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6호 [인터뷰] '세이레' 박강 감독, “공포영화가 아니라 공포심에 관한 영화다”
2021-10-11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영작 <세이레>의 박강 감독

<세이레>는 태어난 지 21일(세이레)이 채 되지 않은 아기의 아빠 우진(서현우)이 과거의 연인 세영(류아벨)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불길한 일들을 겪는 이야기다. 금기를 깬 주인공이 불안과 공포를 마주하는 이야기 혹은 나쁜 생각을 품었던 남자의 죄의식과 악몽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믿고 행하는 한국적 미신의 요소를 공포의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박강 감독의 첫 장편영화 <세이레>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받았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는 박강 감독을 만났다.

-최초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했나. 모티브가 된 것이 있다면.

=과거의 경험인데, 지인이 아이가 막 태어나 장례식에 가지 못하게 됐다며 상주에게 죄송하다고 대신 전해달라고 했다. 그 말을 상주에게 전했더니 상주는 아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고 전해달라더라.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례식장에서 한쪽은 미안해하고 한쪽은 축하하고. 그런 상황이 영화적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그 기억에서 출발해 단편 <세이레>를 만들었고, 단편을 확장해 장편 <세이레>를 만들었다.

-얘기한 것처럼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고민한 지점은 뭐였나.

=단편과 장편은 장르적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두편 모두 관계와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편으로 만들면 단편에서 그린 것보다 더 깊이 있게 인간관계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편 <세이레>에도 장례가 치러지는 3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장편에선 그 앞뒤의 시간을 늘리기보다 인물들의 관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진 캐릭터에 집중하며 쓴 이야기라 상대적으로 우진의 아내 해미(심은우)를 그리는 게 어려웠다. 해미는 우진에게 일종의 금기에 대해 말하는 인물, ‘하지 말라’는 압력을 주는 인물이다. 전반적으로는 덜 장르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공포영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장르적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될텐데,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식의 서프라이즈를 즐기지 않는다. 장르적 장치를 얼마나 넣고 뺄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이 조금 힘들었다.

-처음부터 장르적으로 접근한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인가.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었고, 공포심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공포심에 대한 영화다.

-한국의 미신과 풍습을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내는 요소로 활용한다.

=기본적으로 미신적인 것들에 흥미를 느낀다. <매몽>(2019)이란 단편에선 꿈을 파는 이야기를 했다. 맹목적 믿음까지는 아니지만,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간다. 이 작품 또한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에선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라는 한마디에서 파생된 이야기고, 거기서 시작해 여러 미신의 내용을 가져왔다. 개인적으로 <세이레>는 마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정해진 규칙과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내겐 흥미로운 것 같다.

-장례식에 다녀온 후 우진은 점점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엔딩을 보면서 이건 저주받은 우진의 이야기로도 느껴졌다.

=촬영과 편집을 하면서 스탭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재밌게도 우진에 관해선 상반된 시선이 존재했다. 아내가 하라는 것 다 했는데 왜 우진의 결말은 이런 거야? 혹은 처음부터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안 그러는 거야?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면 모든 것은 우진의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우진이 잃어버린 것, 과거에 품었던 나쁜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세영과 예영 쌍둥이 자매가 등장한다. 쌍둥이 설정에 대해 부연을 해준다면.

=죽은 존재가 떡하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방법은 뭘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세영과 예영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혼돈이 생겨난다. 세영과 예영을 연기한 류아벨 배우도 어려워하며 물어보더라. “그럼 예영과 세영은 동일인이에요? 둘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에요? 예영이 세영에 빙의된 거예요?” 우진이나 관객 입장에선 두 사람이 동일인처럼 보여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를 정말 애매모호하게 잘 해주셨다. (웃음)

-주인공 우진 역에 서현우 배우를 캐스팅했다.

=처음부터 특정 배우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쓰진 않는다. 내게 서현우 배우는 독립영화 <병구>(2015), <보희와 녹양>(2018)에서 보여준 친근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배우인데, <이주선>(2020)이라는 단편을 보고 예민하지만 어설픈 면도 있는 양가적인 느낌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바쁜 일정이었는데도 기꺼이 출연해주셨다.

-영화 내내 꿈과 현실이 반복되는데, 우진은 썩은 사과 꿈을 자주 꾼다.

=악몽 같은 태몽, 태몽 같은 악몽 이후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꿈에는 씨앗에 대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다. 막연히 열매와 씨앗이 있는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태몽 중에 사과, 배, 복숭아 같은 과일 태몽이 있고, 사과에는 선악과로서의 상징성도 있어서 사과가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단편을 만들 때부터 늘 꿈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 이번엔 그 꿈이 악몽이 되었는데, 작품 시작하기 전 스탭들, 배우들에게 이 영화가 악몽 같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꿈, 현실, 꿈,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이유는 꿈을 꿀 땐 그 꿈이 논리에 맞는데 꿈에서 깨면 논리에 벗어난 이야기가 되기 쉬운 것처럼 이 이야기도 그런 방식으로 그려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세영의 시체 안치실 장면도 기이했다.

=금기에 대한 요소를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 우리나라엔 시신에 대한 금기가 있지 않나. 관을 열고 시신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는데, ‘관을 열다’라는 문장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레퍼런스가 된 영화가 있나.

=공포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오컬트는 좋아한다. <유전> <미드 소마> <라이트 하우스> <킬링 디어> 같은 영화들을 좋아하고, 그 작품들이 레퍼런스가 되기도 했다. 오컬트 좋아하는 분들이 <세이레>를 보면 이게 무슨 오컬트냐 할 수도 있겠지만, 오컬트의 중요한 부분도 결국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감독, 영향을 받은 감독은.

=너무 많다. 딱 한명을 꼽으라면 박찬욱 감독님. <올드보이>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늘 내 마음에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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