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배우상과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을 수상한 홍성은 감독의 첫 장편
2021-05-19
글 : 남선우

지난주 막을 내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배우상(공승연)과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을 수상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곧바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홀로 된 상태를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하고, 재정의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기, 1인분의 생활상이 내포한 위태로움을 가만히 파고드는 이 작품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한 홍성은 감독의 첫 장편이다. 이는 홍 감독이 “혼자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낄 무렵 우연히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주인공 진아(공승연)의 이야기도 비슷하게 출발한다.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진아는 높은 실적을 쌓아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보이지 않는 고객을 상대할 줄 아는 진아는 실상 주변에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직장에서도 누군가와 부대끼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도 진아와 살가운 관계로 남지 못한다. 이웃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옆집에 사는 남자가 건넨 인사가 불편할 따름이다. 그러나 복도에서 마주치던 그 남자가 집에서 홀로 목숨을 잃고 나서부터 진아의 일상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 그는 죽은 지 한참 후에 발견되었으며, 방 안에 있던 수많은 포르노 DVD들에 깔려 죽었다. 이를 알게 된 진아가 공연히 탐정이 되거나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잔잔하던 1인 가구에 스민 불안의 동심원을 한 꺼풀씩 건드려본다.

그 파장을 가능케 하는 인물들은 모두 진아의 주변인이다. 첫째로 진아가 교육을 맡은 직속 후배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앳된 수진(정다은)은 혼자가 편한 진아와 달리 둘이 되고 싶어 한다. 수진은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에 능숙해지고자 진아에게 다가가는 것도 맞지만 사회에서 만난 첫 사수이자 실력 있는 선배와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진아는 수진을 밀어내기 바쁘다. 이런 수진을 바라보는 진아의 마음과 어느새 회사 생활에 지쳐가는 수진의 마음이 교차된다.

그러는 와중 진아를 흔드는 또 다른 사람은 그의 아버지(박정학).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아버지와 먼 거리를 유지했던 진아는 어머니의 사망으로 아버지를 이전보다 자주 맞닥뜨린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설치했던 본가의 거실 CCTV 화면에 아버지가 잡히면서, 진아는 이어폰을 끼고 그를 관찰한다. 낯선 여자와 춤을 추면서도 교회 사람들과 아내를 추억하는 그의 모습은 진아를 미묘하게 자극한다.

죽은 옆집 남자가 살던 집에 이사 와 진아의 새로운 이웃이 된 성훈(서현우) 또한 그렇다. 성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전 세입자를 애도한다. 그를 지켜보는 진아는 관성적인 불편함과 관성을 뚫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오랜만에 생동하는 감정을 경험한다. 그 감정은 진아를 누군가에게 연락하도록 만든다. 그들의 통화는 영화가 차분히 기다려온 하이라이트에 다름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미덕은 세태를 조명하기 위해 인물을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누구도 일방적인 선인 혹은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각자의 입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많이들 느끼지만, 느낀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외로움이란 감정”에 관심을 둔다는 홍성은 감독은 분절된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고, 다양한 소품을 활용해 인물이 타인을 차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빛과 소리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도 잦다. 자발적 고독과 나란히 있으면서도 구별되는, 본능적인 외로움을 시청각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영화는 그 안에서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재촉하지 않되 작고 조용한 변화의 태동을 감지한다. 그렇게 시종 건조하던 진아의 일상에 작은 물방울이 맺힐 수 있음을 설득한다. 현재를 관조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시선과 행동의 방향을 점쳐보고 실천하는 태도가 매력적인 작품.

CHECK POINT

도약, 공승연

공승연 배우는 무표정 속에 감정을 응축하다 꺼내 보이는 진아를 훌륭히 소화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배우상 심사단은 “공승연 배우는 첫 장편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음에도, 영화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열연을 펼쳤다”며 성공적인 스크린 안착을 격려했다.

분할된 공간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원룸, 콜센터, 혼밥에 최적화된 식당, 파티션으로 구획된 업무 및 학습 공간 등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킨다. 영화는 이 공간들을 마치 칸칸이 나눠진 모눈처럼 그린다. 자신의 칸에 박혀 앞만 보는 인물과 눈 맞추며 나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2002 월드컵이라는 집단 기억

콜센터 고객의 목소리로 특별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곽민규 배우는 2002년 월드컵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대사를 읊는다. 영화에는 이 대사가 콜센터 신입사원이자 2002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신입사원 수진에게 닿아 빚어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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