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은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동네의 모든 비디오 가게에서 항상 대여 중인 영화였으니까. 두편은 기본이고, 다섯편씩 들여놓은 가게들도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가 담긴 플라스틱 박스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들어오냐고 물어보면 사장님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이제 빌려갔으니까 아마 사흘 후?”
그리고 사흘 뒤에 가면 또 같은 대답을 들었다. “이런, 이번에도 사흘 후에 와.”
속이 탔다. 학교에 가면 온통 <쥬라기 공원> 이야기뿐이었다.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정말 그렇게 재밌어? 그렇게 무서워? 그렇게 신나? 그래서 나는 엄마를 달달 볶았다. 제발 좀 빌려다 줘. 진짜 보고 싶단 말이야. 결국 엄마는 비디오 가게에 몇번이나 찾아갔고, 여러 번의 시도와 예약 끝에 결국 <쥬라기 공원>을 집에 들고 왔다!
막상 영화를 보게 되자 나보다 동생이 더 흥분했다. 그 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동생 ‘팀’처럼 공룡을 좋아했고, 그 이름들을 줄줄이 읊는 애였으니까. 비디오가 도착한 순간부터 영화를 틀기 직전까지 동생은 계속 물었다. “티라노사우루스도 나와?”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 중 <쥬라기 공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오는지 아닌지는 바로 이제 확인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가족 극장이 막을 내린 후, 나는 동생과 함께 공룡 이름들을 외우고 다녔다. 그 시절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금 나는 공룡 이름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그리고….
하지만 <쥬라기 공원>이 무서운 영화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어떤 장면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아이들이 탄 차를 공격하는 장면. 물잔이 흔들리던 그 장면! 렉스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랩터가 달려드는 장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무서운 장면은 이것이다. 아이들이 부엌에 숨어 있을 때, 랩터 두 마리가 그 방으로 들어온다. 놈들은 천천히 사냥을 한다. 먹잇감을 찾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느릿느릿 걸어온다. 바로 옆에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 그 순간, 랩터는 발톱으로 바닥을 두번 톡톡 두드린다. 여유를 부리듯이, 그 순간을 즐기듯이 톡. 톡.
그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온 가족이 다 그랬던 것 같다. 모두들 영화 속 아이들처럼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아이들이 제발 공룡들에게서 탈출하기를, 저 말도 안되는 공원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이번에 다시 본 <쥬라기 공원>에서는 그 장면들이 거의 비슷하게 등장했다. 비슷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덜 무서웠기 때문이다. 의아했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나는 왜 더이상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 걸까. 옛날 영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를 여러 번 본 덕에 어느 부분에 어떤 장면이 나오리라는 걸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제 무언가 변해버린 것이다.
더이상 아무도 비디오를 보지 않는다. 차례를 기다리며 사흘을 보내는 일은 없다. 하루라도 먼저 빌리기 위해 비디오 가게에 예약을 걸어놓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일도 없다. 보고 싶은 장면을 보기 위해 비디오를 앞으로 되감고, 빨리 감고, 멈췄다 다시 트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비디오를 사 모으는 일이 없다. 어지간한 책보다 두꺼운 그 비디오들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도, 그걸 모으는 걸 멈추지 못하는 그런 일은 더이상 없다.
아쉬운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걸 볼 수 있는 지금. 디지털 시대를 사는 것 역시 옛 시절 못지않게 낭만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일이니까. 다만 그 시절의 <쥬라기 공원>이 더이상 없다는 것뿐이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당연한 일이었다. 조용히 있을 만한 장면이 별로 없었으니까! 동생은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났다며 흥분했고, 나는 가만히 좀 있으라며 핀잔을 줬다. 부모님은 둘이 계속 싸우면 비디오를 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쥬라기 공원> 그 영화 자체만은 아닌 것이다. 비디오를 빌려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긴장한 가족들과 함께 투닥거리며 비디오를 틀고 숨죽여 첫 장면을 보기 시작하는 것. 함께 흥분하고 무서워하며 어깨를 맞대고 앉아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것. 거대한 공룡을 보고 놀라서 입을 벌리는 것. 저 공원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그 순간 시작되는 공룡들의 공격. 물잔이 흔들리는 장면에서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함께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톡. 톡. 바닥을 두드리는 바로 그 소리. 잊지 못할 소리.
그러니까 내게 <쥬라기 공원>은 다시 볼 수 없는 영화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소용없다. 그 시절의 감성은 되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때문에 이 영화는 언제나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본 걸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보지 않았으면 더 후회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나는 <쥬라기 공원>을 또 찾아보고 싶다. 그 시절 본 장면을 또 보고 싶어 비디오를 되감았던 것처럼, 일시정지를 하고 가만히 쳐다봤던 것처럼, 여전히 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들.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는 분위기들. 이제는 이름을 다 잊어버린 공룡들의 모습. 무엇보다 <쥬라기 공원>은 스필버그 감독의 베스트 작품이 아닌가. 더불어 영화를 다시 본 덕에 새로운 추억도 생겼다.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일찍 사라져버려서 아쉬웠던 과학자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새뮤얼 L. 잭슨이었다. 그리고 새틀러 박사는 바로 로라 던이었다! 그녀의 젊은 시절을 보고 입을 떡 벌리는 일이 또 내게 언제 일어나겠는가. 역시 ‘쥬라기 공원’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