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는 스파이물을 만들려는 연출자들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더 스파이>는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실제 활약했던 소련 스파이 올레그 대령의 실화를 다룬다. 그는 당시 소련에서 활약했던 스파이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방대한 양의 정보를 서방에 넘긴 인물이다. 각본가 톰 오코너는 올레그 대령과 함께 정보 전달을 담당했던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의 인간관계에 집중한다. 여기에 도미닉 쿡 감독의 촘촘한 연출이 더해져 사람 냄새 나는 첩보물이 탄생했다.
<더 스파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만큼 기본에 충실하다. 흐루쇼프의 폭주가 두려웠던 올레그 대령(메라브 니니제)은 미국에 기밀문서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CIA 요원 에밀리(레이첼 브로스나한)는 영국 MI6에 공조를 요청한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고자 평범한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을 고용하여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정보망을 구축한다. KGB의 감시를 피해 진행되는 기밀문서 전달 과정은 기본에 충실하고 다소 느슨하기도 하지만 종종 우아한 풍모를 엿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묘미는 후반부에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자연스레 우정을 쌓은 올레그 대령과 그레빌은 KGB에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놓이자 서로를 향한 믿음을 발휘한다. 애초에 스파이 활동을 시작한 대의명분, 인류애를 전제로 한 이들의 드라마는 그야말로 끈끈하다. 전반부 첩보물 특유의 긴장감 등은 다소 아쉽지만 후반부 드라마는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가 더해져 빛을 발한다. 특히 혹독한 심문 속에서도 믿음을 꺾지 않는 그레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육신을 빌려 생생히 되살아난다. 장르 특유의 서스펜스보다는 섬세한 연출과 연기가 돋보이는, 웰메이드 스파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