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령 이미지'의 배우 우지현, 옥자연 - 상실을 붙잡는 연기
2021-07-12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우지현, 옥자연(왼쪽부터).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어떻게든 붙잡아주는 사진의 속성”(옥자연)에 매료된 두 남녀가 있다. <유령 이미지> 속 정후(우지현)와 영(옥자연)은 카메라와 캠핑카에 의지해 길 위를 떠돌면서, 자기 앞의 생을 포박해보려 애쓴다.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상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령 이미지>는 제각기 단절된 가족 관계와 혼란한 정체성 때문에 부유하는 연인을 그리는 영화다. 영과 정후는 사진을 매개로 가까워지지만 이내 이미지 너머에 자리한 서로의 불가해한 고독도 인정하게 된다.

<겨울밤에> <더스트맨>에 이어 자기만의 차분하고 우직한 얼굴을 꾸준히 새겨가는 배우 우지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마인>을 연달아 성황리에 마친 배우 옥자연을 만났다.

우지현, 옥자연(왼쪽부터).

-정후는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영은 유년기에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살다가 돌아온 사람이라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목마르다.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사진의 속성에 매료된 두 인물은 결국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더라.

우지현 사람들과 넓게 관계하기는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둘이 만나 주파수가 맞는 것이 참 귀한 인연 같았다.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역할이 되어주면 좋을까 고민했다. 감독님은 정후와 영이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옥자연 정후는 자기 속을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인데, 영 또한 과거에 관한 확실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 자신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까워졌다가도 또 천천히 벽을 쌓는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닐까. 영을 연기하면서, 기억이 없어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어 하는 입양아나 이민자들의 마음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다. 영은 엄마를 찾으러 왔다기보다는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속 등대를 실물로 보고 싶어 하는데, 그게 마치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일 사진작가와 제자들의 실제 작업물이 영화 속에서 많이 활용됐다. <유령 이미지>를 촬영하며 사진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편인가.

우지현 부산 촬영을 앞두고 양산 통도사 아래에 있는 이상일 작가의 작업실에서 모여서 리딩을 했는데, 암실을 비롯한 공간을 둘러보며 영화에 쓰일 사진들을 미리 확인했었고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도 나누기도 했다. 대상에 카메라를 대고 셔터를 누르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행위 안에 굉장히 정교한 과정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상일 작가님이 영에게 준비를 끝내면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라”고 하는데 결국은 많은 일들이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옥자연 정말 좋았던 경험이다. 원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유령 이미지> 촬영장에서 필름 카메라로 주변을 열심히 찍었다. 영화를 계기 삼아 사진을 더 제대로 배워보아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결국 실천은 못했다. 최근에 쉼 없이 일하고 있어서 문득 잠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어디론가 가서 사진 찍을 수 있다면 좋겠다.

-바다, 대나무 숲, 야생의 들판 등 캠핑카를 타고 인적 드문 공간을 떠도는 로드무비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명상적인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우지현 대신 캠핑카 촬영을 할 때 촬영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웃음) 배우를 포함해 3~4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협소한 공간이어서 감독님, 촬영 감독님 등등이 나중엔 허리가 아파 곡소리를 냈다. 야외만큼이나 캠핑카 안에서도 다채로운 숏을 잡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 장면들이 영화에 잘 담겼다.

옥자연 이상일 선생님이 영이가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찍는 사진들을 미리 보여주셨고 나는 그 결과물을 상상하며 자연 속에서 그것을 찍는 연기를 했다. 덕분에 빛과 그 속의 피사체의 모습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대나무 숲 같은 곳에서 촬영할 때 참 좋았다.

-장우진 감독의 영화들(<새출발> <춘천, 춘천> <겨울밤에>), 김나경 감독의 <더스트맨>, 그리고 <유령 이미지>까지 한국 독립영화 신에서 배우 우지현의 얼굴로 채워져 가는 슬로시네마의 계보가 있는 듯하다. 배우로서 보여주는 특유의 고독하고 사색적인 분위기, 우울한 질감이 있는데 실제 자신과 얼마나 접점을 느끼나.

우지현 <새출발>을 필두로 그런 분위기의 인물들을 여러 차례 만났고, 연기의 경험이 쌓여 조금씩 더 잘할 수 있게 된 부분은 생긴 것 같다. 연기는 쉽게 말해 내 안에 있는 한 부분을 꺼내어 쓰는 것이다. 내면적이고 고뇌하는 성향이란 게 현실에서 자주 쓰기엔 인생에 마냥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니 아껴뒀다가 영화 속 인물이 되어 해소하려 한다. (웃음) 그래서 오히려 카타르시스가 있다.

-배우 옥자연에게 <마인>은 여러 가지로 도약의 모멘텀이 될 작품이다. 김서형, 이보영 등 여성 배우들과 진득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배우 개인에겐 특히 활력을 얻는 경험이었을 듯한데.

옥자연 맞다. <마인>은 무엇보다도 두 분을 지켜보는 게 참 좋았다. 김서형, 이보영 선배님은 모든 게 너무나 다르다. 보영 선배는 연기할 때 순간적으로 집중하고 발산하는 편이라면, 김서형 선배는 대본을 아주 꼼꼼히 연구하고 구축해나가는 분이다. 보영 선배는 결혼 후 두 자녀를 뒀고, 서형 선배는 그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내게는 너무나 멋진 두 여성 배우이자 제각기 다른 삶의 모양을 꾸려가는 인생의 선배들로서 자기만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것에 많은 배움을 얻었다.

-차기작 계획은.

옥자연 <누에치던 방>의 이완민 감독과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사랑의 폭력성과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인데, 나는 기울어져 가는 어떤 관계를 일으켜보려는 인물을 연기한다. 완민 감독님 영화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웃음)

우지현 올해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또 인사드릴 것 같다. 단편영화 <마침내 날이 샌다> <토끼의 뿔>로 주목받았던 한인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도 촬영을 마쳤다. 기다리던 감독의 데뷔작이라 배우로서나 관객으로서나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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