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오리지널이라는 자부심, 할리우드판 '유체이탈자'도 기대된다
2021-12-09
글 : 배동미
사진 : 오계옥
<유체이탈자> 윤재근 감독

윤재근 감독이 데뷔작 <심장이 뛴다> 이후 10년 만에 스릴러영화로 돌아왔다. <유체이탈자>는 기억을 잃은 정보요원 이안(윤계상)이 12시간마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신이 누군지, 몸은 또 어디 있는지 찾던 이안은 악당 박 실장(박용우)과 아내 진아(임지연)를 만나면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한양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윤재근 감독은 졸업 후 광고감독으로 활동하다 1996년 밴쿠버필름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꽃피는 봄이 오면>과 <순정만화>에 참여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함께 영화관을 쏘다녔던 동갑내기 친구, 고 류장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윤재근 감독은 각본을 써서 완성한 작품들이었다. 군대 선임 허진호를 영화감독으로 이끈 고인은 윤 감독에게도 “영화적 동지”였다. 비록 류장하 감독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유체이탈자>는 현재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개봉 2주차 <유체이탈자>가 박스오피스 1위다. 어떤 심정인가.

관객의 진짜 반응이 궁금해서 동네 극장에 가서 확인하곤 한다. 평소엔 엔딩 타이틀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에 앉아 스탭의 이름을 보는데, 내 영화를 보러 가선 불이 켜지면 사람들과 같이 빠져나가면서 관객 반응을 듣는다. “재밌는데”라는 반응이 많이 들리더라. 극장을 나오면서 나누는 대화가 진심이잖나. 여기에 힘을 얻고 있다.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어려운 극장 자체가 잘됐으면 한다.

오랜만의 신작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가 엎어지거나 한 게 아니라 <유체이탈자>만 준비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영화계 관계자들이 완성된 시나리오를 읽고 대체로 “어렵다. 이걸 어떻게 촬영하냐”라고 반응했다. 3년간 제작사와 투자사를 전전하다가 2014년에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났다. 시나리오를 좋게 본 장 대표가 바로 다음날 전화로 “시나리오 딴 데 주지 마세요” 하더라. 이미 많이 보여주고 많이 거절당했는데. (웃음) 이후 영화가 금방 제작될 줄 알았으나 7년이 더 걸렸다. 시나리오를 계속 고쳐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보통 개봉영화 시나리오는 10~20고 수준에 그치는데 <유체이탈자>는 100고가 넘는다. 스릴러가 아닌 멜로나 휴먼 드라마 버전도 있었다.

설정은 어떻게 떠올렸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앉아 <심장이 뛴다> 시나리오를 쓸 때, 글이 잘 안 풀리는 날이면 우울하고 앞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성공한 감독이 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명 감독인 척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성공한 감독의 삶에도 권태가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면 재밌겠다, 이 생각을 영화로 옮기자 싶었다.

신체가 계속 바뀌는 설정이기 때문에 어떤 국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시나리오는 지금의 편집본과 조금 달랐다. 지하실 소파에 앉은 채로 깨어난 박 실장이 당황하다가 화장실로 걸어가는데, 거울 속 자신이 이안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이안의 교통사고 현장으로 넘어가는 게 시나리오 구성이었다. 하지만 관객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편집 과정에서 순서를 바꾸었다. 야심을 갖고 원 테이크로 찍었던 지하실 신은 편집 과정에서 컷됐다.

두 배우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신은 섬세하게 작업해야 했을 것 같다.

크랭크인 전 배우들이 연습실을 빌려 합을 맞췄다. 배우간 감정과 연기 패턴을 알아야 서로 흉내낼 수 있으니까. 윤계상 배우가 리드해서 연습을 주도했고 촬영은 오히려 수월했다.

이안이 혼란스러워하자 행려(박지환)가 핫도그, 크로켓, 호떡을 내밀면서 세 가지 중 핫도그를 제일 좋아하는 스스로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핫도그는 몸이 바뀌어도 이안과 행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그널이 되는데, 비현실적인 설정을 현실의 층위로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설정이 워낙 비현실적이니까 나머지는 현실적인 것으로 채우고 싶었다. 핫도그는 누구나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핫도그를 활용하면 이안과 행려가 의미 있는 대사를 나눌 수 있고, 관객도 마음속으로 핫도그, 크로켓, 호떡 중 한 가지를 선택해볼 수 있다. 관객의 리뷰를 보니 핫도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 영화 개봉 전까지 핫도그가 주목받을지 몰랐는데 뜻밖이었다. (웃음) 액션 신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찍으려고 했다. 평창동 주택가에서 촬영한 카 체이싱 장면은 CG 없이 영화에 나온 빠른 속도 그대로 차를 움직여 찍었다. 배우들이 차 속도에 놀라 대사도 빨리 칠 정도였다.

모든 주요 배우들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윤계상은 투명한 배우다. 악역을 맡으면 정말 악해 보이고 지적인 역할을 맡으면 지적으로 보인다. 이안은 처음 자신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성격이랄 게 없고 그가 어떤 능력을 가진 줄도 모른다. 관객도 몰랐으면 했다. 그래서 여백이 많은 윤계상이 연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박용우의 경우, 사심으로 캐스팅했다. 오래전부터 그의 팬이었는데 젠틀한 분위기인 그가 악역을 맡으면 신선할 것 같았다. 임지연은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진아의 라스트신에서 임지연의 표정과 눈빛은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그대로였다. 매일 꿈에서 본 사람을 실제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콘스탄틴> <트랜스포머> <지.아이.조>를 제작한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가 판권을 구매했다.

코로나19로 개봉일이 밀리면서 <유체이탈자>가 해외 영화제를 돌았다. 그때 할리우드 제작자의 눈에 띄어 판권이 팔렸다. 관객 입장에서 할리우드 버전 <유체이탈자>를 빨리 보고 싶다.

차기작은 뭔가.

초능력자가 나오는 판타지 장르를 쓰고 있다. 사회적 메시지도 녹여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업보다 홀로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구현해내는 게 재밌다. 오리지널에 대한 가치에 자부심도 느낀다. 앞으로 반드시 내 각본만을 가지고 연출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새롭고 독특한 지점이 있는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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