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은 영화배우이자 드라마 배우이자 뮤지컬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이다. 벌써 세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고 영화제 시즌이 되면 감독으로서 초청받는다. 원래 유준상 감독은 남미에서 장편영화 <그때 오늘>을 찍으려고 했다. 코로나19로 촬영이 기약 없이 밀리게 됐을 때, KT 콘텐츠 전문 자회사 스토리위즈와 바로 엔터테인먼트의 미드폼 옴니버스 프로젝트 <Re- 다시 프로젝트>가 유준상 감독에게 단편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올해 강릉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는 <그때 오늘>의 한 조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준상 감독에게 이번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그때 오늘>은 남자(유준상)와 여자(정예진)가 만나기 3년 전, 6개월 전, 3일 전, 그리고 1개월 후라는 시간대 별로 나열되어 구성된 작품이었다. 변하는 모든 시간들이 ‘그때 오늘’이었다는 의미다. <스프링 송>도 뮤직비디오의 퍼즐을 맞추는 게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때 오늘>도 시간대에 맞춰서 그 상황을 연기한다. 남미에서 촬영해야 하는 영화가 코로나19로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을 때 단편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고, 여자가 잠깐 한국으로 들어올 때에 맞춰 영화를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장편과 단편을 같이 보면 장편 영화의 어떤 대목에 단편이 포함되는 지를 알 수 있다.
- <깃털처럼 가볍게>의 시나리오를 남효민 라디오 작가가 썼더라.
= <그때 오늘>의 시나리오도 남효민 작가님이 썼다. 직접 시놉시스를 쓰다가 양도 너무 많고 벅차서 작가님에게 의뢰했다. 작가님이 ‘엄유민법’(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가 결성한 그룹) 콘서트의 작가다. 영화 시나리오는 한 번도 안 써보셨는데 오히려 이런 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토리를 설명해드리고 시나리오를 부탁드렸다. 장편 이후에 이번 단편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서 함께 하게 된 거다.
- 남효민 작가를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시키고, 임보라 재즈 피아니스트나 <씨네21> 김성훈 기자도 배우로 등장시킨다. 정혜강 JTV 전주방송 PD도 잠깐 등장하는데 연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카메오로 활용한 이유는.
= 임보라 피아니스트는 계속 내 음악을 재즈로 편곡하거나 같이 음악을 만들던 친구다. <그때 오늘>도 함께 할 거다. 이번에 내가 만든 음악을 연주했으니까 피아노 연주 장면에서 배우로도 나와 보라고 제안했다. 정혜강 PD님은 우리가 섭외한 장소에서 일하는 분이셨는데 실제로 연기에 대한 꿈이 많았다. PD님도 함께 출연해달라고 제안했는데 연기도 너무 잘하시고 정말 열심히 했다.
- 극중 ‘여자’를 연기한 정예진은 어떻게 연이 닿아서 캐스팅하게 됐나.
= 영화 <소년들>(감독 정지영)에서 설경구 배우님 따님으로 나온다. 첫 상견례 자리에서 봤는데 너무 이미지가 좋아서 장편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연락했다.
-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영상들은 유튜브 브이로그 같기도 하다.
= 코로나19 시대에 예진 배우와 계속 소통을 해야 하는데 만날 수 없으니까 한 달 정도 배우의 일상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했다. 일종의 연기 연습이기도 하고 그 영상을 보면서 작품 아이디어도 얻었다. 처음엔 배우가 되게 어색해했는데 30개가 넘어가면서 부터는 술술 찍어서 보내더라. 그런 상황에서 단편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다. 예진 배우가 보낸 100개 넘는 영상 중 실제 영화에 삽입된 것도 있다. 영화에 맞는 일상을 계속 주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유준상 감독 영화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소속사 나무 엑터스와 쥬네스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 영화 스태프로 참여한다는 거다.
= 이젠 척하면 척이다. 하루에 2테라바이트를 찍은 날도 있다. 보통 촬영 현장에서 용량을 최대로 썼을 때 그 정도가 되는데 말이지. 송재호 매니저는 동시 녹음의 달인이 됐다. 키가 커서 팔도 길고, 그 친구가 손을 떠는 스타일인데 바람이 불어도 손을 떨면서 하니까 결국 제대로 잡히게 된다. 퇴사하고 본인이 직접 동시 녹음 회사를 차리려고 하던데? (웃음) 그리고 이번에 이우진 매니저가 새롭게 촬영 퍼스트가 됐다. 이동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일부러 인원수를 줄이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은 이 안에서 한다. 아마 매니저 친구들이 현장 경험이 많아서 그동안 옆에서 보고 들은 게 많아서 가능한 것 같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이야기하는 장면은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는 걸 반복과 차이를 통해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 제목 짓기 어렵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렇나.
= 아니다. 일단 나는 음악을 많이 만들어왔기 때문에 제목은 순간 순간 나온다. 사랑은 일상을 크게 벗어나는 고점과 저점 사이의 증폭이 아주 큰데, 일상의 그래프 전체로 따져보면 그냥 일부분일 뿐이다. 사랑과 일상이 한 부분에 맞닿아 있는, 그냥 단순히 그저 오늘이라는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장편영화를 보면 결국 여자가 했던 말이 맞긴 한데, 누구 말이 맞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음악을 먼저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나, 시나리오를 쓰고 음악을 만드나.
= 음악을 먼저 만든다. ‘깃털처럼 가볍게’는 눈이 오는 날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만든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다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떠올린 제목이다. 다음 작품도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음악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10곡 넘게 작곡해서 편곡을 앞두고 있는데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질지 어떨지 몰라서 작업은 스톱시켜 놓았다.
- <깃털처럼 가볍게>가 기록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유준상이란 사람 역시 기록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아닐지.
= 오늘 강릉에 오는 차 안에서 틈틈이 노래를 만들고 제목을 붙였다. 일기는 아주 오랫동안 썼고 공연을 하면 공연일지를 쓰고 그런 기록이 내겐 아주 익숙하다. 그동안 쌓여 있던 기록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지점과 만나면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차기작은.
= 내년에 방송될 tvN 드라마 <환혼>을 찍고 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재밌게 해 보려고 의논도 많이 한다.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 <소년들>에서는 굉장한 악역으로 나온다. 내년쯤 새로운 공연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장편영화 <그때 오늘>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