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
2021-09-03
글 : 이경희 (SF 작가)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여기서만 말하는 비밀인데(소곤), 사실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다. 그것도 꽤 중증. 나와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덕질을 시작했다.

에반게리온과의 첫 조우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컴퓨터 학원에서 친해진 또 다른 덕후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몇날 며칠 동안 정체 모를 괴물과 싸우는 이상한 로봇에 대해 떠들더니, 한껏 생색을 내며 빨간 케이스에 담긴 CD(놀랍게도 500MB 남짓한 용량의 CD에 영화를 담아 팔던 시절이 있었다) 두장을 빌려준 것이었다. 양면으로 펼칠 수 있게 정성스레 디자인된 패브릭 케이스와 고해상도 이미지가 프린트된 CD의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정품 같았는데, 인터넷을 한참 뒤져도 똑같은 상품이 검색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불법 복제품은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 CD가 뭐였나면 에반게리온의 결말을 다룬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었다. 아직 1화도 안 본 사람에게 결말을 떠먹인 죄인님, 혹시 이 칼럼을 읽고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22년 전의 잘못을 반성하시길.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CD를 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던 건지 아니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했던 건지 나는 이 기이한 로봇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접한 버전은 다들 그렇듯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한국어 더빙판. 실은 이 녀석, 워낙 많은 분량이 삭제된 탓에 내용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더욱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부산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리라. 당시 부산은 전국에서 일본 문물을 구하기 가장 쉬운 도시였다. 나는 한푼 두푼 용돈을 모아 남포동에서 에반게리온 영상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분석글’이니 ‘해석글’이니 하는 헛소리 암호문을 읽고 또 읽으며 점점 중2병 증세를 키워나갔다. 그렇다. 그때 나는 중2였다. 정확히 중학교 2학년에 에반게리온을 처음 시청하는 은혜로운 인생을 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내용이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줄거리가 불친절하기도 하고,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몽환적인 연출과 모호한 대사 탓도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이야기 속 세상에 대해 설명해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에바 덕후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해석 하나쯤 있겠으나,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에반게리온은 심리극이며, 이 작품의 모든 설정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기 위해 배치한 상징물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가 오직 심리묘사를 목적으로 정렬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과 배경을 두고 아무리 아귀를 맞추려 해도 어딘가에서 결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의 심리 상태가 해소되는 순간 아무 설명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이유 또한 그래서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의 독특함 또한 인물들의 심리 상태에서 기인한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아이, 어른,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어딘가 불안정하다. 사람 손길을 두려워하는 외로운 고양이 같다. 미숙하고 불안한 상처 입은 인물들이 솜털을 곤두세운 채 한자리에 잔뜩 몰려 있으니 무얼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잘해보려 하지만 자꾸만 어긋날 뿐이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들이 인류를 지킬 마지막 보루라니.

24화 내내 겹겹이 쌓인 인물들의 불안은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 이르러 폭발적인 파국을 맞는다. 서로를 받아들이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는 괴상한 거절. 끔찍이도 기분 나쁜 결말 때문에 일본에서도 많은 팬들이 분노를 터뜨렸다고 한다. 덕분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 무수한 중2에게 심심한 애도를. 나 역시 영원히 에바의 굴레에 갇혀버린 중2 중 하나다.

그렇게 허망하게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었으나, 에반게리온은 10년 뒤 갑자기 ‘신극장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세상에 되돌아왔다. 총 4편의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리메이크 버전에서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팬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다. 원작의 줄거리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건강해진 이야기를 선보인다.

‘신극장판’이 원작과 달라진 점은 딱 하나다. 어른들이 좀더 어른다워졌다는 것. 주인공 이카리 신지의 주변을 어지럽히던 불안정하고 철없는 어른들이 아주 조금씩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결함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으로, 아이에게 자기 몫을 양보하는 어른으로, 아이를 응원하는 어른으로, 칭찬할 줄 아는 어른으로, 보호하고 희생하는 어른으로, 힘들어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어른으로, 싸움 대신 대화를 제안하는 어른으로, 진심을 솔직하게 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아이가 충분히 울어 후련해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줄 수 있는 어른으로.

이 작은 변화만으로 ‘신극장판’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비슷한 세상에서 비슷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인물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거대한 로봇에 타고 기괴한 괴물에 맞서 싸워야 했던 14살 소년, 소녀들은 이제 절망 속에서도 무참히 꺾이지 않고 강한 어른으로 완성된다. 좋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얼마 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시리즈를 완결짓는 최종편 <신에반게리온 극장판: ||>가 전세계 동시 공개되며 에반게리온은 드디어 26년간의 긴 여정을 끝냈다. 결말을 보아하니 ‘신신극장판’ 따위로 되돌아올 일은 없을 모양이다. 창조한 이야기의 생명력이 너무 질겨 창작자가 직접 무대를 부수고 셔터를 내려야 끝이 나다니 부럽기도 하지.

그런데 막상 끝나버리고 나니 내 삶의 일부도 함께 막을 내린 기분이다. 어릴 적 나는 한없이 에바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현실보다 에반게리온 속 세계가 더 진짜처럼 느껴질 때도 가끔 있을 정도로. 어쩌면 나는 그동안 에반게리온이라는 필터로 세상을 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척 힘겹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얻기도 했다.

14살. 중학교 2학년.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같은 나이에 처음 에반게리온을 알게 된 나는 어느새 소년의 보호자인 카츠라기 미사토의 나이마저 한참 넘어버렸다. 이제 얼마 후면 소년의 아버지인 이카리 겐도와 동년배가 되어버릴 판이다. 과연 나는 좋은 어른이 되었는지.

우리는 픽션을 통해 사랑을, 선악을,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내 머릿속 정의로움은 어릴 적 만화 속 주인공들이 외치던 정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픽션으로 삶을 준비한다. 이제 에반게리온은 끝났고,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충분히 배웠으니 현실로 돌아갈 때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픽션을 써야 할 때다.

우선은 좋은 어른부터 되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