괴수들의 난투극이 몹시 불편한 김현수 기자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고질라와 콩은 왜 서로 싸워야 하는가? 일단 두 개체 모두 지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들은 <고질라>(2014)와 <콩: 스컬 아일랜드>(2017),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에 출현하는 동안 인류에게 그들 자신보다 더 위협이 될 천적에 맞서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고질라와 콩이란 캐릭터를 인간과 공생하길 바라는, 일종의 휴머니티가 느껴지도록 묘사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영화를 볼 때 고질라와 콩이 도심 한복판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 머릿속에는 수십 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있겠지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다. 벤 애플렉의 배트맨이 헨리 카빌의 슈퍼맨에게 반감을 갖게 되는 그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두 괴수가 왜 싸우고 있는지 설득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면서 액션만 거창하게 보여주니, 할로우어스(지구공동설)이라는 새로운 설정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별 감흥이 없었다.
예상 가능한 서사 전개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캐릭터의 매력도 부족하다.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매디슨 러셀 역의 밀리 바비 브라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데 서사의 허점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다. 캐릭터나 서사의 인과 관계를 잠시 잊어도 될 만큼 장르적 재미, 이를테면 액션의 쾌감이 출중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가정일 뿐, 화면에 잡히지도 않을 극중 인물들의 생사 문제 먼저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혼란스럽게 따분했다. 물론 과거의 일본 <고질라> 시리즈가 걸어왔던 길을 오마주하는 ‘거대한’ 설정의 등장,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노골적으로 오마주하는 장면 등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할 관객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연출을 맡은 애덤 윈가드 감독은 최근 <블레어 위치>(2016), <데스 노트>(2017) 등 원작을 영화화하거나 프랜차이즈 세계관을 이어 나가는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고, 이번 <고질라 VS. 콩>에서도 역시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 레전더리 픽쳐스와 워너 브러더스가 펼쳐 보이는 ‘몬스터버스’의 세계관 아래에서 이번 영화는 모나크라는 조직의 기능을 상당히 축소시키고 새로운 음모의 비중을 늘렸다. 이 역시 <퍼시픽 림> 시리즈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어쩌면 ‘몬스터버스’ 세계관과 <퍼시픽 림>의 세계관을 이어 나가려는 포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괴수들의 적을 결국 외계 생명체로 묘사할 것이냐, 근미래의 다국적 기업, 즉 인간으로 묘사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러려면 캐릭터와 기본 설정에 대규모 수술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