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 소설이나 만화의 영상화 소식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바라는 것이 생긴다. 특별히 아꼈던 캐릭터나 좋아했던 대목이 원작을 읽으며 상상했던 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상화된 작품의 만듦새와 관계없이 기대했던 원작의 요소가 대폭 생략되거나 생각과 다른 결과물로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의외로 상당한데, 그에 대해서는 이번호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칼럼에서 이경희 작가가 통렬하게 서술하고 있다(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 글을 읽는다면 등골이 서늘해질 것 같다).
한편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서사와 인물이 영상의 힘을 빌려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구교환 배우가 연기하는 <D.P.>의 한호열 상병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 위계가 명확한 군대의 규칙에 일견 순응하는 듯 보이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숨 쉴 틈을 만들어내는 이 유연한 캐릭터의 등장은 원작 만화 <D.P 개의 날>의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활력을 시리즈에 불어넣었다.
이주현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D.P.>의 한준희 감독은 군 생활을 “우당탕탕 우스꽝스럽게” 했다는 김보통 작가- 그는 <D.P 개의 날>의 원작자이자 시리즈에 각본가로 참여했다- 와의 만남에서 한호열이라는 인물을 떠올렸다고 한다. 원작자 개인의 서사가 또 다른 창작의 질료가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운데, 이번호에서는 <D.P.> 한준희 감독과 <D.P 개의 날> 김보통 작가의 대담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지닌 창작자들의 대화를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과 동명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임솔아 작가, 농인 부모가 낳은 청인 자녀인 코다(CODA)의 음악대학 오디션 도전기를 그린 영화 <코다>의 션 헤이더 감독, 배우 말리 매틀린과 코다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 감독 이길보라가 그들이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달되어 그 타인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무척 기뻤다는 임솔아 작가의 말처럼, 이들의 대화는 예술이 우리 각자의 삶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사례다. 고유의 결을 가진 세 가지 색깔의 대화를 주의깊게 읽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