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이른 봄, 소설가 창석(연우진)은 7년의 해외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온다. 새로운 소설을 준비하던 그는 계획했던, 혹은 계획에 없던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카페에서 만난 미영(이지은)은 꿈을 읊듯 자신의 과거를 전달하고, 출판사 후배 유진(윤혜리)은 창석의 소설과 지난 사랑에 관해 담담히 말한다. 창석과 우연히 마주친 사진가 성하(김상호)는 아픈 아내와 함께 버텨온 시간들을 나열하고, 바텐더 주은(이주영)은 창석의 이야기로 자신의 텅 빈 기억을 채우려 한다. 창석은 말을 덧붙이는 대신 경청하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화답한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창석에게 흔적을 남긴다. 어느 날, 창석은 망설임 끝에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도 없는 곳>은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과 <페르소나> 중 단편 <밤을 걷다>, 그리고 <달이 지는 밤> <조제> 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이 그러했듯 공간과 인물을 제한하고,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꾀하는 김종관 감독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다만 <더 테이블>처럼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잇는 대신 창석을 중심으로 5개의 이야기를 천천히 쌓는 방식을 택한다. 상실과 죽음에 대한 논의가 반복되며 침체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전한다.
빛을 최소화해 인물들이 어둠에 잠기듯 연출한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김종관 감독의 전작에서 합을 맞췄던 연우진 배우를 비롯해 이지은, 이주영, 윤혜리 등이 등장해 맡은 인물을 단단히 채운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선정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