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너의 이름은.
2021-05-06
글 : 송길영 (Mind Miner)

지난주 유튜브 속 나의 눈길을 끈 영상은 “카메라 잡아먹었다는 김선호의 추억여행씬”이었다. 2009년 연극으로 데뷔해서 2017년 TV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장장 8년 넘게 현장의 무대를 지키며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 김선호는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지금도 꾸준히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해변으로 추억여행을 가서 동영상을 찍는 모습에 엉뚱하게도 연기 감독을 자처하는 행인과 어촌의 촌부들이 참견을 하고 카더가든의 발라드가 오버랩되는 엄청난 혼종의 7분여는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도록 긴장시킨다.

마지막 대사에 이르면 본인도 이것이 무엇인지 헛갈려하는 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영상은 다름 아닌 캐논의 카메라 광고였다. 정신없이 몰아쳐도 제품 기능 소개와 효용까지 빠뜨리지 않아 정체 모를 동영상을 광고라고 분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드라마와 코미디, 뮤직비디오와 광고가 포함된 이 영상을 그저 광고라고만 치부하기가 미안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의 짐작처럼 이 광고 역시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의 작품이었다. 이미 10분이 넘는 전작 영상 ‘연극의 왕’에서 아역 김강훈으로 시작해서 유아인과 신구, 엄태구, 배성우, 조여정, 오정세, 박희순, 이경영, 양동근을 캐스팅해 1천만이 넘는 뷰를 달성해 그야말로 ‘천만 관객’의 전력을 보유한 이 팀은 이제 섭외에 있어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유추된다. 연기력 하나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엄청난 배우들이 한꺼번에 모여 그들의 기량을 뽐내는 무대를 제공했으니, 펼쳐지는 형식이 정극과 개그 중 어떤 것이라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광고를 보기 싫어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했지만 이런 광고들은 검색까지 해서 보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댓글마저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로 이제 예술과 광고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어쨌든 찾아서 즐겁게 보고 감동을 느끼며 메시지를 받아 여운을 느낀다면 어떤 것이든 무슨 상관일까.

광고로 예술을 지향하는 ‘돌고래유괴단’의 작품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또 하나의 지점은 영상이 끝날 때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것이다. 노동을 금전과 바꾸고 산출물의 어느 곳에도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현대의 노동자들은 어느덧 이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신처럼 추앙받는 포드가 모델T를 생산하기 시작한 1908년 우리는 대량생산의 혁명에서 장인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기 시작했고 회사의 브랜드에 가려져 각자의 기여가 명시되는 영예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길들여진 것이다. 보상의 가장 큰 혜택은 과정을 함께한 이에게 마지막 캐스트에 이름을 남기도록 배려하고 그의 이력서에 공인된 필모그래피가 허락되는 호혜적 협업이 아닐까 생각하며, 각자가 ‘너의 이름’들을 다 함께 새겨주는 사회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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