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절>
제작 화천공사 / 감독 하길종 / 상영시간 93분 / 제작연도 1973년
하길종은 영화 세계에 대한 평가를 떠나 19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1972년 <화분>으로 충무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유신 정권의 혹독한 검열을 몸소 겪었고 1979년 <병태와 영자>를 유작으로 남긴 채 38살에 요절했다. 그는 1970년대에 모두 7편의 상업영화를 연출했지만 결국 이 시기를 버텨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상업영화 필모그래피는 유신체제 기간과 겹친다.
196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UCLA 대학원 영화과에서 공부하며 뉴 할리우드의 세례를 받았던 하길종은 1970년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과 동시에 바로 영화계에 데뷔할 수 있으리라 자신에 차 있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대학 때 친구 김지하와 같이 개발했던 시나리오 <태인전쟁>을 첫 장편영화 연출작으로 모색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효석 원작을 직접 각색한 <화분>으로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무수한 난항을 겪었다.
1970년 11월 시나리오 사전 심의에서 전면 개작 통보를 받았고, 12월 제작에 들어갔지만 제작비 문제로 1년 가까이 촬영이 중단되었다. 어렵게 촬영이 재개되었지만 여배우가 교체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찍기도 했다. 1972년 4월 개봉한 영화는 관객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당시 한국 상업영화의 일반적인 수준과는 너무 동떨어진 생경한 화법 탓이 컸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레마>(1968)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과도한 표절 시비를 겪으며 작품성을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청와대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과 파멸에 관한 묘사는 당시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기에엔 무척 난해했던 것 같다.
괴기와 무협의 표피를 가진 정치영화
절치부심한 그는 한유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수절>을 두 번째 작품으로 택한다. 개봉까지 또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작가주의적 이상과 상업적 성공 사이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 또 어떤 작품이 그 방법론을 담아낼 수 있을지 그의 고민이 깊었음을 말해준다. 이 영화는 이전까지 외화 수입과 배급이 전문이었던 화천공사가 제작한 한국영화 1호작이다. 각색은 하길종이 직접 맡아 1973년 6월 시나리오 심의를 거쳤고, 7월 제작에 들어가 무주 구천동, 덕유산, 부여 금강 등지에서 대부분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이듬해인 1974년 3월 개봉했지만 이 영화 역시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당시 심의 서류를 살펴보면 제작사는 이 영화를 ‘시대 괴기물’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이 시기 유행하던 무협과 에로티시즘 같은 장르 요소도 함께 녹여내고 있다. 하길종은 현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화분> 때의 비판을 피해 시대극으로 (그것도 고대로) 물러났고, 공포, 액션, 에로티시즘 같은 장르적 성분을 혼합하며 가능한 한 많은 관객이 이 영화에 접속하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매끈한 장르영화로 완성되기는커녕 장르 화법 자체를 포기한 듯한 균열과 거친 면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각 장르성을 추구하는 장면들이 영화 전체에 잘 섞이지 못한다.
두 번째 영화를 연출할 때 그는 특히 더 조급했던 것 같다. 아니 그 조급함이 절실히 공감된다.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내 나름대로 말한다”고 했듯이 <수절>의 심층에는 정치 텍스트로서 완성시키기 위한 그의 절실함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는 유신 정권과 척박한 영화계 그리고 대중 관객 사이에서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본편 검열에서 600피트(10분가량) 이상 잘려나간 것도 영화의 완성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검열 서류를 확인하면 두 장면의 대사가 삭제되고 다섯 신의 화면이 삭제되었으며, 세개의 신은 화면 단축 지시를 받았다. 다행히 오리지널 네거티브(원본)필름에서 생성한 현재 버전은 당시 검열받았던 장면들을 온전히 포함한다.
피의 복수극이 상징하는 것
붉은 물감이 퍼지는 듯한 실험적인 크레딧 화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 이미지는 원래 각본에서 여인이 흘리는 피눈물 장면이 사전 시나리오 심의를 거치며 추상화된 것이다. 고구려에서 무사로 활약한 미객 장군 유신(하명중)이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시네마틱한 지평들을 만들어낸다. 유신이 타고 온 말이 피를 흘리며 죽을 때는 빅 클로즈업과 빠른 컷 편집을, 변경의 마을 사람들이 청상과부를 욕보인 오랑캐를 집단으로 구타하는 장면에서는 익스트림 롱숏과 과격한 줌아웃을 사용한다. 전자는 흉흉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이고 후자는 민초들의 에너지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유신은 변경을 거쳐 여전히 지거도사(윤일봉) 무리가 압제하는 고향 마을에 도착한다. 야심한 밤, 집에 도착한 유신은 부인 질례(박지영)와 훌쩍 커버린 딸 용분(이영옥)과 해후한다. 그러나 두 모녀를 비추는 푸른빛은 이미 그들이 사람이 아님을 알려준다. 유신은 부인과 함께 잠이 들지만 홀로 폐허가 된 집에서 깨어난다. 그는 질례가 피로 쓴 편지를 읽으며 그동안 지거도사 무리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만행에 분노한다. 영화는 30분 정도부터 마지막 10분 전까지, 귀신이 된 질례의 편지가 인도하는 회상 장면을 통해 10년 동안 마을에서 일어난 폭압과 겁탈을 처참하게 묘사한다. 다행히 두 모녀는 참혹한 현장에서 도망쳐 있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생사를 오가게 된다.
지거도사의 부하는 모래사장에 쓰러진 질례를 본거지로 데려와 지거도사가 범하도록 미약을 먹인다. 시나리오에서는 전략적으로 빼두었을 것 같은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데 돈과 권력이면 전부지”라는 대사는 개봉 버전에서 삭제되었지만 지금 버전에서는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 역시 부인하기 힘든 문제적 가치다. 지거도사가 질례를 범하는 장면과 이때 등장하는 지거도사의 가학적 환상도 검열 대상이었다. 그가 벽화 속에서 나온 나신의 여자들을 채찍질하는 장면은 과도한 에로티시즘이 문제가 되어 삭제되었지만 타락한 독재자를 극명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10분, 유신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정오의 강변에서 펼쳐지는 둘의 결투,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천박한 놈(유신)과 썩어빠진 놈(지거도사)의 대결이다. 마지막까지 지거도사는 단순한 폭군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가학적 성에 탐닉하듯 칼싸움 역시 즐긴다. 검술이 한수 위인 지거도사는 유신의 한손을 자르고 두눈까지 벤다. 이때 피가 흘러내리는 유신의 시점숏은 인트로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유신은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해 독재자를 쓰러뜨린다. 영화 속 유신이 현실의 유신을 베는 이 장면만으로 이 영화의 의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