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쇼러너’(Showrunner)라는 단어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드라마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 방’(writer’s room)에 소속된 모든 작가들을 총괄하고, 매 에피소드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쇼러너는 그야말로 시리즈의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다. ‘떡밥의 제왕’이라 불리는 J. J. 에이브럼스처럼 국내에서 막강한 팬덤을 형성한 쇼러너도 있으나, 메이킹 필름이나 블루레이 코멘터리를 통해 종종 관객을 만나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할리우드 감독들에 비해 미국 드라마 쇼러너들의 제작기를 직접 들어볼 기회는 드물었다.
그러던 차에 김성훈 취재팀장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미드 <굿 닥터> 제작자로 잘 알려진 엔터미디어콘텐츠 이동훈 대표를 취재하던 중 할리우드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쇼러너로 활약 중인 한국계 시나리오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다. 멀게만 느껴지던 미국 드라마 업계에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약진하는 창작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진 바 없는 할리우드 ‘작가 방’의 문을 두드려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 ‘작가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하다면, 어떤 이들이 미국 유수 드라마의 쇼러너와 시나리오작가가 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김성훈, 이주현, 임수연 기자가 취재한 ‘할리우드 한국계 시나리오작가 5인’ 인터뷰에 주목하길 바란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애플TV+의 창립작인 <파친코>의 쇼러너 허수진 작가부터 시리즈 <슬리피 할로우> <니키타>의 앨버트 김 작가, 시리즈 <스노우폴> <저스티파이드>의 레너드 창 작가, 시리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의 김보연 작가, 시리즈 <파친코> <테일 오브 더 시티>의 정한솔 작가까지 할리우드에서 쇼러너,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는 한국계 창작자들을 화상으로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도 다르고, 커리어를 쌓아나간 과정도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답변에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건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존중의 말이었다. 쇼러너가 되기까지 ‘작가 방’ 멤버 중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이들이 앞으로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에서 만들어낼 유의미한 변화가 사뭇 기대된다.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미국 시리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인 만큼, 이번 기획 기사에 소개된 작가 5인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크레딧을 반갑게 확인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