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박종현의 1인 프로젝트 ‘생각의 여름’이 영화 <생각의 여름>에 팀명을 도용당하고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일에 유감을 표했다. 지난해 5월22일, 박종현은 자신의 SNS를 통해 “‘생각’과 ‘여름’ 두 단어를 조사로 엮은 하나의 낯선 조어를 작품과 생계를 위한 ‘상표’로 사용해온 나로서는 숨 막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생각의 여름’은 가수공연업 외(제41류)의 부문에서 ‘상표출연공고’가 되어 있지만 영화 및 영화 굿즈와 관련된 문구류와는 무관한 업종/업태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팀명을 도용당한 게 상표법에 걸리지는 않는다. 당시 글을 올릴 때도 소유권 분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는 점을 확실히 밝혔다. 그리고 지난해 6월6일, <생각의 여름>을 연출한 김종재 감독이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영화의 내용이 ‘생각의 여름’이란 제목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몇년 전 우연히 알게 된 싱어송라이터 박종현의 프로젝트 이름을 안일하게 썼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올해 8월12일 <생각의 여름>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제목 그대로 극장 개봉했다. 박종현은 <씨네21>과의 통화에서 영화 개봉 소식에 대해 “사실 개봉을 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시사회에 와서 영화를 보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9월28일 SNS를 통해 팀명 도용건을 다시 언급했던 이유다. 이후 김종재 감독은 박종현에게 “1년 전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고 이렇게까지 할 의도는 없었다고 한 말이 영화 제목을 바꾸기를 원한다는 의미인 줄은 몰랐다. 죄송하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씨네21>과의 통화에서는 “그분이 원하는 건 입장 표명 글이라고 생각했다. 마무리가 잘됐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박종현이 처음부터 언급했던 것처럼 음악 프로젝트 팀명에 대한 상표출연공고가 영화 제목 저작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은 물을 수 있다. <생각의 여름>이 정식 개봉한 이후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생각의 여름’을 검색하면 영화 관련 내용이 중점적으로 노출된다. 박종현은 “처음 대화를 나눌 때도 이에 대해 언급했다. 15년 동안 일궈왔던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가 밀리는 것은 이 일로 먹고사는 독립예술가에게는 굉장히 큰 피해”라는 입장이다. 김종재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너무 다르다”라고 운을 뗐다. “제목을 바꿔달라는 직접적인 연락을 받은 적이 없고, 그분은 이 제목을 쓰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전에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맞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에서 제목을 왜 바꿔야 하나 생각했다.” 영화를 배급한 인디스토리는 “두 사람의 갈등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잘 해결됐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에” 기존 제목 그대로 개봉했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기존 제목을 빌려오는 일은 빈번하다. 가령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 ‘해치지 않아’를 검색하면 예능 프로그램 <해치지않아>가 먼저 뜨고 영화 <해치지않아> 관련 내용은 하단의 ‘다른 정보’를 클릭해야 읽을 수 있다. 같은 영화 분야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순수의 시대> 등 유명 고전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는 사례들이 있어서 혼선을 주기도 한다. ‘도의적 책임’만을 묻기에는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제목의 독창성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을 해결할 공적 절차나 조치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질문을 던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