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3호 [프리뷰] 연상호 감독, '지옥'
2021-10-08
글 : 송경원

< 지옥 > Hellbound

연상호/한국/2021년/151분/온 스크린

의도란 무엇인가. 의도가 무엇인가. 비슷해 보이는 두 문장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우리는 대개 전자보단 후자에 익숙하다. 의도의 본질을 탐문하는 것보다 의도를 짐작하고 결정짓는 편이 더 손쉽고 안심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명확하게 설명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백을 허용하지 못하고 의도와 의미를 채워 넣기 위해 발버둥 친다. 어쩌면 그 때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은 대체로 ‘그렇다고 치고’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거나(<부산행>) 갑자기 초능력이 생겨도(<염력>) 연상호는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대신 갑자기 변해버린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지켜본다. 요컨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차라리 그런 세상에 떨어진 인간들의 행동을 궁금해하는 쪽에 가깝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도 마찬가지다.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웹툰 <지옥>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지옥으로부터 죽음의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세계의 설정은 간단하다. 어느 날 천사로 불리는 존재가 나타나 누군가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고 지옥에 간다고 알려준다. 예정된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지목된 사람을 무자비하게 난타하고 고열로 태워버린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설 작품이 <지옥>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작품의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죽음을 고지하는 천사처럼 영상 콘텐츠의 변화와 진로를 예견하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1, 2부로 구성된 원작 웹툰을 넷플릭스 6부작으로 제작한 <지옥>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반부 3편을 묶어 극장에서 상영한다. 원작으로 치면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죽음의 고지를 받은 한 남자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옥의 사자들에게 끌려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신흥 종교단체 새진리회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10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신의 의도를 설파하고 있다. 죄지은 사람에게 천사가 나타나 죽음을 고지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 단죄한다는 주장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의 불의를 경험한 자, 법의 한계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신의 집행이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믿고 싶어 한다. 지옥의 사자 출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진경훈(양익준)은 새진리회를 의심한다. 진경훈 형사 역시 아내의 억울한 죽음과 범인의 가벼운 처벌 앞에 법의 무력함을 경험한 바 있다. 진경훈 형사의 딸 희정(이레)은 새진리회의 주장에 이끌려 자원봉사를 나가고 이를 알게 된 진경훈 형사는 새진리회를 더욱 경계한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두 번째 죽음의 고지가 나타나자 두 번째 고지의 주인공인 싱글맘 박정자(김신록)를 중심으로 믿는 자와 의심하는 간의 투쟁이 시작된다.

연상호 감독은 오리지널리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의도를 심는데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창작가로서 그가 집중하는 것은 오직 주어진 현상에 대한 리액션과 오락물로서의 재미 그 자체다. <지옥>은 호러, 스릴러 장르의 관습을 적극 차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익숙한 것을 제대로 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집중한다. 요컨대 극적인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떤 수단이든 적극 활용한다. <지옥>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연출자로서 연상호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지옥>에선 사실적인 폭력 묘사, 신과 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들,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질적일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의 호흡 속에 묶어내는 건 결국 연상호 특유의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이다. 다만 초현실적인 상황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지옥>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대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해부하고 풍자하는 길을 택한다. 허술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늘 그랬듯 도드라지는 장점이 아쉬운 지점을 효과적으로 가려주는, 대중적으로 제대로 조율된 이야기다. 과격한 묘사에 불편하거나 진이 빠지거나 혼란스러울 순 있어도 이 도발적인 상상력 앞에 지루할 틈은 없다. 6부작 시리즈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11월19일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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