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연방영화주식회사 / 감독 이만희 / 상영시간 95분 / 제작연도 1975년
이만희 감독은 1975년 <삼포가는 길>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라는 스펙트럼이 있다면 그는 한국영화를 예술영화쪽으로 성큼 옮겨낸 감독이었다. 관객의 동의와 평단의 찬사까지 함께였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장르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는 사실 의미가 없다. 전쟁, 스릴러, 시대극 어떤 장르든 그만의 미감으로 특별해졌고, 전통적인 흥행 장르인 멜로드라마는 그에게 모더니즘 영화를 실험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결코 다른 감독들처럼 서구의 모던 시네마를 흉내내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연출작은 장르영화든 예술영화든 그만의 스타일적 호흡이 새겨져 ‘이만희의 영화’가 되었다.
이만희가 51번째로 만든 <삼포가는 길>은 유작이라는 수식에 가려져 그 내밀한 미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동명 원작의 짧은 이야기에서 그는 어떤 이미지와 소리들을 떠올렸고 어떤 결말을 예정했을까. 병들고 쇠락한 육체로 힘겨운 상태였던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던 것 같다. 관습적인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쪽을 택한 이유일 테다. 거장의 마지막 미학적 실험, 바로 이 영화의 본질이다.
길 위의 사람들
영화는 공사가 멈춘 개울가 옆 눈밭에서 바지춤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프레임 안으로 뛰어들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영달(백일섭)이라는 사내인데, 밥집에서 기거하던 중 여주인과 바람이 났다가 남편 천가에게 들켜 도망 나온 것이었다. 사실 유동훈이 쓴 시나리오는 영달의 정사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감독은 그가 도망 나온 장면부터 보여주며 세련되게 운을 뗀다. 이는 소설과 같은 출발이다. 시나리오는 단편인 원작의 이야기를 영화의 러닝타임만큼 늘리기 위해 에피소드와 인물의 사연을 덧붙이고 마지막 장면을 버스정류소로 설정하는 등 원작의 배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이만희가 연출한 영화는 원작의 핵심으로 회귀한다. 시나리오에 추가된 내용들을 사용하지만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되어 원작에 더 밀착하는 것이다.
숏 감각 역시 이만희 특유의 그것이다. 저 멀리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바로 정가(김진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복역하고 나와 10년 만에 고향 삼포로 돌아가는 길이다. 눈보라를 헤집고 찬샘골에 도착한 둘은 몸을 녹이러 서울식당에 들어간다. 국밥을 말던 여주인은 그곳에서 작부로 일하던 백화(문숙)가 도망갔다며 투덜대고, 그녀를 데려오면 만원을 내겠다는 말에 영달은 정가를 데리고 나선다.
둘은 가까운 월출보다는 감천쪽 길을 택하고 곧 백화를 따라잡는다. 두 남자 앞에서 백화는 전국의 사창가 이름을 읊으며 센 척하지만 겨우 스무살인 천진난만한 여자다. 영달이 술집에 다시 데려가지 않겠다며 여비라도 내놓으라고 하자 그녀는 훔쳐 나온 가방 속을 탈탈 털어 보이는데, 돈 한푼 고사하고 낡은 속옷, 싸구려 화장품 그리고 화투짝이 눈밭에 널브러진다. 백화라는 인물 그 자체를 대변하는 형상들이다. 백화는 두 남자와 같이 길을 걷길 원하고, 그렇게 셋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들의 여정은 한국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풍경들로 채워진다.
실험적인 사운드 미학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셋은 농악 소리가 들리는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세 인물을 잡은 카메라가 줌아웃하면 마을 어귀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전경에 나타난다. 커트 없이 다시 줌인한 카메라는 감천행을 물어보는 셋과 마을 노인을 잡고, 또다시 줌아웃과 팬을 결합하면 농악을 울리는 마을 사람들이 드러난다. 과감하면서도 효율적인 영상인데, 선택적인 사운드 운용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농악 행렬과 신나게 논 셋은 초상집에 요기를 하러 들어간다. 부러 우는 영달의 곡소리로 시작하는 초상집 신은 실험적인 사운드 디자인이 돋보인다. 영달이 문에 들어서면 다른 사운드들은 묵음인 채로 승려의 염불 소리만 들린다. 사람들의 대사가 들릴 때와 염불 소리만 들리는 상태가 선택적으로 진행되다 술에 취한 백화가 보이스 오버 톤으로 꿈 얘기를 들려주면서 그녀의 클로즈업이 페이드아웃된다.
다음 숏은 회상 장면으로 예상되지만 영화는 백화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젓가락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시작하는 다음 숏은 카메라가 물러서면 역시 상갓집이다. 초상집인지 잔칫집인지 헷갈리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경쾌한 음악이 얹히고, 셋을 내쫓으라는 집안 어른의 말에 상가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완전한 묵음이 되어 즐겁게 도망치는 셋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진공 상태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그들의 시간이 눈밭에 정박된 것처럼 느껴진다.
혹독한 눈보라에서 살아남은 셋은 한 마을의 폐가에서 몸을 녹인다. 모닥불 앞 영달이 옛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부자였다고 거짓말하는 대사에 초라했던 회상 장면이 붙고, 이내 그는 우울해진다. 백화가 영달을 위로하려다 말다툼을 벌이고 결국 서로의 가장 아픈 곳까지 건드린다. 둘과 헤어져 마을로 내려간 백화는 읍내 술집에서 술판을 놀다 취객과 싸움이 붙는다. 두 사내가 백화도 찾을 겸 술도 한잔할 겸 읍내로 내려가며 또 한번 소동극이 시작된다. 정가는 백화가 잃어버린 딸이라며 오열하고, 부러 시작한 연기였지만 둘은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이때 다른 사운드 요소는 휘발된 채 정가와 백화의 소리만 구슬픈 음악과 함께 들린다. 시골장터 장면도 선택적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장터의 배경음은 전혀 사용되지 않고, 같이 살자고 설득하는 백화와 밀어내는 영달의 대화가 그들의 모습 위 보이스 오버 톤으로 들린다. 영달은 백화를 장바닥에 둔 채 정가와 떠나고, 오로지 들리는 숨찬 소리는 그녀의 먹먹한 심정을 전한다.
감천역에 도착한 둘 앞에 백화가 나타난다. 아기도 낳을 수 있고 실은 남자도 많이 거치지 않았다는 백화의 고백에 영달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다. 삼포로 가는 기차가 도착하자 정가와 영달이 개찰구로 나서는데, 스톱모션처럼 동작을 멈추는 그들의 모습은 시간을 붙잡고 싶은 감독의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차를 타지 않고 역사로 돌아온 백화는 창문 너머로 역 앞 술집을 바라본다. 읍내 술집 장면에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백화의 모습과 폐가에 남아 있는 두 사내의 모습을 연결시킨 것처럼 이 장면 역시 그녀가 영달과 정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다음 장면은 버스를 타고 삼포로 가는 둘의 모습이다. 영달은 버스에서 만난 일꾼 무리와 함께 떠나고 정가는 삼포에 관광호텔까지 들어섰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백화도 영달도 정가도 폐가에서 내려다본 마을 같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