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SF영화에 화려한 CG가 필수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 같다. 아마도 1990년대 초에 개봉한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과 <쥬라기 공원>이 그 인식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흐름은 점점 가속되어 1999년 <매트릭스>에서 그 정점에 달한 듯싶다. 그 흐름을 이어받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새로운 세기의 문을 CG로 활짝 열었고.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전설인 <스타워즈>를 어설픈 CG 범벅으로 덧칠해버린 스페셜 에디션도 그런 흐름을 증거하는 좋은 예시다. 2000년대 이후로 이제 블록버스터 SF와 CG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화려한 CG로 채워진 대예산 영화들을 볼 때면 한계를 모르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도 가끔은 아쉬워진다. 실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그래픽 효과를 구현하는 게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해진 거지? 한때 우리는 누가 봐도 손으로 그린 배경 그림과 인위적인 티가 팍팍 나는 소품들을 보면서도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그런 건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CG의 시대가 오면서부터 사람들은 배우의 얼굴과 줄거리에 몰입하는 대신 CG가 실제 같냐 아니냐에 더 많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창작자들도 CG의 퀄리티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게 되었고.
실제 같아 보이려는 노력은 많은 경우 영상의 표현력을 제한한다. 실제 같지 않아 보이는 미감의 디자인은 배제될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실제와 똑같지도 않다! 봉준호의 <괴물>이 개봉했을 때 괴물의 몸에 붙은 화염 CG가 어설프다는 비판이 얼마나 많았던가. 실은 그게 더 실제에 가깝게 모사된 것임에도 우리는 할리우드의 템플릿화된 화염을 더 실제 같다고 여긴다. ‘실제 같음’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CG로 꾸며진 무대에는 어색함이 남는다.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예민해서,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모양이다. 정말 진짜처럼 구현된 고사양 그래픽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차이를 느낀다. 반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금 봐도 정말 진짜 같다.
왜냐하면 진짜니까. <블레이드 러너>나 <에이리언>에서도 우리는 마찬가지 감각을 느낀다. 그 무대들은 한때 실제로 존재했다. 해리슨 포드가 지겹도록 맞은 비는 진짜 물이었고, 시고니 위버의 눈앞에서 주욱 늘어나던 외계의 점액도 만질 수 있는 진짜였다. 때문에 일부러 CG를 억제해가며 착시 효과와 치밀한 디테일로 현실감을 확보하고자 한 작품들도 있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이 그렇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모든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닌 법. CG 없이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CG를 쓰는 것보다도 몇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CG는 실제 같아 보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제작비가 부족할수록 더욱 그렇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화가 꼭 실제같이 느껴져야 하는가? 은하계 저편의 외계 행성이, 멍청한 살인 로봇이 사람들을 죽여대는 광경이, 솔직히 절대 올 것 같지도 않은 가짜 디스토피아 미래가 꼭 실제같이 느껴질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인류는 CG 없이도 수천년간 문제없이 극을 즐겨왔다. 우리는 텅 빈 무대에 소품 몇개만 놓아둔 소극장 연극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존재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실제 같아 보이기 위한 덧칠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를 감각하는 경험이 아닐까?
그 때문인지 나는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CG로 전환되어가던 과도기인 90년대 SF영화들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갓 태동한 기술인 CG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앞서 언급한 명작들처럼 완벽하게 진짜 같은 아날로그 무대를 구현하는 데도 실패한 비운의 작품들.
<토탈 리콜>과 <저지 드레드> 같은 작품을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재미있다. 이들 작품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가짜라는 사실을 조금도 감출 마음이 없는 듯해 보인다. 전혀 실제처럼 보이지 않는 의상과 미술 세팅, 인위적인 느낌이 가득한 소품들을 보고 있자면 실제 같냐 아니냐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가짜다움에 집중하게 된다. 이곳 현실이 아닌 스크린 너머 픽션 세상의 괴상한 논리를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가슴 셋 달린 여자의 머리가 부풀어 올라 터지고 멍청한 헬멧을 뒤집어쓴 판사가 즉결심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원래 거긴 그런 세상이니까.
<포트리스>도 꽤 즐겁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범죄로 여겨지는 기괴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감옥은 완벽하게 아날로그적으로 꾸며진 무대다. 철창도, 높은 천장도, 브라운관으로 꾸며진 CCTV 화면도 가짜 티가 팍팍 나는 스튜디오 세팅이다. 게다가 가끔씩 삽입되는 조악한 퀄리티의 CG 덕분에 우리는 이 무대의 물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폭력에는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있다. 뱃속에 심어진 폭탄이 터져 사람 몸이 풍선처럼 조각나는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바라보는 경험은 같은 장면을 CG로 꾸몄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지 않다. 날것 같은 연출에서 오는 매력.
이건 정말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인데, 나는 <샤도우 체이서>라는 작품이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터미네이터>의 조잡한 아류작인 이 저예산 홈비디오 영화는 그 조악함 덕분에 특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배우 프랑크 자가리노가 연기한 살인 로봇은 묘한 발연기와 직설적인 카메라 워킹, 조악하지만 기분 나쁜 특수분장이 어우러지며 기묘함과 섬뜩함을 자아낸다. 이건 제임스 카메론의 완벽한 영상미로 포장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살인 로봇에게선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다이하드>와 <터미네이터>를 적당히 섞은 1편,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2…>를 적당히 버무린 3편을 특히 즐겁게 보았는데, 지금 이 작품을 감상할 방법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가장 최근에 이런 날것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은 2008년작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과 2009년작 <팬도럼>이었던 듯싶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설정이 비슷한데, 한쪽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다른 한쪽은 거대한 우주선에 갇힌 탓에 문명이 점차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행해버리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최소화된 CG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면을 아날로그 무대와 <매드맥스>를 떠올리게 하는 특수분장으로 채워놓았다. 덕분에 이 작품 속 액션들은 특별한 감각을 깨운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살짝 어설프지만 덕분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묘한 생동감. 마치 물 밖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보는 듯한 느낌.
아무래도 두 작품을 마지막으로 아날로그 특수효과 SF는 완전히 멸종해버린 것 같다. 날것의 느낌마저 잃어버린 채 그저 조악하기만 한 요즘의 저예산 CG 영화들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갑갑해진다. 기왕 조악할 거라면 제대로 조악하기라도 했으면 싶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