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부동산 이슈와 한국형 재난영화가 만났을 때, <싱크홀> 시사 첫 반응
2021-08-03
글 : 이주현
글 : 임수연
글 : 배동미

<싱크홀>은 싱크홀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다. 11년만에 서울에서 내집 마련에 성공한 동원(김성균), 이사 첫날부터 동원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청운빌라 401호의 만수(차승원), 동원의 집들이에 초대 받았다가 땅속으로 함께 떨어지는 동원의 직장 동료 김대리(이광수)와 인턴 은주(김혜주). 지하 500미터 싱크홀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이들의 몸부림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타워>를 만들었던 김지훈 감독의 또다른 한국형 재난영화 <싱크홀>이 보여주는 재미와 아쉬움에 대해 <씨네21> 기자들의 시사 첫 반응을 전한다. 영화는 8월 11일 개봉한다.

이주현

여느 재난영화와 마찬가지로 <싱크홀>은 예상치 못한 재난을 맞닥뜨린 주인공들이 난관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재난영화의 플롯은 완전히 새로울 수 없기에 승부는 재난의 의외성이나 스펙터클, 재난에 대처하는 캐릭터들의 매력, 재난의 이면에 담긴 메시지에 따라 갈린다. <싱크홀>은 ‘어느날 갑자기 내가 발 딛고 선 땅이 수백 미터 땅 밑으로 푹 꺼져버린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나간다. 우선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지하 500미터 아래로 꺼지는 초대형 싱크홀을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스펙터클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싱크홀이라는 낯설고도 익숙한 도심형 재난이 대형 재난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은 영화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그런데 이 극적인 순간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건 CG의 터치가 느껴지는, 정교함이 떨어지는 기술이다. 2% 부족한 사실감은 싱크홀이라는 재난이 영화적 재난이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다음으로 캐릭터의 문제. <싱크홀>은 심각하고 웅장한 재난영화가 아니라 코미디를 바탕에 깔고 가는 영화다. 재난영화의 무게감을 덜어내다 보니 캐릭터들의 체중도 가벼워졌다. 제아무리 차승원, 이광수라 하더라도 버거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싱크홀>의 코미디가 취향에 맞지 않는 걸 수도 있고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걸 수도 있다. 내게는 불발된 코미디가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니. 다만 주인공들 챙기기에 급급해 영화 속 재난의 희생자들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태도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임수연

<싱크홀>은 현대인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세팅에서 시작된다. 집값은 폭등하고, 어느 동에 거주하는지, 아파트와 빌라 중 어느 곳에 사는지가 그 사람이 속한 계급을 보여준다. 이웃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의견을 모아야 할 사안에도 힘을 합치지 않는다. 이렇게 부동산 이슈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더해 영화는 11년 만에 자가 취득에 성공한 직장인 동원(김성균)과 아랫집 만수(차승원)가 티격태격하는 관계, 회사 동료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또한 청운빌라의 주민인데도 건물을 떠나 있었거나, 청운빌라의 주민이 아닌데도 건물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이유를 설명하는데도 공을 들인다. 싱크홀 현상으로 빌라 전체가 지하 500m로 추락한 이후 이들이 단합할 때 나오는 드라마를 위한 것인데, 일부 설정은 과감하게 쳐내도 전개상 문제가 없다.

<싱크홀>은 ‘전반부의 유머, 후반부의 스펙터클과 감동’이라는 한국형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블록버스터다. 때문에 적당히 웃다가 긴장하다가 뭉클해하는 여름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겐 기대한 바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걸린다. 싱크홀 재난이 시작된 직후부터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몇몇 인물들이 계속 의식될 수밖에 없는데(이 영화에서 가장 약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들의 행방이 드러나는 방식에 물음표가 붙는다. 전체 영화를 끝맺는 방식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터널>의 중반부 고립된 또 다른 생존자가 등장하고 다시 극에서 퇴장할 때 남는 여운, 재난을 다뤘지만 씩씩하고 유쾌할 수 있기 위해 <엑시트>가 분명 존재했을 희생자들을 아예 묘사하지 않았던 점을 떠올리면 <싱크홀>이 취한 길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배동미

<엑시트>가 취업난에 재난서사를 더했다면, <싱크홀>은 부동산 폭등에 재난서사를 가져왔다. 주인공 동원(김성균)이 11년이란 세월을 들여 마련한 집이 2주만에 거짓말처럼 싱크홀로 내려앉는다. 빌라 주민 만수(차승원)와 그의 아들 승태(남다름), 집들이 온 동원의 직장 동료 승현(이광수), 은주(김혜준)가 싱크홀에 함께 갇히는데, 캐릭터마다 사연도 다양하다. 동원과 같은 빌라에 살지만 월세 세입자인 만수는 생활비와 집값을 벌기 위해 N잡을 뛰고 있다. 복싱장 매니저, 사진관 사진사, 대리운전 기사 등 불안정한 직업을 여러 개 가진 만수는 저녁밥으로 컵라면 물을 받아놓고도 콜이 들어오면 대리 운전 기사로 뛰쳐나가야 하는 프레카리아트다. 그의 아들 승태는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집들이에 왔다가 싱크홀에 갇힌 동원의 직장 후배 승현과 은주는 원룸에서 생활 중인데, 더구나 은주는 인턴사원 신분으로 정규직과 달리 명절 선물 하나 받지 못하는 설움을 느끼고 있다. 이들이 살면서 겪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부동산이다. 계속 뛰는 집값에 허탈함을 느끼고, 동료가 아파트를 마련해서 벌어들인 억대의 불로소득에 입이 쓰다.

<싱크홀>은 또한 재난영화로서 뜻밖의 사고를 실감나게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우선 땅꺼짐의 낙폭이 대단하다. 우물 속에서 바라보면 하늘이 작게 보이는 것처럼 싱크홀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별처럼 조그마하게 보일 정도로, 동원 일행은 깊숙한 땅속으로 떨어진다. 이런 가운데 야속하게도 비가 계속 내려 싱크홀 내부로 흘러들어오고, 건물이 부서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계속된다. 필로티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꽃담황토색 택시까지 떨어져 아찔한 상황이 펼쳐진다. 건축물과 차량, 가구 등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위기의 국면들이 반복되면서 생생함을 더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초상을 담아 재난을 재현하고 그 속에 잔잔한 웃음을 보탠 <싱크홀>은 여름 영화로는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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