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콰이어트 플레이스2'가 공포를 구축하는 방식
2021-07-07
글 : 오진우 (평론가)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 남은 것은

근래에 신체의 감각을 차단하는 방식을 영화의 주된 설정으로 잡은 영화들이 있었다. <버드 박스>(2018)의 사람들은 미지의 존재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눈을 가린다. <런>(2020)에선 삐뚤어진 모정으로 인해 딸이 다리의 감각을 잃고 휠체어를 탄다. 눈과 다리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름 아닌 이동 제한을 의미한다. 차단된 감각으로 인해 심해지는 답답함은 생존과 탈출에 대한 압력을 높이게 만든다. 영화는 종국에 주인공의 감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버드 박스>에선 주인공이 어떤 장소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안심하며 안대를 벗는다. 전보다 자유롭지만, 여전히 새장이다. <런>은 지팡이를 짚고 걷게 된 딸이 자신을 가뒀던 어머니가 있는 감옥에 면회를 가 복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감시를 받았다는 입장에서 시각을 오감 중 최종 심급으로 여기고 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은 곧 통제를 의미한다. 파놉티콘(원형감옥)을 형상화한 듯한 두 영화 속 감시의 주체는 주로 외화면에 존재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풀잎들>에 관한 평론(<현대비평> 2020년 여름호(제3호))에서 “영화적 장소는 외화면 영역에 대한 믿음 없이는 결코 구축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두 영화는 이 믿음을 화면 내부에 잡힌 인물들의 리액션으로 쌓는다. 또는 다음 숏 혹은 프레임 내부로 무언가가 침투할지 모른다는 압력이 관객을 짓누를 때 영화적 장소가 굳건히 구축된다.

세개의 귀

‘바라본다’라는 시각의 문제는 숏을 구성하고 설계하는 문제이기도 하며 공포 스릴러 장르는 이를 통해 스릴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운드는 스릴을 더욱더 증폭시킨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에 반사된 빛은 단반향이다. 하지만 소리는 관객을 감싼다. 영화적 장소 한가운데에 관객을 위치시키는 것은 사운드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태에서 영화는 관객의 육체적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영화를 보며 몸이 움찔거려지거나 입을 앙다무는 체험 말이다. 이러한 영화적 체험은 공포 스릴러 장르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극장 개봉을 사수하며 관객의 육체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좀더 유리한 상영 조건을 확보한 셈이다. 이 시리즈가 영화에서 차단한 감각은 청각이다. ‘귀’의 영화이기도 한 이 시리즈는 세개의 귀에 주목한다. 괴생명체의 귀, 레건(밀리센트 시먼스)의 귀 그리고 보청기. 괴생명체와 레건은 청각이라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위치한다. 극도로 예민하여 다 들리거나 들리지 않거나. 이 시리즈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설정은 1편에 이어 <콰이어트 플레이스2>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주현 기자의 ‘20자평’처럼 2편에선 “설정의 힘 대신 연출의 힘”이 돋보인다. 사운드 제거를 통해 2편은 영화적 장소를 무중력 공간인 우주처럼 바꿔버린다. 붕 떠버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운드가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운드가 제거된 장면은 소리가 존재했던 리듬 패턴을 깨고 들어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은 레건의 청점(聽點)이다. 관객은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서 세상을 잠시나마 바라보게 된다. 이는 1편의 설정이지만 2편에선 우주 공간의 미아처럼 그녀를 연출한다.

사건 발생 첫날로 가보자. 하늘에서 무언가가 불타면서 추락하고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집으로 가는 도중 아빠 리(존 크러진스키)는 딸 레건과 함께 차에 탔다가 잠시 내려 경찰과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괴생명체가 프레임 안으로 침투하고 리는 다시 급히 차에 탄다. 이때 사운드가 제거된다. 레건의 청점에서 관객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여기서 관객과 레건 사이의 정보의 격차가 발생하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리는 레건을 안심시키면서 라디오를 만지작거린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화는 두 아들과 함께 있는 엄마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의 차로 점프컷한다. 다시 소리로 가득찬 세상으로 영화는 접속한다. 사운드는 영화에서 일종의 중력처럼 관객을 붙들어 맸다가 풀었다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레건이 차에서 나와 아수라장이 된 도로로 뛰어갔을 때다. 사운드가 제거된 이 화면에서 레건은 당황해하며 주위를 살핀다. 이때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아빠가 들어오고 딸을 잡으며 다시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숏 구성은 레건과 에밋(킬리언 머피)의 결속 장면에서도 반복한다. 에블린은 가족을 이끌고 산 중턱으로 향한다. 그곳에 에밋이 있다. 에밋은 물과 식량이 없기에 돌아가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이해가 안되지만 레건은 에밋을 싫어한다. 레건은 에밋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한 모양이다. 다음날 레건은 몰래 에밋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따라 혼자 길을 나선다.

에블린은 에밋에게 레건을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에밋은 위기에 처한 레건을 구하고 둘은 간이역에서 잠시 머문다. 레건이 잠에 깨면서 사운드는 제거된다. 그녀의 짐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밖으로 나온 레건은 통곡한다. 이때 프레임 내부로 에밋이 그녀의 짐을 들고 들어온다. 그는 레건이 찾아 헤맨 배를 찾았다고 말한다. 아빠 리와 에밋은 심리적 진공 상태에 놓인 레건을 세상과 잇는 도움의 손길로서 숏 내부에 등장한 것이다.

제목의 모순

이렇게 희망을 품은 레건과 에밋은 한조가 되어 섬으로 향하고 에블린과 아들 마커스와 갓난아기는 에밋의 공장에 남는다. 영화는 이제 두 장소를 교차편집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사운드를 제거하지 않고 우주 공간의 특징으로 장소를 전환시킨다. 그 특징은 산소가 없다는 것.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아기를 상자에 넣을 때 산소호흡기가 필요하다. 산소호흡기의 공기압이 갈수록 낮아진다. 에블린은 그것을 구하러 잠시 떠나고 그사이 마커스가 공장을 둘러보다 에밋의 부인의 시체를 보고 넘어진다.

그때 발생한 소리로 괴생명체가 공장으로 급습한다. 이때 마커스는 갓난아기와 소각장 통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틈에 수건을 끼지 못한다. 통 안의 공기는 사라지고 남은 산소통에 의지하면서 통 안은 하나의 우주 공간처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을 느끼는 건 선착장에서 수상한 마을 주민에게 포위된 레건과 에밋도 마찬가지다. 에밋은 목이 밧줄로 감기고 소리가 나는 것들로 엮인 그물을 걸치게 된다. 에밋은 레건에게 바다로 들어가라는 수화를 하며 동시에 들어간다.

그물에 걸린 에밋은 바다에서 숨을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가까스로 그물에서 벗어나 바다에 떠 있는 에밋. 이번엔 레건이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배 한척을 몰고 들어온다. 믿음의 이미지를 만들며 상황이 종료된다. 한편 공장에서는 에블린이 도착하여 산소통을 폭파시키고 괴생명체를 유인해 가까스로 아이들을 구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는 청각이 작동되는 방식, 즉 소리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귀에 들린다는 메커니즘을 활용한 영화다. 영화는 이 감각을 괴생명체를 통해 차단함으로써 영화적 장소를 사람이 살 수 없는 우주 공간처럼 연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딛고 서 있는 곳은 땅 위다. 영화 속 구원은 라디오를 타고 완성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는 제목과 달리 소리를 내야만 살 수 있는 모순된 생존 조건이 영화적 장소를 구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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