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울음은 한바탕 쏟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래서 따라 울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밤이 있는데, JTBC <인간실격>은 같이 운다고 슬픔을 승화시킬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폐지 줍는 아버지(박인환)를 붙잡고 “아부지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요. 나는 아부지보다 가난해질 거 같아”라고 못난 소리를 토하는 부정(전도연)과 공통분모를 찾다간 내 삶까지 아득하게 잃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당신은 대체 뭐가 되기를 바랐는지, 스스로 흡족한 무엇이 되지 못한 채로 그냥 살아질 수는 없는지 따져 묻는 질문은 다시 내게 돌아올 테고 감당할 수 있다면 제법 튼튼한 상태일 거라고, 그렇지 못한 나는 당신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한데 부정에게 거리를 두어도 감정은 전이된다. <인간실격>은 저이가 무엇 때문에 흐느끼는지 설득하는 대신, 당사자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호한 추락의 감정을 세공한다. 부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이 각자의 슬픔을 겪는 긴 하루를 느릿한 속도로 재생하는 드라마. 우울이 전염되어 명치가 뻐근하도록 한숨을 쉬면서 왜 주말 밤마다 보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 힘듦을 토로하면 내가 더 힘들다고 경쟁하는 말이 오가는 세상. 처지를 견주지 않고 삶을 다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당신이 조금 편안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여기 있다.
극중 소품들의 흐름에도 눈길이 간다. 역할대행업을 하는 강재(류준열)는 손님에게 받은 명품 손수건을 버스 안에서 울고 있던 부정에게 건네고 부정은 5만원을 값으로 치른다. 그 돈은 고단한 하루의 끝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며 현금인출기에서 단기카드대출로 뽑았던 돈이고, 강재는 여러 번 접어두었던 그 돈을 쓸쓸하게 죽은 이의 저승길 노잣돈으로 태운다. 케이크, 포도당 캔디, 귤, 유통기한 지난 토마토주스 따위가 고독한 사람들 사이에 의미의 매듭을 지으며 흐른다. 이런 시시한 물건들에 기대고 구원의 토템으로 삼아 건너가는 시간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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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버클리>
웨이브, 티빙
저수지에서 죽은 강재의 전 동료 정우 형(나현우)이 좋아했던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는 강재와 친구들을 거쳐 부정에게까지 연결되고, 노래의 의미는 처음보다 복잡해진다. 스물여덟에 사망한 천재 뮤지션 팀 버클리의 아들 제프 버클리는 한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서른살에 강물에 휩쓸려 역시 짧은 생을 마쳤다. <굿바이 버클리>(2012)는 아버지의 추모 공연에 참가하는 제프 버클리의 이야기다.
<봄날은 간다>
넷플릭스, 웨이브
검은 코트, 빨간 목도리에 푹 파묻힌 부정의 모습은 드라마 4회까지 이어진다. 허진호 감독의 2001년작 <봄날은 간다>의 은수(이영애)의 인상적인 첫 등장도 같은 차림새다. 영화에서 상우(유지태)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박인환과 고모 역의 신신애가 <인간실격>에서는 부정의 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