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누군가에게 고여 있는 노래
2021-10-07
글 : 윤덕원 (가수)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목표를 떠나서 생각해본다면, 최근의 대중음악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좋은 배경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적당한 분위기에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많이 소비되고 매출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음반을 구입하는 것보다 스트리밍 서비스 위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음악의 소비는 재생 횟수에 비례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틀어놓을 수 있는’ 음악이 시장에서는 더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음반의 시대에도 이런 식의 기능적인 접근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음악은 가사가 들리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할 때는 가요보다 팝송이나 연주곡 위주로 듣는 친구가 많았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뉴에이지 음악의 인기가 높았던 기억이 있다. 카페 음악으로 어쿠스틱한 팝이나 재즈곡이 환영받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한곡을 오래 듣는 경우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음악 말고도 콘텐츠는 쏟아지고 사람들의 집중력은 더 분산되고 있는데 노래는 어쨌거나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음악은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이라고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청소년기의 생활 패턴에서 음악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멜로디와 가사가 익숙해지고 어떤 장소나 시간, 상황과 마음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나는 노래가 사람에 고이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지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입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고여 있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고, 내 안에 가득 고이는 노래를 만나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다. 그것이 내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든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든 노래가 사람들에게 머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꼭 좋은 노래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노래들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날이 이어져도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마음을 온통 젖게 하는 노래를 만나는 순간이 있다. 최근 SNS에서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며 추천한 곡을 들었을 때다. 올해 초에 남들 모르게 힘든 시간을 겪었다는 친구는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말하며, 그 시간들을 이겨내는 데에 이 노래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상담가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코로나19에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는 추천을 받아서 음악을 함께 듣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가수 오열의 <강강>을 듣게 되었는데,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화면을 꺼야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항상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스스로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에게, 삶은 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다는 노랫말이 위로가 되고 힘을 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글은 결국 읽는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강강>으로 위로받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샘을 길어올리는 마중물이 된 셈이다. 노래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공명하는 모습을 눈으로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강강>은 그의 마음속에 고여서 회복의 매개가 된 동시에 자신의 글과 함께 다른 이들의 가슴에 또다시 고이게 되지 않았을까. 이 노래의 후렴구 가사는 독특하게도 익숙한 민요를 재해석하고 있다. 아리랑이나 강강술래를 할 때 부르는 익숙한 노래들이 모여 조각보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을 거쳐온 노래는 그 형태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입속에서 셀 수 없을 만큼 굴러져온 염원들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민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을까? 노랫말은 의성어에 가깝게 변해버렸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때로 날카로운 마음은 노래가 되기 전에 입안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아름다운 울림을 가진 단어는 많지만 노래에 담고자 하는 의미는 필연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움츠려야 한다. 해변을 방황하며 닳고 닳아서 동그란 모양이 된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주워서 만져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아마도 비교적 최근의 물건이었을 그것들은 수만년을 거쳐 다듬어져온 돌들과는 다르다. 이제는 부드러워진 모서리를 손으로 훑을 때 그것의 원래 모양이었던 병 조각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해변의 유리알들은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되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좋은 노래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인 채로 살아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때로 흘러넘쳐 주변으로 함께 흘러간다면 그 과정에서 노래는 닳고 닳아가며 그 생명을 연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목소리를 통해 다듬어지면서 노래는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강강> _오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고개가 아닐까

누구든 우린 고개를 넘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올라오는 이의 마음이 보이고

고개를 두 번 넘으면

무엇이든 자신감이 붙고

고개를 세 번 넘기 전에는

두려워 뒷걸음질쳤지만

결국 내 길임을 알고서

다시 돌아왔지

강강술래 아라리요 옹헤야

늴리리야 바람이 분다

고개를 넘어간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공통점이 딱 두 개 있다면

고개와 사람이 아닐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일러스트레이션 EEW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