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김성훈 기자의 유준상 감독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 출연기
2021-05-12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손발이 어색해, 영화 어렵네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남자(유준상)를 거울을 통해 쳐다보는 여자(정예진).

배우 겸 감독 유준상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그는 지난 3월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의 촬영을 끝낸 뒤 후반작업을 하는 중이고, 네 번째 장편영화 시나리오 초고를 이미 다 쓰고 수정하고 있다. <씨네21> 김성훈 기자가 감독 유준상의 열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유준상 감독의 영화 <깃털처럼 가볍게>에서 배우로 출연한 것이다. 얼떨결에 초짜 연기자로 유준상 감독의 신작에 합류한 김 기자가 촬영 현장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기까지 과정을 지금부터 생생하게 전한다.

제작진의 숙소이자 이야기의 배경인 전주 한성호텔 앞에서 남자 역을 연기한 유준상 감독이 여자 역할을 맡은 배우 정예진에게 연기를 주문하고 있다. 정예진은 <브이아이피> <마녀><너의 여자친구> <슈팅걸스> 등에 출연한 신예배우다.

“잘 지내? 새 영화를 찍을 건데 네가 출연했으면 좋겠어.” 두달 전 유준상 배우 겸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 <아직 안 끝났어>(2018), <스프링 송>(2020) 등 장편영화 세편을 찍은 그는 “네 번째 장편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하는데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도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내게 어떤 연유로 출연을 요청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워낙 뜻밖의 제안이라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하겠습니다”라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의 제안을 덥석 문 건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을뿐더러 배우들의 연기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차에 대본을 보냈다는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깃털처럼 가볍게>.

두 번째 촬영 장소는 전주 영화의 거리 근처 ‘객리단’에 있는 한 멕시코 레스토랑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걸어오다가 여자가 먼저 나가는 인서트 장면을 찍었다.

캐스팅된 영화 <깃털처럼 가볍게>는 만난 지 4년이 되어가는 연인의 관계를 그려내는 음악영화다. 주인공 연인은 장거리 연애 중이다. 영화는 여자(정예진)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남자(유준상)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오래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이나 둘의 감정은 아슬아슬하고, 그로 인해 이들의 심리와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날 아침, 유준상 감독은 직접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 <깃털처럼 가볍게>를 “들어보라”고 보내주었다. 차분하면서도 설레는 감정이 충만한 곡인데 영화 속 남녀의 알쏭달쏭한 마음과 잘 어울렸다.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 될 거라고 한다.

내가 연기할 캐릭터는 ‘개미’라고 권혜란 프로듀서가 알려주었다. 개미는 남자의 방송국 동료 PD다. 격의 없이 주고받는 대사를 보니 남자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후배쯤 되어 보인다. 개미가 사람 이름인지, 아니면 성실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편의상 지은 이름인지는 시나리오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출연 분량은 딱 한 장면이고 대사는 단 두줄이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현장에서 짐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걱정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캐릭터를 잘 준비하는 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산나물 처녀>에서 배우 윤여정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던 정다원 감독(<걸캅스> <너와 나의 계절> 연출)은 “연기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인물이 가진 특징을 찾아내 그것을 통해 어떤 인물인지 표현하는 것이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외양을 신경 써서 준비하는 것도 인물을 잘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며 “기자님처럼 대사가 한두줄 있는 배역이 준비하기 어렵다. 감독이 원하는 느낌을 잘 예측해 준비한 뒤 현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남자사용설명서> <킬링 로맨스>를 연출한 이원석 감독은 일상적인 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대사를 하지 않을 때 휴대폰을 보거나 다리를 떠는 등 일상적인 행동으로 인물을 자연스럽게 채운다”며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은 대사에만 집중하다보니 다른 행동들이 무척 어색하다”고 말했다.

카메라에 달린 모니터를 확인하는 박성훈 촬영감독, 유준상 감독, 배우 정예진(오른쪽부터).

그들의 말을 들으니 갈 길이 먼데 오히려 “준비를 많이 하지 않고 현장에 가라”는 조언도 있었다. 한 배우는 “유준상 감독이 김 기자를 캐스팅한 건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김 기자가 가진 모습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클 듯”이라며 “그게 맞다면 현장 상황에 맞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개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많지 않지만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개미의 빈칸들을 채우기로 했다. 방송국 PD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함께 라디오방송을 한 적 있는 김호정 TBS PD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PD는 “PD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송국에서 살다시피하기 때문에 항상 방송국 출입 카드를 목에 건 채 캡을 쓰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참고 삼아 여러 옷을 입고 사진으로 찍어 유준상 감독에게 보내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감독에게 컨펌받은 의상, 출입 카드, 캡, 슬리퍼 등 도움이 될 것 같은 의상과 소품들을 챙겼다.

“문밖으로 좀더 나와야지. 다시 해봐.”(유준상 감독) “(국어책 읽듯이) 여자 친구? 곧 생방 들어갑니다.”(김성훈 기자) 김성훈 기자의 어색한 연기 때문에 유준상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 모두가 ‘빵’ 터졌다.

드디어 촬영 당일인 3월 20일 전주, ‘열정 만수르’라는 별명답게 유준상 감독의 촬영 현장은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쳤다. “일주일째 전주에서 촬영했고, 이날이 마지막 촬영”이라는 권혜란 프로듀서의 말을 들어보면 다소 지쳤을 법도 한데 제작진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송재호, 이우진, 권혜란 등 나무엑터스 매니저와 쥬네스엔터테인먼트 직원 네댓명을 스탭으로 꾸린 것도 현장 상황을 융통성 있게 반영하고, 또 기동성 있게 움직이기 위한 목적이리라. “하루에 많을 때는 100컷 넘게 찍을 때도 있어”라는 유준상 감독의 장담대로 이날도 한성호텔, 한옥마을, JTV 전주방송 등 서너 군데 로케이션을 하루 동안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맨 마지막 촬영 장소인 JTV 전주방송국에서 기자가 촬영할 ‘신4’의 차례가 왔다. 라디오방송 직전 한국에 막 도착한 여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남자에게 개미는 “여자 친구? 곧 생방 들어갑니다”라고 알려준 뒤 ‘엄지 척 하고 지나가’(지문)면 된다. 방송 시간이 가까워져도 스튜디오에 들어오지 않는 남자에게 ‘남자에게 시간 다 됐다고 사인’(지문)을 주며 “곧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감정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장면은 아니지만 대사와 지문을 정확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게 중요한 연기라고 판단했다.

역시 남자의 후배 PD로 깜짝 출연한 정혜강 JTV 전주방송 PD가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남자에게 빨리 결재해달라고 닦달하고 있다

나름 공들여 준비했는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엉거주춤 로봇 같은 자세로 “여자 친구? 곧 생방 들어갑니다”라고 국어책 읽듯 말했더니 “컷!” 하고 유준상 감독을 포함한 스탭들이 ‘빵’ 터졌다. 유준상 감독은 “김 기자, 개미는 남자의 가까운 후배니까 ‘어, 선배 여자 친구 있네?’ 하며 놀리는 느낌을 살려줘야 돼”라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테이크에선 유준상 감독이 알려준 느낌을 무난하게 살렸지만 “곧 들어갑니다” 대사를 너무 일찍 해서 엔지가 났다.

유준상 감독은 “내가 ‘아니아니, 그게 아니구’ 대사하면 김 기자가 들어와야 돼. 집중해”라고 말했다. 풀숏, 오버더숄더숏(어깨너머로 찍는 앵글), 클로즈업까지 다양한 앵글로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겨우 개미에 익숙해지려던 차에 “오케이!” 사인이 났다. “성훈, 수고했어”라는 유준상 감독의 말을 듣자마자 다리가 풀렸다. 생각처럼 몸과 입이 움직이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배우들과 스탭들이 한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김성훈 <씨네21> 기자, 박성훈 촬영감독, 정예진 배우, 유준상 배우 겸감독, 동시녹음 기사인 송재호 나무엑터스 실장, 조감독·촬영보조 등 멀티플레이어 이우진 나무엑터스 과장, 프로듀서 권혜란 쥬네스엔터테인먼트 실장, 정혜강 JTV 전주방송 PD(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준상 감독의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는 KT 자회사인 스토리위즈와 제작사 겸 배우 매니지먼트사인 바로엔터테인먼트가 양익준, 김태훈, 김인선, 한제이, 정승훈, 이민섭 감독과 함께 ‘AFTER’라는 주제로 제작하는 미드폼 콘텐츠 중 하나다. 7편의 영화는 현재 후반작업 중이고 KT 미디어 채널 등 여러 플랫폼에서 공개되며, 시즌제 프로젝트로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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