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국 상업영화의 대표 장르로 자리 잡은, 또 한편의 하이스트 영화. 이번엔 대범하게도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 범죄를 다룬다. 송유관이 터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드릴에 힘을 줘야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는 최고의 기술자 핀돌이(서인국)는 고급 양복에 향수를 뿌리고 다니며 멋을 놓지 않는다.
여기에 핀돌이의 기술을 카피해 사기를 치고 다니는 접새(음문석),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땅밑 설계도를 전부 꿰고 있는 나과장(유승목), 원양어선을 오래 타면서 남다른 괴력을 갖게 된 큰삽(태항호)까지 모여 정유 회사 후계자 건우(이수혁)가 제안한 위험한 작전에 함께하게 된다. 이들이 은밀하게 작업을 할 장소로 낙점된 허름한 호텔의 의문스러운 카운터(배다빈)는 핀돌이 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수년 전 핀돌이에게 수갑을 채웠던 형사 만식(배유람)도 이들이 수상하다고 느낀다.
호텔 지하 벽 너머에서 대부분의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파이프라인>은 규모보다 아기자기한 아이디어에 승부를 건다. 가령 시끄러운 드릴 소리를 감추기 위해 호텔에 딸린 노래방에서 괴성을 지르며 경찰의 주의를 끄는 설정은 친근하고 한국적이다. 벼랑 끝까지 몰려 결국 막장의 길을 선택한 도유 범죄자들보다 진짜 막장인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그리 새로울 게 없지만, 상대적으로 스크린에서 생소한 배우들의 앙상블을 밀어붙인 시도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