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 달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미래의 연인을 상상하는 위에전(양우림)은 커로우(계륜미)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렇지 않다면 커로우가 맹렬히 땀 흘려가면서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시하오(진백림)에게 위에전의 속마음을 대신 전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전이 시하오에게 보내는 연서에 커로우의 이름을 써 커로우를 곤경에 빠뜨려도 화를 내는 건 잠시뿐, 커로우는 위에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결국 시하오의 마음이 커로우에게 향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지 모른다. 커로우도 시하오를 좋아하게 됐다면 고민의 크기는 감내할 수준이었을 것이다. 커로우 자신조차 짐작하지 못했던 위에전을 향한 감정으로 인해 고민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인공 계륜미가 처음으로 주연한 <남색대문>은 이미 친숙한 대만 청춘영화들의 원형에 가까운 작품이다. 무려 20년 전에 나온 영화지만 대만 청춘영화 속 인물들의 순박하고 여린 모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최근의 대만 청춘영화들이 남녀간의 애정을 신파적으로 다루는 것과 달리 10대 청춘이라면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성 관계를 초월한 감정을 섬세하게 매만지는 성숙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계절감이 독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