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 Hellbound
의도란 무엇인가. 의도가 무엇인가. 비슷해 보이는 두 문장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우리는 대개 전자보단 후자에 익숙하다. 의도의 본질을 탐문하는 것보다 의도를 짐작하고 결정짓는 편이 더 손쉽고 안심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명확하게 설명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백을 허용하지 못하고 의도와 의미를 채워 넣기 위해 발버둥 친다. 어쩌면 그 때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은 대체로 ‘그렇다고 치고’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거나(<부산행>) 갑자기 초능력이 생겨도(<염력>) 연상호는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대신 갑자기 변해버린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지켜본다. 요컨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차라리 그런 세상에 떨어진 인간들의 행동을 궁금해하는 쪽에 가깝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도 마찬가지다.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웹툰 <지옥>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지옥으로부터 죽음의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세계의 설정은 간단하다. 어느 날 천사로 불리는 존재가 나타나 누군가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고 지옥에 간다고 알려준다. 예정된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지목된 사람을 무자비하게 난타하고 고열로 태워버린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연상호 감독은 오리지널리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의도를 심는데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창작가로서 그가 집중하는 것은 오직 주어진 현상에 대한 리액션과 오락물로서의 재미 그 자체다. <지옥>은 호러, 스릴러 장르의 관습을 적극 차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익숙한 것을 제대로 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집중한다. 요컨대 극적인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떤 수단이든 적극 활용한다. <지옥>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연출자로서 연상호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지옥>에선 사실적인 폭력 묘사, 신과 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들,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질적일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의 호흡 속에 묶어내는 건 결국 연상호 특유의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이다. 다만 초현실적인 상황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지옥>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대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해부하고 풍자하는 길을 택한다. 허술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늘 그랬듯 도드라지는 장점이 아쉬운 지점을 효과적으로 가려주는, 대중적으로 제대로 조율된 이야기다. 과격한 묘사에 불편하거나 진이 빠지거나 혼란스러울 순 있어도 이 도발적인 상상력 앞에 지루할 틈은 없다. 6부작 시리즈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11월19일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