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인 더 하이츠>가 6월 30일 국내 개봉한다. 원작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뮤지컬 <해밀턴>의 극본, 작사, 작곡을 모두 맡은 린마누엘 미란다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그가 19살때 이미 완성한 이야기다. 뉴욕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꿈과 사랑을 좇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담은 <인 더 하이츠>는, <스텝업> <나우 유 씨 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존 추 감독 감독과 원작자이자 프로듀서인 린마누엘 미란다의 합심으로 완성되었다. 성공적인 뮤지컬은 성공적인 영화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이 담긴 <인 더 하이츠>의 첫반응을 옮긴다.
남선우 기자크레이지 펑키 라티노! <인 더 하이츠>는 단숨에 감독 존 추의 전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제목을 비틀어보고 싶게 만든다. 모든 것이 크다. 많다. 화려하다. 거창하다. 폭발적이다. 그래서 과히 신난다. 142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타오르는 열기에 피로감이 일 법도 하나 오히려 선명해지는 건 팬데믹 이후 너무 오랫동안 스크린 속 축제를 참아왔다는 사실이다. <인 더 하이츠>에는 그런 힘이 있다. 모든 순간을 하이라이트로 터뜨리는 이 뮤지컬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멀리 했던, 그래서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경험을 상기시킨 후 그 경험을 턱 끝까지 차오르게 제공한다.
영화의 외적인 동력은 영화가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메시지와 손깍지 끼듯 어우러진다. 고향을 가슴에 품고 소박한 꿈을 키워가는 남아메리카계 이민자들은 대여섯 명이 불쑥 모여도 거리 두고 앉을 필요가 없던 일상에의 그리움을 자극한다. 이웃, 친구, 가족과 격의 없이 부대끼던 언젠가의 기억을 소환한다. <인 더 하이츠>의 인물들에게 금세 정들고 몰입할 수 있는 이유다. 나아가 주인공들이 긍지를 느끼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발언하는 몇몇 대목은 2008년 초연한 원작 뮤지컬에서 했던 이야기를 왜 2021년의 영화에서 다시, 더 강한 목소리로 할 수밖에 없는지 끄덕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초 미국에서 날아온 <소울>과 <미나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운동을 앞세우지 않고도 그들 각자의 문화를 필름에 녹여내 존재감과 연대감을 분명히 하는 텍스트들의 연이은 등장이 반갑다.그런데 <인 더 하이츠>의 첫 감상을 전하기 위해 세계의 상황과 우리의 곤란을 굳이 끌어들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직관적으로 즐겁고 지속적으로 흥겹다. 아무 생각 없이 봐도 그렇고 어떤 생각을 하며 봐도 그렇다. <분노의 질주>가 불꽃을 틔우고 <크루엘라>가 덥혀놓은 극장가에 <인 더 하이츠>가 불을 지르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임수연 기자코로나 블루를 떨쳐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처방을 묻는다면,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를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랜 시간 사람들과 부대끼며 노래와 춤을 즐기지 못했던 관객을 순식간에 위싱턴 하이츠로 소환하고 배우들의 에너지에 탑승시키는 영화다.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모든 장면을 밀도 높게 구성해 쉬어가는 구간이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일례로 <인 더 하이츠>에서 복권 당첨의 기쁨을 만끽하려면 대형 수영장 하나는 빌려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싱크로나이즈드 군무를 해야 한다.
워싱턴 하이츠에는 다양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우스나비에게 워싱턴 하이츠는 그의 가족이 이민을 온 곳이고, 그는 고향 도미니카 해변으로 돌아가 다시 상점을 열고 싶어한다. 우스나비가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했던 베네사는 도시로 나가 패션 디자니어로 성공하고픈 꿈이 있고, 우스나비의 어린 사촌 소니는 시민권을 얻어야 한다. 이들의 고민은 젠트리피케이션과 불법 이민, 라틴계 인종 차별 등과 같은 무거운 문제와 결부되며, 원래 뿌리가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이민자들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이 기본적으로 박혀 있다. 이러한 소재가 얕게 다뤄지고 쉽게 고민이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을 완벽히 피해가긴 어렵겠지만, <인 더 하이츠>의 음악과 춤은 매일같이 일상과 투쟁하지만 결국 건강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설득하는 위력이 있다.
동명의 원작 뮤지컬을 만든 린마누엘 미란다는 무대 음악의 경계를 창조적으로 무너뜨려왔던 아티스트이다. 그가 영화에서도 음악을 맡아 랩과 R&B, 흑인과 라틴음악을 넘나들며 극에 등장하는 라티노와 흑인들의 삶을 영화와 일체시키는 역할을 한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존 M. 추 감독(<스텝업> 시리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게는 실제 워싱턴 하이츠 길거리를 재료로 안무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인 더 하이츠>의 무대는 맨홀 뚜껑과 발코니, 소화전과 지하철 플랫폼을 통해 완성된다. 중력을 거스르는 어느 마법 같은 시퀀스는 영화에서만 가능한 그림이다. 아프로 쿠바, 룸바, 맘보 등에 기초를 두고 응용한 안무부터 팝 탠스, 라이트핏, 재즈 댄스, 현대 발레 등 다양한 춤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그렇게 <인 더 하이츠>가 쏟아내는 ‘크레이지 다이나믹 라티노’의 물량 공세에 정신을 뺏기다 보면 클라우디아로 대표되는 쿠바계 미국인 노인들의 가르침, ‘인내와 신뢰’라는 삶의 지혜에 어느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 더 하이츠>에는 실제 워싱턴 하이츠에서 있었던 정전 사태에서 영감을 얻은 장기간 대규모 블랙아웃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40도가 넘는 더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랑은 영원히 전해지지 않을 것만 같으며 현실의 벽은 높다. 그럼에도 다시 전등이 들어오는 것처럼 한때 순진하게 마음에 품었던 불꽃은 다시 점화될 수 있고 우리의 끈질긴 회복력이야말로 늘 내일을 이어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늘 비관적으로 답했지만, <인 더 하이츠>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낙관주의에 속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