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 세일즈 감독은 거대 스튜디오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자본에 구애 받지 않는 독립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으로 흔히 존 카사베츠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국 독립영화 2세대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강릉국제영화제에서는 소설가이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로서 197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며 선보였던 작품 가운데 아카데미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의 대표작 <패션 피쉬>,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었던 <총을 든 자들>을 비롯해 '독립영화정신'을 느낄 수 있는 문제적인 메시지와 파격적인 제작방식을 도입한 초기 저예산 영화들, <리아나>, <다른 행성에서 온 형제>, <메이트원> 등 5편을 소개한다. 그의 영화는 정식으로 한국에 소개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 상영은 영화팬들에게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존 세일즈 감독은 미국 사회의 인종, 젠더, 계급 갈등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다가 B무비의 거장 로저 코먼 감독의 사단에서 <피라냐>, <엘리게이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소품 담당을 했던 <우주의 7인> 등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본격적인 영화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4일, <리아나> 상영 직후 존 세일즈 감독은 관객들과 화상으로 만나 미국에서 독립영화 감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출 데뷔작 <세코커스 7>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색과 제작방식을 꾸준히 다져 나갔던 그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에서 오간 그와의 대화를 옮긴다.
나의 두 번째 연출작 <리아나>를 만들 당시인 1980년대 초는 지금과 많이 다른 환경이었다. 그 때는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가 거의 전무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세계로 초대해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리아나는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 이른 나이에 교수와 결혼했고 자식을 키우는 가정적인 삶에 안주했다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갑자기 과거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살면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게 되지만 그는 동시에 엄마이기도 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성소수자의 삶이란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정체성 중 일부임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점, 이혼은 그녀에게 경제적인 타격을 주는 중요한 이슈라는 점 등, 성정체성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 그 사람 전체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 이후 <다른 행성에서 온 형제><메이트원> 등을 연출했는데 특히 <메이트원>은 행운과도 같은 현장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잘 알려진 크리스 쿠퍼, 제임스 언 존스, 매리 맥도넬 등이 출연했지만 당시로서는 신인배우였기 때문에 투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은 정말 숙련된 팀으로 꾸려졌지만 열악한 저예산 영화 현장이었기 때문에 한번 찍을 때 최대한의 것들을 담아내야 했던 현장이었다. 나는 영화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영화제작 입문 서적을 찾고 싶은데 마땅한 책이 없었다. 있다 해도 실용서라기보다는 철학책에 가까운 책들 뿐이었다. 그래서 영화 이론을 배우지 않고 몸으로 부딪쳐서 체득한 내 경험을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이트원>의 촬영장 경험을 책으로 썼다. 이 책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현장에서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한 프레임 안에 담긴 수많은 정보들이 스토리텔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배경에 보이는 벽지는 무슨 색으로 할지부터 시작해서 밤에 찍을지 낮에 찍을지, 배우의 의상은 뭘 입힐지 등 감독이 결정해야 할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메이트원>은 또 미국에서 노조들이 조합원을 모집을 할 때 홍보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미국의 광산조합 노조가 새로운 조합원을 모집하기 위해 이 영화를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찍을 때 사실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한다. 흔히 할리우드 영화가 비슷한 풍경이 느껴지는 다른 도시에서 찍은 다음 영화 안에서는 다른 도시인 것처럼 보여주는데 나는 그런 방식을 싫어한다. 가급적이면 해당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되는 곳에 가서 찍는다.
또 나는 가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정도면 굳이 배우를 쓰지 않고 내가 직접 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나보다 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는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맡을 수 있는 연기의 폭은 확실히 한정적이다. 나는 일부러 인물의 감정 변화가 별로 없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다. 촬영 형장 특성상 순서대로 찍을 수가 없어 배우가 연기해야 할 인물의 시간이 뒤섞인다면 나는 연기가 어렵다. 시간 순대로 별다른 감정적 동요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을 연기한다. 찰리 채플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같은 경우에도 그렇지 않나.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는 감독들이지만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다 비슷하다.
작가로서 문학적인 글쓰기를 할 때와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쓸 때 사용되는 근육은 비슷하다. 다만, 내가 창조하는 세계의 구조에 차이가 생긴다. 내가 단편소설을 쓸 때는 오직 그 창작 공간에 나 혼자만 존재하면 되니까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어떤 스케일로 이야기를 꾸릴지, 날씨는 어떠해야 할지 아무런 제약없이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완전히 접근 방식이 다르다. 특히 나처럼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 입장에서는 예산이라는 아주 높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예산에 비해 더 나은 스케일을 구현하려고 하면 머리가 더 아파지게 된다. 결국 영화란 수많은 제작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다른 차이는 소설쓰기가 빈 페이지를 채워 나가는 작업인 반면, 영화는 카메라에 담긴 것들 가운데에서 보고 싶지 않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는 작업이다. 카메라의 초점거리를 조절하거나 조명을 조절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리고 작품 안팎의 시간 개념도 좀 다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서 관객에게 어느 시점에 어떤 사건을 얼마나 보여줄지를 고민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책은 페이지수가 800페이지들 1000페이지든 상관없이 읽는 독자가 마음대로 책을 덮을 수 있으므로 작품을 즐기는 시간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만의 글쓰기 루틴이 없는 편이다. 아주 운이 좋게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버스에서 이동 중에도 쓰고, 연필이나 타자기, 컴퓨터 등 도구도 상관없다. 다만 비행기에서 작업할 때는 장면의 디테일보다 구성을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의 미국 독립영화 현장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상당히 민주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배급 경쟁은 심화되기도 했다. 미국은 또 독립영화 쪽도 굉장히 상업화가 되어 있어서 각종 조합이 잘 운영되고 있다. 나는 편집자조합에 속해 있는데 최근 파업을 준비 중이다. 영화산업이 점점 자본의 터치가 커지면서 돈에 치우치고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환경 역이 열악해진다. 또한 독립영화의 산업화는 내용적인 면에서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소재가 대중적일지, 검열문제는 생기지 않을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리아나>와 <메이트원>을 만들 당시에는 어떤 스튜디오도 투자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파워풀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진짜 독립영화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