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년 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해 곧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비평가이자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파타 모르가나>의 내레이터이기도 했던 로테 아이스너의 회복을 위해, 걸어서 가면 로테 아이스너가 살아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고, 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 혼자 도보 순례를 했다. 그 여정의 기록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이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이것은 마치 헤어초크의 미발표 영화를 글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헤어초크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유용할 영화감독의 내면일기, 풍경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의 과정이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저주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을 피하여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헤어초크는 너무도 자주 폭풍에 홀딱 젖어 밤에 묵을 곳을 구할 때마다 수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글로 읽으면서도, 헤어초크라는 사람을 알고 있음에도 역시 방을 빌려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방랑자처럼 느껴진다.
왜 당장 가장 빠른 차편으로 파리로 가지 않고 도보 이동을 선택했을까. 그 길 위에서 헤어초크는 순례객이었으니까. 내가 기꺼이 내 육체를 고난에 빠뜨리는 동안, 청컨대 그 사람의 생명이 말미를 얻기를. 그는 마침내 아이스너 앞에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는 같이 불을 끓이고 물고기도 멈추게 할 거예요, 라고.” 헤어초크가 아이스너를 만난 뒤 적은 마지막 페이지의 글은 절창이다. 후기를 대신한, 로테 아이스너에 대한 찬사 글 역시 마찬가지.
1942년생인 헤어초크에게 1896년에 태어난 아이스너는, 1960년대 독일의 젊은 영화감독들이 작가로 인정받도록 적극적 지지를 표한 은인이었다. “로테 아이스너,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의 묵직함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