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배우 탕준상, 진심을 다해 귀를 기울이면
2021-06-10
글 : 김현수
사진제공 넷플릭스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이나 언어의 다양한 의미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에서 탕준상이 연기한 주인공 그루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자신의 세계에 침입한 삼촌 상구(이제훈)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만 같은 소년 그루는 아빠가 가르쳐주고 물려준 도덕률을 충실히 따르며 세상에서 소외받은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며 산다.

자칫 기능적으로 흘러갈 수도,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경계선에 놓인 캐릭터지만 탕준상의 진심이 담긴 연기는 시청자들을 오열하게 만들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한 뒤 영화 <영주> <나랏말싸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에서 앳된 얼굴로 등장해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무브 투 헤븐>의 그루는 세상의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야 하는 캐릭터다. 캐스팅 당시 김성호 감독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감독님께서는 소속사에서 찍은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그루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셨고, 또 <나랏말싸미>에서 내가 염불을 외는 장면을 보며 <무브 투 헤븐>에서 그루가 가오리 주문을 외우는 장면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루 역을 맡게 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캐스팅 확정 전에는 그루가 귀엽기도 하고 어떨 땐 카리스마도 있어서 멋있는 친구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확정되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뀌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어렵겠다는 생각이 더 들기 시작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아이라는 설정 때문에 부담됐을 텐데, 캐릭터를 연구할 때 다른 작품의 배우들 연기를 참고하지는 않았나.

=국내 배우들이 연기한 작품보다 해외 작품을 참고했다. 미국 드라마 <굿 닥터>를 보며 주인공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의 연기를 참고했는데 윤지련 작가님은 <스탠바이, 웬디>라는 영화를 추천해주시기도 했다. 왠지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자꾸 따라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느낌만 참고해 내 것으로 소화하려 했다. 또 감독님이 관련 자료를 많이 갖고 있어서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시선 처리부터 행동을 어떻게 할지 하나하나 연구했고, 목소리 높낮이, 톤, 말하는 속도 등에 신경 썼다. 촬영 땐 내 감정을 누르고 그루의 감정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루의 행동을 연기할 때는 사전에 정해진 동작을 계산해서 연기했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연기한 적도 있나.

=감독님은 자유롭게 놔두셨다. 즉흥적으로 연기했을 때는 감독님이 포인트를 짚어주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이런 순간에는 몸을 이렇게 흔들어달라든지 포인트만 자세히 짚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했던 것 같다. 그루가 감정을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서 내 감정이 요동칠 때는 머릿속으로 그루의 생각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긴 대사 지문을 외워서 빨리 말하는 연기가 어렵지 않았나.

=보통 그루가 급한 상황이거나 흥분했을 때 대사를 길게 나열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시험 공부할 때는 잘 안 외워지는데 대본으로 대사를 읽어 외울 때는 잘 외워지더라. 심지어 공부하는 모습을 연기해야 할 때도 대사가 안 외워진다. (웃음) 그외에는 사전에 충분히 반복 연습한 뒤에 현장에 갔기 때문에 연기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빨리 많은 말을 뱉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고민이 됐다.

-산스크리트어를 외우는 <나랏말싸미>의 학조, 북한말을 구사해야 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은동이에 이어 이번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 그루다. 매 작품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연기해야 했을 텐데 어떤 연기가 가장 어려웠나.

=음, 북한말 연기가 제일 쉬웠다. 촬영장에 북한말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믿고 따르면 됐다. 산스크리트어는 막막했다. 유튜브에서 관련 발음을 천천히 반복 청취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발음대로 적어가며 외웠다. 그런데 과정은 아주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이 드라마의 중심 관계에 놓인 아빠와 삼촌을 각각 연기한 지진희, 이제훈 배우와 함께 작업한 소감도 궁금하다.

=아빠(지진희)는 소품 촬영할 때 처음 만났는데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작품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래서 함께 촬영에 들어갈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제훈 형에게 최고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기에 대해 물어보고 기술적인 얘기 외에도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형한테 많이 물었고 또 조언도 들었다. 형한테 의지하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홈스쿨링을 거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겠다.

=홈스쿨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친구들이 학교 이야기할 때는 부럽기도 했지만 이제 대학교가 있으니까. 수시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집에서 가까운 학교 위주로 알아보고 있다. 검정고시를 치른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서 잘 알아봐야 한다.

-5월 31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 연기하는 윤해강은 어떤 인물인가. 홍보할 때는 ‘겉바속촉’ 캐릭터라 소개하던데.

=배드민턴 소년 체전 우승을 목표로 노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해강이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타고난 운동 센스를 지니고 있고 지기 싫어하며 질투심과 승부욕이 강한 친구다.

-‘겉바속촉’ 윤해강과 비교해 탕준상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나.

=나는 한번 마음이 열리면 아낌없이 퍼준다. 괜히 튕기고 그러지 않는다.

-작품을 끝낸 후의 마음이야 매번 다르겠지만 <무브 투 헤븐>의 그루를 떠나보내며 어떤 생각을 했나.

=그루는 건조하게 감정 표현을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을 잘하고 진심을 지닌 친구다. 어느 누가 그처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루처럼 순수하고 진정성 있게 행동하고 사람들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루에게서 배운 점이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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