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료 제작자들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더군요. 씨네2000은 씨네21 자회사냐고요. 아마 두 회사가 같은 해(1995년)에 생긴 데다 이름도 비슷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함께 가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씨네21>의 창간 15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에 참석한 영화 제작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의 말이다. <여고괴담> 시리즈를 기획한 눈 밝은 제작자이자, 한국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수많은 영화계 행사의 연사를 맡았던 그는 언제 어디에서든 좌중을 웃음 짓게 하고 귀 기울이게 하는 진귀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씨네21>과 오래오래 함께하자던 이춘연 대표가 지난 5월 11일, 71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 얼마 전 막을 내린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의 시사회, 지난 3월 후원이 중단됐음을 알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앞날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는 등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는 영화와 함께였다.
빈소에서 만난 많은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한국영화계에서 이춘연 대표의 존재감을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고 소식을 듣고 <씨네21> 앞으로 코멘트를 보내온 박찬욱 감독의 회고는 이춘연 대표가 어떻게 영화인들의 기억 속에 대체 불가한 존재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적확한 부연이다. “대표님이 한국영화계에서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였던 까닭은 한 사람이 양립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인데 어른이고, 유머러스하지만 필요할 때에는 권위가 있었다. 한마디로 교장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 좌파와 우파 사이, 메인 스트림과 인디펜던트 사이, 자본과 아티스트 사이, 인더스트리와 영화제 사이를 오갔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박찬욱 감독의 말을 들으며 불현듯 이춘연 대표가 과거 <씨네21>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계가 신당동 떡볶이타운이나 신림동 순대타운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내가 잘해야 저 사람도 잘되고, 저 집이 잘돼야 내 집도 잘된다”라며 서로 가치를 30%만 양보하고, 자존심도 30%만 양보하자는 자신만의 ‘양보 운동’ 이론을 설파했었다.
연출부 막내부터 영화계 원로에 이르기까지 이춘연 대표가 많은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상생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이상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시대, 한국영화계의 구심점이 되어주던 ‘맏형’ 이춘연 대표의 부재는 ‘함께’이기에 많은 것들이 가능했던 한 시대가 정말로 막을 내렸다는 상실감을 많은 이들에게 안겨주는 듯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