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플래시백이 의미하는 것
2021-10-06
글 : 김성찬 (영화평론가)
되돌아보고, 뒤돌아보고, 휘돌아보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에서는 샹치(시무 리우)와 케이티(아콰피나)가 친구들 앞에서 지난 일을 얘기하는 장면이 두번 나온다. 한번은 영화 초반 샹치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샹치와 케이티의 학창 시절을 말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말미 샹치와 케이티가 영화를 관통하면서 겪은 무용담을 말하는 장면이다. 흔한 수미상관의 형식인데, 두 장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앞선 대화의 내용은 오로지 샹치와 케이티의 말로만 전해지지만 두 번째 대화의 내용은 관객도 같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두 번째 대화에 이르기 전까지 모든 장면을 하나의 긴 플래시백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 판단은 <샹치>가 많은 플래시백을 품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영화는 나아갈 만하면 한번씩 뒤를 돌아본다. 자주 뒤돌아보다 보니 샹치와 케이티가 친구들 앞에서 무용담을 얘기하는 장면이 지나갈 찰나 방금 전까지 보았던 것도 모두 플래시백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플래시백 지옥

<샹치>는 첫 시퀀스부터 플래시백이다. 텐 링즈가 무엇인지 알리고 이를 운용하는 웬우(양조위)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첫 시퀀스는 곧 웬우와 샹치 어머니 리의 첫 만남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오버 보이스의 주인공이 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관객은 영화의 시작이 회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플래시백은 영화 곳곳에 배치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동생 샤링(장멍)이 걱정돼 마카오로 향하던 비행기 안 장면에서는 샹치가 케이티에게 자기 이름이 션이 아니라 샹치임을 밝히는 것과 함께 지난날을 회고하는 순간에 플래시백이 나온다. 마카오에서 샹치가 동생 샤링과 조우할 때 샹치가 사흘 안에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샤링의 얘기도 플래시백을 동반한다. 이외에도 회상, 즉 플래시백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이러한 플래시백의 사용에는 특징적인 구석이 있다. 우선 그 수가 많은 게 확연한데, 되레 덜 사용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렇다. <샹치>는 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전설’에 초점을 맞춘 만큼 본분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인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상황이 상당히 많다. 샹치 일행이 웬우의 은신처 감옥에서 만나는 인물인 트레버 슬래터리가 자기는 웬우를 빙자한 가짜 테러리스트 만다린이라는 사실을 전해주는 일도 한 예다. 이러한 장면을 포함해 많은 순간에 인물들은 움직이다 멈춰 자주 과거를 말하는데, 이 순간들은 플래시백으로 다뤄지지 않아도 다른 플래시백 장면들 탓에 마치 플래시백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샹치>라는 이야기 자체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즉 메타 이야기 같은 면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데 짐작되는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샹치 어머니 리가 죽게 된 연유를 담은 플래시백은 한참 뒤에 나온다. 인물의 감정선을 고려한 연출이라 해도 굳이 해당 시점에서 플래시백을 소환해야 할 뚜렷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또 샹치가 동생 샤링과 마카오에서 대면할 때의 플래시백은 샤링이 샹치가 사흘 안에 돌아온다고 했다는 대사를 말하기 위해서만 마련된 것 같아 효용성에 의문이 든다.

게다가 플래시백들의 내용도 서로 상당 부분 겹치고 반복돼 경제적이지 않은데, 이쯤 되면 중구난방인 듯한 플래시백 활용을 깔끔히 정리한 연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업>에서 노부부의 일생을 스케치하는 유려한 몽타주나 <그린 나이트>의 마지막 부분이 품은 묵직한 정서로 물 흐르듯 전개된 편집은 유익한 참고 자료가 됐을 법하다.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샹치>의 플래시백과 유사 플래시백을 일종의 증후로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유사한 출발점을 지니는 <블랙팬서>와 비교한다면 더욱 분명해진다.

유동하는 주변부

주지하듯 <블랙팬서>는 <샹치>와 닮은꼴이다. 다른 이유뿐 아니라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서 볼 때도 그렇다. 여기에 <블랙 위도우>까지 더해서 말해도 된다. 백인 남성 우월의 시대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영화로 인한 일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현실은 분명 과거보다 진일보했다. 물론 이 현상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작은 지분을 공여한 것으로 기존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는 반론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잠시 접어두자. 그렇다고 한다면 <블랙팬서>와 <블랙 위도우>, 그리고 <샹치>의 등장은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 다만 각각의 성취는 동일하지 않다. 특히 <블랙팬서>와 <샹치>를 비교하면 <샹치>의 한계는 명백해 보인다. 근거는 쉽게 휘둘리지 않을 영향력을 바탕으로 집단 고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재현이 이뤄졌는지 하는 점이다.

공간과 정체성의 관계에서 볼 때 집단이 거주하는 영토로부터 발산하는 확장력에서 두 영화의 성패가 갈린다. <블랙팬서>의 경우 집단의 근거지인 와칸다가 있다. 와칸다는 숨겨져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바깥으로 향해 있다. 그들의 영토는 배타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언제든지 돌아와 정체성을 지켜낸다. 와칸다라는 지역 자체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가상으로나마 그들이 응집해 거주할 영토가 영화적으로 재현돼 고유성을 띠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블랙팬서>는 플래시백이 큰 효용을 지니지 못한다. 곱씹어 추억하고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영토를 지향하는 건 정주가 불가능해 확고한 정체성을 지니지 못할 때 주로 발현하는 의지이므로 <블랙팬서>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블랙팬서>의 인물들은 주어진 영토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기만 하면 된다.

반면 <샹치>에서 샹치 무리의 영토는 불분명하다. 탈로로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가 다 지나간 후 과연 탈로가 주된 영토인지 확언하기 힘들다. 샌프란시스코의 일상과 웬우에게 이어받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탈로 중 과연 어떤 곳이 그들에게 할당된 영토인지 확정적이지 않다. 탈로는 샹치 일행의 근거지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기원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방문한 곳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맥없이 유동한다.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마카오를 거쳐 웬우의 은신처와 탈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어떻게 보면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처럼도 보이지만 오히려 개방적인 곳에서 차츰 더 폐쇄되고 고립된 곳으로 침잠하는 것에 가깝다. 바꿔 말하면 이같은 경로는 주변에서 더 바깥의 주변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러고서 샹치와 케이티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있다. 여기서 그들이 탈로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행위는 아직도 정체성에 근거한 영향력을 건사하지 못한 채 과거에 정박해 물결치는 대로 흔들리는 것과 다름없다. 나름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전설만 되뇌며, 다시 말해 회상을 반복하며 유랑하는 처지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 성, 인종, 계급 등의 면에서 다양한 모습의 슈퍼히어로가 재현된다는 건 재현의 층위에서만큼은 슈퍼히어로들이 동등한 지위를 획득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샹치>에서 드러난 플래시백의 과용은 증후로서 아시안 슈퍼히어로를 재현하는 데 상당한 불안이 내재돼 있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 같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샹치가 단독 주연하는 영화의 등장은 이번으로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샹치에게 주어진 자리는 다른 슈퍼히어로 옆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블랙팬서>가 준주변까지 갔다면 <샹치>는 주변임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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