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쁘띠 마망' 혈연과 우정에 기반한 여성적 관계의 아름다움
2021-10-01
글 : 김소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이후 쏟아진 요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셀린 시아마 감독은 주의를 잃지 않고 역점을 찍어내려갔다. <쁘띠 마망>은 장르와 프로덕션 규모를 확장함으로써 가시적인 지표에 부응하는 방식이 셀린 시아마의 관심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워터 릴리스> <톰보이> 등 감독의 초기작들이 젠더와 성 지향성을 탐구하며 날렵한 작가적 관심사를 각인했다면, <쁘띠 마망>은 혈연과 우정으로 맺어진 여성적 관계의 애상을 향한다. 소박한 듯 보이나 한결 더 신비로운 내면 세계의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리는 영화다.

영화는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의 양로원과 시골집을 차례로 방문하는 넬리(조세핀 산스)의 조용한 며칠을 그린다. 8살 소녀의 눈에 할머니는 더이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말없는 엄마의 등은 자주 슬퍼 보인다.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엄마 마리옹(니나 뫼리즈)이 어느 아침 갑자기 떠나버린 이후, 넬리는 숲속에서 엄마와 똑같이 마리옹이란 이름을 지닌 이웃집 소녀(가브 리엘 산스)와 마주친다. 키와 몸집, 머리색이 같고 나뭇가지로 오두막 짓기를 좋아하는 두 여자아이는 전부터 오래 알던 사이처럼 금세 단짝이 된다.

주위로 숲과 강이 둘러쳐진 외딴집, <쁘띠 마망>은 단조롭다시피한 유한한 공간 위에서 오로지 영화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놀라운 연결의 순간을 꾸린다. 기억과 상상, 애도와 염원이 부드럽게 뒤섞여 8살 소녀의 어깻죽지 위로 날개를 펼쳐낸 것만 같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우리를 하나로 잇는 이 용감한 모험담은 여성간의 애착과 유대에 관해 정확히 교감하고 있으며 그 형식으로서 초현실의 경계를 감쪽같이 지운 채 공간과 시제를 넘나든다. 요컨대 <쁘띠 마망>은 구도가 돋보이는 숏을 절묘히 대응하거나 반복시켜 영화적 응시를 형성하는 셀린 시아마의 진귀한 캔버스다. 단정한 손길로 기적을 조율해내는 그의 마술은 어느새 관객 각자의 사적인 경험마저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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