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2021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옛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올해 13회를 맞은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은 영화, 드라마, 공연, 출판 등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올 원천 스토리를 발굴하는 공모전. 수상자는 상금을 비롯해 사업화를 위한 비즈니스 매칭을 제공받고, 사업화가 완료된 수상작들은 향후 홍보 마케팅도 지원받는다. 지난해 대상 수상작인 <외계인 게임>은 연내 도서 출간을, 2019년 우수상 수상작 <조선변호사>는 뮤지컬로 무대에 오를 준비 중이다. 2011년 우수상 수상작인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 의사회>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재탄생한 것도 대표적인 예다. 올해의 수상작 14편도 독자와 관객에게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 시리즈, 웹툰 등으로 작품을 만나기 전에 수상 작가 간담회를 찾아 스토리가 탄생한 배경에 대해 물었다. 수상자들의 집필기가 폭넓은 원천 스토리 활용을 꿈꾸는 창작자들에게 힌트를, 이야기 콘텐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향한 기대감을 선사하기 바란다.
최면, 도깨비, 요괴, 바이러스 재난…. 2021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4편은 소재부터 범상치 않다. 한복 차림의 좀비가 드라마에 나오고, 한국영화의 무대가 우주로 뻗어나가는 지금. 공모에 도전한 작가들 또한 상상력을 아끼지 않았다.
<천개의 혀>는 논리적으로 해석이 불가한 사건들의 배후에 한 최면술사가 있다는 전제 아래 공조하는 형사와 심리학자의 추적극이다. 두 사람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악에 맞서 스릴 있는 모험을 펼친다. 심사단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는 추진력이 탁월”하며 “웹툰, 영상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 원안을 쓰고, 드라마 <바벨>을 집필한 박상욱 작가의 원천 스토리.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우노필름, 싸이더스 등의 영화사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그는 좋은 영화를 기획하고 싶어 습작에 도전했다가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 작가 생활을 지속 중이라고 한다.
바이러스 재난이 발생한 근미래가 배경인 <4구역>을 쓴 우원석 작가도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영화계에서 일해왔다. 2005년 단편 <채무자>로 제4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품에 안았던 그는 <가족의 탄생> 메이킹 필름을 만들며 연을 맺은 김태용 감독과 <원더랜드>에서 재회했다. 2022년 개봉예정인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 원안을 쓴 이가 바로 우원석 작가.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수상을 안겨준 <4구역>은 코로나19로 고초를 겪는 현재 우리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존 르 카레의 첩보소설을 좋아한다는 우원석 작가는 냉전시대의 삼엄함과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을 연결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각자의 사상과 대의가 충돌할 때의 비극성을 매력적으로 강조해보고 싶었다.”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 찬 주성치 영화를 레퍼런스 삼은 작가도 있다. <지나가던 선비>의 정재근 작가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을 보며 “요괴를 소재로 이렇게 웃기고, 감동적이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 영향을 받은 <지나가던 선비>의 주인공은 과거시험 장수생 최장원. 이름은 장원이지만 낙방만 거듭하는 그 앞에는 호랑이, 도적 떼 같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을 물리치느라 예상 밖의 싸움 능력치만 올라간 장원은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요괴를 만나고, 궁궐의 암투에 휘말린다. “한국형 히어로물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 작품”이라는 심사평이 말해주듯 <지나가던 선비>는 색깔이 뚜렷한 캐릭터로 승부를 봤다. 인물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는 정재근 작가는 이 스토리의 본질이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아르바이트나 시험 준비로 잡다한 기술만 늘어가는 취업 준비생, 작가 지망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대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억도깨비>는 가족극의 틀 안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요약되는 성장 서사를 풀어냈다. 인간의 절망을 먹고사는 귀신 ‘어둑서니’에게 아이를 납치당한 엄마는 딸을 구하고자 어린 시절 친구였던 도깨비와 손을 잡는다. 이들은 아이를 찾기 위해 엄마의 오래된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작품은 쓴 양은애 작가는 <기억도깨비>를 애니메이션영화로 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일본, 미국, 유럽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즐겨왔다는 그는 우리나라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대한 갈망을 곱씹으며 <기억도깨비>를 구상했다고. 어린 자녀와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그는 이 작품에도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메시지를 담았다. “가족과 함께한다면 혼자만의 고통, 내면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덕질하듯 공부하고, 범죄에 분노하며 창작
8편의 우수상 수상작 중에는 역사적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팩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금주령(禁酒令)>(이하 <금주령>), <북촌 로맨스> <향장공녀 해윤슬> <봉보, 왕의 유모>가 그러하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 설정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균형과 완성도가 높았다”고 인정받은 전형진 작가의 <금주령>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1733년 영조가 술과의 전쟁을 선포한 시기가 배경. 이때 밀주 이권을 장악한 범죄 조직과 부패한 관리들이 결탁하며 혼란에 빠진 조선에서 벌어지는 색출과 검거, 복수와 응징의 대서사시가 <금주령>의 골자다. 전형진 작가는 금주령이 있었던 대공황 시절의 미국을 다룬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을 보고 작품의 모티브를 얻어 조선의 금주령을 끌어왔다고 한다.
<봉보, 왕의 유모>도 조선으로 간다. <조선왕조실록>을 뒤적이다 소재를 찾았다는 최연희 작가는 <연산군일기>를 읽다 한 구절에 꽂혔다고 한다. ‘유모의 공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다’는 문장. 그 유모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하며 집필한 <봉보, 왕의 유모>는 유모의 시점에서 쓰인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복수극으로 완성되었다.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 또 다른 작가로 백나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덕후 기질이 충만했다고 고백한 백나영 작가는 본인이 깊이 몰입했던 두 세계를 과감히 섞어 <향장공녀 해윤슬>을 만들었다. 바로 역사와 코스메틱이다. 일본인이 백제인들에게 화장술을 배웠다는 기록에서 “1600년 전 K뷰티 산업”을 발견한 그는 당대 최고의 향장박사 해윤슬이라는 인물이 겪는 성공과 사랑의 일대기를 그렸다.
<향장공녀 해윤슬>에 화장과 로맨스가 있다면 강성희, 최소영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북촌 로맨스>에는 건축과 로맨스가 있다.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최소영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한옥단지를 지어 북촌을 지켜낸 청춘들을 찾았고, 강성희 작가는 그 시절 영친왕에게 파혼당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민갑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두 작가는 상처를 지닌 1920년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북촌을 지켜내면서 꿈과 사랑을 쟁취했는지 그려냈다. 최소영 작가는 “북촌에 몇백채의 한옥을 동시에 짓는 그림이 압도적일 것”이라 기대하며 영상화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이 밖에도 강선우 작가가 쓴 <심연심서>는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두지는 않았지만 사극 포맷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극에 대한 애정을 밝힌 강선우 작가는 현대극을 볼 때도 “이것을 어느 시대로 가져와 다른 옷을 입혀보면 재밌을까” 생각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심연심서>를 구상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드라마 <킬미, 힐미>.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왕세자와 그를 전담하는 심의의 명랑한 연애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반면 먼 미래를 상상하며 우주 배경의 SF를 쓴 김연미 작가는 <Dear. My Laika>를 통해 과학적 소재를 조합해 아빠와 아들의 소통을 풀어냈다. 200년 동안 우주를 여행하다 기억을 잃은 우주 비행사와 그가 지구에 두고 온 아들이 <Dear. My Laika>의 주인공. 김연미 작가는 작곡을 전공했음에도 과학 팟캐스트, 강연 등의 세례를 받아 ‘과학 덕후’가 되었고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우수상 수상작 중에는 교사가 사건의 중심에 놓인 작품도 2편이 있다. 이온 작가의 <대기만성 기린고등학교>, 오서희 작가의 <인희 아파트>가 그것이다. 각각 다사다난한 고등학교 교사들의 성장담, 범죄를 목격하게 된 학습지 방문 교사의 추적 스릴러를 표방하는 두 작품에는 작가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대기만성 기린고등학교>의 이온 작가는 “나는 과연 내가 싫어했던 과거 나의 선생님들과 다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지적으로나 인성적으로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고민하는 교사들을 다독여주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인희 아파트>의 오서희 작가는 최근 아동학대나 친족간 성범죄와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고 “형사, 검사, 탐정 등이 아닌 내밀한 가정사에 좀더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시선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스토리를 구현했 고.
청년 작가들이 다룬 죽음
2021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 부문에는 특별한 상이 있다. 만 15살 이상, 만 34살 이하(1987년 1월1일~2006년 12월31일 출생자까지 인정)의 작가 중 이전 대회 수상 경험이 없는 작가에 한해 총 1회만 받을 수 있는 청년작가상이다. 올해 두명의 작가가 청년작가상의 영예를 안았다. <철수 삼촌>을 쓴 김남윤 작가와 <도무지 낡지 않는 이야기>를 쓴 김혜란 작가다. 이들은 “청년작가상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러니한 설정을 코믹 드라마로 잘 풀어나갔다”는 평을 들은 <철수 삼촌>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형사 두일이 자신을 10년 전 미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라 소개하는 철수와 대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김남윤 작가는 스릴러와 코미디가 동시에 펼쳐지는 <철수 삼촌>이 소설로 출발했지만 영화나 드라마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상상하며 짜임새 있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한다.
<도무지 낡지 않는 이야기> 또한 “반전의 반전을 통해 진실의 끝을 좇아 페이지를 넘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작품은 남편이 자살한 후 남겨진 아내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비극에 빠진 여자가 절망에 무너지고 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설명한 김혜란 작가는 “상실했으나 사라지지 않는 사람, 끝나버렸지만 낡지 않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공교롭게도 청년작가상 수상작 2편 모두 죽음이라는 소재를 여러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두 작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에 유의하며 이야기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밝은 스토리 위주로 작업해왔다는 김혜란 작가는 <도무지 낡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도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이 하나의 소재로 소비되지 않도록 고민했고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진심을 전했다. 김남윤 작가 또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지인들의 죽음, 나 자신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철수 삼촌>을 쓰려 했다고 한다.
최우수상 4편, 우수상 8편, 청년작가상 2편 등 총 14편의 당선작은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 및 독자를 만나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당선자들은 상금을 비롯하여 사업화를 위한 비즈니스 매칭, 사업화 콘텐츠 홍보·마케팅, 경기도 일산 소재 스토리 창작센터입주 신청 시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도 받게 된다. 14명의 작가의 작품이 미래 스토리텔러들에게도 꿈을 틔워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