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현민·황미요조 프로그래머…팬데믹과 백래시의 시대
2021-08-26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팬데믹과 백래시의 시대, 여성을 돌보고 돌아보다
황미요조, 김현민(왼쪽부터).

팬데믹과 백래시의 시대, 영화의 품에서 서로를 돌볼 시간이다.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가 8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에서 개최된다. 27개국 119편의 상영작 중 절반 이상인 66편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으며, 비대면에 최적화된 각종 토크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올해 줌마네 대표이자 감독인 이숙경 위원장을 주축으로 프로그램위원회를 만들어 끊임없는 소통을 거쳤고, 영화제의 가치를 다시 마주했다. 그 흐름을 주도하며 영화제를 꾸린 김현민·황미요조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황미요조, 김현민(왼쪽부터).

-올해의 슬로건 ‘돌보다, 돌아보다’는 ‘팬데믹과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를 견디고 돌파하고 있는 여성들을 초대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현시점에서 여성영화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전해진다.

황미요조 페미니즘에 배타적인 분위기는 항상 있어왔다. 지금이 좀 다른 것은 페미니즘이 중앙정치에서도 활용되고 있다는 건데, 지난 몇년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자신의 언어로 채택해온 결과다. 이제는 남성들도 페미니즘을 여성의 정치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백래시에 위축되기보다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영화제가 해온 것을 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현민 백래시와 더불어 팬데믹의 시대다. 그로 인한 무기력, 고립감, 불안감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보다’라는 말이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써온 여성의 돌봄 노동으로만 비치는 것은 지양하고, 나를 돌보고, 내 주변과 역사를 돌아보는 개념을 포괄하고 싶었다. 올해 상영작들도 그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신설된 섹션 ‘지금 여기 풍경’에서 여자들의 집을 다룬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올해 초청작들의 경향을 듣고 싶다.

김현민 경쟁부문인 ‘발견’의 영화들에서는 여성들의 연대로 돌파해가는 의식이 돋보였다. 여자들이 어떻게 화합하는지 혹은 어떻게 불화하면서도 함께 나아갈 지점을 찾아가는지 묻는다. ‘지금 여기 풍경’은 3, 4년 사이에 우리를 스쳐간 좋은 영화를 다시 보며 페미니즘을 학문적, 시사적 관점이 아닌 개인적 영역으로 갖고 오고자 만든 섹션이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테제인 거주지를 테마로 삼았다. 상영작을 선정하면서 공간은 있지만 장소는 주어지지 않은 여성들의 부유를 발견했다.

황미요조 ‘페미니스트 콜렉티브’나 ‘쟁점들’ 섹션에 유독 아카이브 푸티지나 인터넷 아카이브를 활용해 만든 작품들이 많다. 대부분 여성사나 여성영화사를 재방문하는 작품들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 창작자들이 어떤 작업을 시도하는지를 보여주는 경향이기도 하다.

-20주년을 맞은 <고양이를 부탁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기획했고, 이번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이를 비롯해 ‘SWAGGIN’ LIKE 두나’라는 에너제틱한 제목의 배두나 배우 특별전도 진행한다.

김현민 지금의 20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되고 짜릿하다. 영화 속 이야기가 하나도 낡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당시 20대 여성들의 지위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저해상도로 다시 틀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블루레이 제작까지 염두에 두고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진행했다. 개봉 당시보다 사운드도 많이 끌어올렸고 색감도 더 살려냈다. 최영환 촬영감독이 직접 색 보정 작업을 해서 더 의미가 있다. 배두나 배우 특별전은 어떤 제목을 붙일까 고민이 많았다. 배우를 규정짓고 싶지 않았다. 배두나 배우 자체가 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필모그래피의 스펙트럼도 무시무시하게 넓다. 영어에 능한 황미요조 프로그래머가 도움을 주어 붙인 제목인데, 무심한 듯 초연하게 행보를 이어오는 중인 그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배두나 배우의 정수가 녹아 있는 캐릭터를 모아봤다.

-여성영상집단 움, 줌마네도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20주년을 맞았다.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섹션에서 ‘아시아의 여성영화 제작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황미요조 한국 독립영화 안에 여성운동의 단위가 생성되고 본격적으로 활동해온 역사가 20년쯤 된 셈이다. 그걸 꾸준히 해온 두 집단이 움과 줌마네다. 20주년을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싶었다. 특히 줌마네에서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놀랍게도 380여편에 이른다. 그 작품 중 일부를 엮은 <줌마네에서 영화를 만드는 까닭은>을 이번에 상영한다. 줌마네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 중 아마추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문적인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 이 작업이 정식으로 아카이빙되고 한국 독립영화사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추천작이 있다면.

김현민 <애프터 미투>는 열기가 약간은 지나가버린 미투 운동을 돌아보고 그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스쿨미투, 몸의 트라우마, 데이팅 앱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지며 새롭게 질문하기를 요청한다. <세실리와 리디아>는 기분 좋게 본 극실험영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섬광의 밤>은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연상되는 비주얼의 매혹적인 스페인영화다. 유령 같은 마을에 날것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여성들의 존재가 한밤의 섬광처럼 느껴지는, 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황미요조 전체 상영작 중 유일한 무성영화인 폴렛 맥도나의 <더 치터스-청춘의 사기꾼들>을 추천한다. 이주영 뮤지션이 라이브 연주를 할 예정이다. 미얀마 양곤필름스쿨의 단편들도 권한다. 현재 미얀마에서 최근작을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고 한다. 이들의 부탁으로 셀렉션이 더 다채로워졌다. 감독들의 관객과의 대화(GV)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발견’ 심사위원이기도 한 엘레오노르 브베르 감독의 <우리의 전쟁으로 밤은 사라질지니>는 보기의 권력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만들고 의미를 형상화하는 것에 대해 같이 사유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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