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에 소개한 <모가디슈> 제작기에서, 김보묵 미술감독은 ”실제 내전이 발생할 때 벌어지는“ 주요 사건을 토대로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설계했음을 말한다. 그 단계별 주요 사건이란 다음과 같다. 1단계, 평화로운 사회에서 테러 같은 이벤트가 발생한다. 2단계, 반군이 사회를 교란하기 위해 시위를 일으킨다. 3단계, 반군이 수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관공서와 치안 체계를 무너뜨린다. 4단계, 반군이 수도에 입성한다.
이것은 분명 영화 속 장면을 구현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지만, 공교롭게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시점에 이 글을 읽고 있자니 복잡한 마음이 든다. 아마 극장에서 <모가디슈>를 본 관객도 이번 한주 동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가족에게 연락을 할 새도 없는 급박한 탈출 과정, 수도를 떠나는 대형 수송기 내부를 빼곡히 채운 사람들, 미처 탑승하지 못해 비행기를 따라 활주로를 달리고 기체에 매달린 군중의 모습까지, 8월 15일 이후 전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은 <모가디슈>가 구현한 30여년 전 아비규환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극적으로 모가디슈 탈출에 성공해 담담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의 영화감독이자 아프가니스탄 국영영화사 최초의 여성 총괄 디렉터인 사라 카리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세계 영화 커뮤니티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공개했다. 지난 몇주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을 학살하고, 아이들을 납치하며, 소녀들을 어린 신부로 팔아넘기고, 여성을 살해한 탈레반의 만행을 고발한 그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는다면 모든 종류의 예술을 금지할 것이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감독들이 탈레반의 다음 척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했다.
<씨네21>은 사라 카리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답신을 받았지만, 그의 안위를 위해 내용을 공개할 수 없음을 밝힌다. 다만 그가 몇번이고,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간곡한 마음을 전했음을 공유하고 싶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예술이 사라 카리미 감독의 우려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길 소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라 카리미 감독의 안녕을 바란다. 아프가니스탄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그와 그의 영화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다시 한번 국내 영화제(사라 카리미 감독의 첫 영화 <하바, 마리암, 아예샤>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된 바 있다)에서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