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안시가 주목한 두 애니메이션 감독의 대담…“다른 환경, 인간에 대한 다른 태도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힘”
2021-06-17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무녀도> 안재훈 감독 × <클라이밍> 김혜미 감독
김혜미, 안재훈(왼쪽부터).

‘프랑스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안시에서는 매년 6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영화제가 열린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이하 안시영화제)는 1960년 칸국제영화제가 애니메이션 부문을 독립 발족한 애니메이션인들의 축제다. 안재훈 감독의 <무녀도>는 2020년 제44회 안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특별상–콩트르샹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6월 17일 개막하는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이하 평창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무녀도>는 김동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귀가 먼 딸을 홀로 키우는 무당 모화(소냐)가 주인공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가난으로 절에 보낸 어린 아들이 기독교도가 되어 나타나고, 모화는 아들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모화는 “세상이 급변하야 천지신명은 사라지고” 자신의 신력이 떨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가운데 한이 어린 뮤지컬 넘버가 흐른다. <무녀도>는 주제와 음악의 힘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작화와 한국 무용의 선을 옮겨놓은 듯한 모화의 움직임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2D애니메이션이다.

김혜미 감독의 첫 장편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은 2021년 안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과정으로 완성된 <클라이밍>은 안시영화제뿐 아니라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상, 제6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하 울주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고 6월 16일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클라이밍>의 주인공 세현은 클라이밍 선수로, 세계대회를 앞두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악몽을 꾸다 깨어난 어두운 밤, 세현은 한통의 전화를 받는데, 발신자는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다. 임신한 평행세계 속 세현은 현실의 세현에게 임신으로 인한 불안을 전이시킨다. 3D 장편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은 실사 공포영화로 만들었어도 좋을 만큼 독특하고 이채로운 평행세계를 세계관으로 한다.

<무녀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각자의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 먼저 묻고 싶다.

안재훈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모양을 가질 때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과 다른 색깔을 띨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다. 결국 사람을 다루는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 김혜미 감독님의 <클라이밍>도 한국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가지는, 사회와 개인에 대한 것들을 진실되게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하더라. 이 점이 감독님 작품의 장점이자 한국 애니의 장점이다.

김혜미 안재훈 감독님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봤다. <무녀도>를 먼저 본 뒤 데뷔작 <소중한 날의 꿈>을 봤다. <무녀도>는 춤과 노래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고, 목소리 연기자도 전문 뮤지컬 배우 소냐였다. 뮤지컬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 애니메이션영화가 있는지 몰랐는데 그 도전에 매우 놀랐다. 음악감독이 있지만 곡과 가사에 대한 고민은 물론 춤동작 표현에도 고증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엔딩에서 주는 상징적이고 아련한 분위기가 내게 확 다가왔는데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두 작품의 색깔이 달라서 놀랐고 정말 잘 봤다. (웃음)

-각각의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도 묻고 싶다.

안재훈 한국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영화로 만드는 연속 작업 중 <무녀도>를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마지막이다. 한국영화사에 문학을 영화로 옮긴 문예영화가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그런 게 거의 없었는데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봄봄> <소나기> <무녀도>는 문예영화와 같은 계획과 꿈을 갖고 있었다.

김혜미 결혼 후 임신을 하면서 그동안 임신에 대해 알고 있던 내용과 밝은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낯선 감정과 기분을 느꼈다. 처음엔 ‘나는 왜 남들과 같지 않나’ 생각하며 그런 마음을 떨쳐내려 했는데 분명히 마음속에 존재하는 감정들이었다. 이를 들여다보고 내가 느끼는 것들에 집중해서 임신에 대해 입체적으로 담고 싶었다.

-김혜미 감독은 어떻게 클라이밍 선수와 임신 이슈를 교차할 생각을 했나.

김혜미 주인공 세현을 클라이밍 선수로 설정했는데, 클라이밍 선수는 임신과 대척점에 있는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체중 변화에 민감하고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 면에서도 클라이밍 선수가 로프에 매달렸을 때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이 멋있었다. 클라이머에게 로프는 생명줄과 같다. 영화 속 장면으로 쓰였는데, 클라이머로서 생명줄을 쥐고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세현과 태어나기 위해 산모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아이가 서로 로프로 줄다리기를 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뮤지컬과 공포로 그린 여성의 이야기

<클라이밍>

-두 작품 모두 시대적 모순에 부딪힌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안재훈 1920~30년대 쓰인 소설 중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작품은 찾기 어렵다. <무녀도>는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특별한 소설이다. 여성이 가진 실질적인 아픔을 남성인 내가 어설프게 이야기하려고 했으면 무리가 있었을 텐데 모화와 나는 직업으로 연결되는 게 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무녀도> 속 모화가 무당이란 직업을 끝맺는 것처럼 어느 땐가 내 직업을 끝맺어야 하는 시점이 굉장히 빨리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내 직업을 어떻게 끝마치는 게 좋을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모화가 겪는 직업의 종말은 현대 한국 사회와도 맞닿아 있는 화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직업들이 많잖나. 또 모화에게는 미혼모로서, 사회에서 한 직업을 이룬 여성으로서 겪었던 여러 갈등도 있다.

김혜미 산부인과에 가면 산모 요가를 비롯한 산모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다. 나 역시 참여하고 있었는데 같이하는 산모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산모로서 준비가 다 돼 있는 상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반면 나는 산모로서 준비가 안돼 있다고 느꼈다. 임신을 하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고 계속 낯설게 느껴졌다. 꿈에 임신하기 전 과거의 내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들이 많았다. ‘나 임신해서 술 마시면 안되는데’라며 놀라 깨고 나서야 꿈이란 걸 깨닫곤 했다. 그러면 임신한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처럼 느껴지고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임신한 나와 임신하지 않은 나를 평행세계로 대치시켜 임신을 매개체로 왔다갔다하는 <클라이밍>의 모티브는 그렇게 시작됐다.

-<무녀도>는 뮤지컬 장르를 가져왔고 <클라이밍>은 공포 장르의 문법을 가져왔다. 어떤 고심 끝에 내려진 결론인가.

김혜미 내가 느꼈던 불안과 비현실적인 느낌을 표현하려다보니 공포가 된 것 같다. 처음부터 미스터리 사이코 스릴러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불안감을 점점 내 식대로 표현해 애니메이션식 판타지가 더해지고, 결론으로 치달으면서 공포스러움이 같이 극대화됐다.

안재훈 작품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인상이 연달아 떠오르는 편이다. <무녀도>는 대사도 너무 많고 상황도 다 설명해야 해서 대사로만 풀어내면 나도 졸겠구나 싶었고 뮤지컬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뮤지컬은 마음에 남는 잔상이 영화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면 가사로 전달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과 음의 높낮이, 증폭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나. <무녀도>는 이제까지의 작품과 다르게 서정성이 덜해서 관객이 뮤지컬을 통해 모화와 공기로 부딪히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뮤지컬영화로 만들면 제작비가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디즈니와 픽사에서만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애니메이터의 노력과 능력으로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재밌기도 했다.

안시가 주목한 한국 애니메이션

-두 작품 모두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김혜미 감독의 <클라이밍>은 2021년 안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올해 열린 울주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안시영화제는 초청의 이유를 뭐라고 하던가.

김혜미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공포스러운 꿈과 같은 이야기가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웠다고 쓰여 있더라. 울주영화제는 산악이나 등반을 다룬 영화랑 다르게 여성과 클라이밍을 직접적으로 관련지어서 놀랍고 새로웠다고 했다. 보편적으로는 등반 자체에 굉장한 의미를 두고 좇아간다면, <클라이밍>은 클라이밍을 하나의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냈고 클라이밍 자체가 또 주제와 맞물려 새롭다는 반응이었다.

-안재훈 감독의 <무녀도>는 2020년 안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특별상–콩트르샹을 받았고 평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번에 평창영화제에서 공개되는 버전은 안시영화제 때보다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라고 들었다.

안재훈 애니메이션 작품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웃음) 50~60개 신을 업그레이드했다. 실사영화의 경우, 연기한 배우를 다시 불러 연기하도록 하기 어렵지만 애니메이션은 언제든지 끄집어내 다시 수정할 수 있다. 지금 다른 작업이랑 겹쳐 있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극장 개봉할 때는 확실하게 하려고 한다. 관객이 작품을 볼 때 이 장면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낫겠다는 걸 객석에 앉아 있으면 같이 느낀다. 이번 평창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할 때 객석에 같이 앉아서 그걸 온몸으로 느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애니메이션 신작을 내는 감독 입장에서 최근의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안재훈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 <돼지의 왕>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까지 1~2년에 걸쳐 4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온 때가 행운 같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에 감독의 특색이 다 들어 있다. 최초의 한국 극장판 장면 애니메이션 <홍길동>이나 기타 작품들은 국가 자체가 국민을 계몽하는 시대에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던 작품이다. 그때 활동한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얼마나 타고난 사람이었겠나. 하지만 그 뒤로 창작이 딱 끊겼다. 오히려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앞으로 정말 다른 이야기를 할 게 분명하다. 나만 해도 어릴 때 민주화운동을 옆에서 봤고 얼마 전까지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이 때문에 한국 감독들은 인간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상화하는 분야인데, 김혜미 감독님 작품도 그렇고 한국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단순히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던지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요 근래가 완벽한 호황기다. (웃음) <파닥파닥>의 이대희 감독,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 지금 실사영화를 하지만 <돼지의 왕>을 만든 연상호 감독, 김혜미 감독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지 않나. (웃음)

-두분은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게 됐나.

안재훈 처음에는 직업으로 택했던 것 같다. 먹고살 수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시를 쓰고 책을 볼 수 있는 직업이어서 선택했는데, <소중한 날의 꿈>이란 작품을 완성하고 관객을 만나고 한 울타리 안에서 스탭과 재미있게 이야기해가며 작품을 만들다보니 오히려 요즘 들어 나는 어떤 감독이고 싶고,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제대로 눈을 뜬 상태다. 대단한 천재가 아니거나 엄청난 부자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품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 감독의 일이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미 어릴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 나도 작품을 만들어서 상영할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특히 내 어린 시절은 MTV 개국 이후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으로 많아진 때였고 나도 뮤직비디오를 좋아했다. 미셸 공드리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와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하게 되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림을 전공한 건 아니고 미술학과를 나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와 결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재훈 (김혜미 감독에게) 요번에 안시영화제에 못 가서 아쉽지 않나. 오라고는 하던데….

김혜미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가더라도 다녀오면 격리를 오래해야 해서… 여건이 안돼 못 가게 됐다.

안재훈 안시영화제에서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못 받은 상을 올해 받으러 오라고 하던데, 내년 완성을 목표로 신작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을 하고 있어서 나도 못 간다. 내년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 안재훈 감독이 가장 공들여 만든 <무녀도>의 한 장면

모화가 칼춤을 추는 부엌 신

“1분30초 정도 되는 롱테이크 신이다. 2D애니메이션에서 롱테이크 작업은 무척 힘들다. 데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아야 한다. 편집 없이 원컷으로 가려고 고집을 피웠는데 스탭들이 잘 그려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 김혜미 감독이 가장 공들여 만든 <클라이밍>의 한 장면

북한산 자연 바위를 등반하는 신

“클라이밍 신이 제대로 나오길 원했는데 그중 자연 바위 등반 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위도 북한산의 실제 바위와 비슷하게 만들었고 클라이밍의 도구인 빌레이나 카라비너, 바위에 꽂는 캠을 모두 자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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