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패밀리 비즈니스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일어났던 마우리치오 구치 청부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다.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자니(레이디 가가)가 이혼당한 후 적개심을 키워오다가 마우리치오 구치(애덤 드라이버)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재판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화려한 스타일과 도도하고 반성 없는 태도 때문에 파트리치아에게는 ‘블랙 위도우’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미국에서 11월24일 개봉했으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이다. 영화의 바탕이 된 사라 게이 포든의 책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이한 각색이라는 비평과 영어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이탈리아 억양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다만 레이디 가가의 연기만큼은 호평이 쏟아졌다.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 구치가의 며느리였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여자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는 중론이다. 이 영화로 레이디 가가는 뉴욕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지난 11월10일, 화상으로 진행된 글로벌 기자회견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하우스 오브 구찌> 출연진의 인터뷰를 정리해서 전한다.
- 파트리치아 레자니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파트리치아 역할은 어떻게 준비했나.
레이디 가가 인물에 대해 편향된 의견을 가진 자료는 피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해석한 인물을 창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실존 인물이었기 때문에 역할을 준비하면서 저널리스트의 태도를 가지려고 했던 건 의미 있었다. 파트리치아는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많이 했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와 거짓말을 하지 않을 때의 차이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치오와 결혼하기 전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기 전까지의 모습에 대해서는 나의 상상이 최선이었다. 나는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치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는다. 물론 그녀는 구치라는 이름이 가진 힘 또한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모든 것을 잃게 되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혼당했다고 남편을 살해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녀가 구치의 며느리였던 동안 구조적인 억압을 경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스토리만큼이나 의상, 헤어, 메이크업 등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레이디 가가 잔티 예이츠 의상감독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다. 내가 표현하려는 파트리치아는 구치 일가보다 반짝여서는 안됐다. 또한 그녀는 패셔니스타도 아니었다. 드러나는 것 외에 파트리치아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 세 가지 다른 동물을 떠올렸다. 처음 마우리치오와 사랑에 빠지는 파트리치아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다. 2막의 파트리치아는 여우다. 여우는 사냥을 놀이처럼 즐긴다. 3막에서의 파트리치아는 팬서다. 나는 팬서가 어떻게 사냥하는지 정말 많은 비디오를 봤다. 팬서는 사냥할 때 유혹적이었다.
-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의 애인인 파올라(카미유 코탱)와 성격, 패션이 확연히 다르다. 파올라는 말수가 적지만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카미유 코탱 나의 첫 촬영일이 영화의 첫 촬영일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다 함께 역할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파올라는 파트리치아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걸 모든 방법을 통해 보여줘야 했다. 파올라는 말수가 적은 대신 의상이나 헤어에서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언제나 인상적인 화이트룩을 입었다. 마우리치오와의 관계에서 합법적인 배우자는 아니었지만 항상 새 신부처럼 차려입었다.
- 파올로(자레드 레토)가 등장할 때마다 아이 같은 순수한 면을 보는 게 좋았다.
자레드 레토 나의 영웅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출연했다. 어린 시절에 마음을 열게 되는 영화가 모두 있지 않나? 내게는 그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였고, 또 다른 이유는 알 파치노가 내 캐릭터의 아버지로 캐스팅됐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제러미 아이언스도 출연한다고? 이런 배우들과 함께 파올로 구치라는 큰 기회를 채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첫날에는 잠깐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였다.
- 파올로 구치가 되기 위해 매일 6시간씩 분장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
자레드 레토 그 시간은 파올로의 내면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파올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분장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보다보는 일은 꼭 필요했다.
- 피나(살마 아예크)는 그늘진 곳에 있는 역할임에도 영화에 활기를 가져다준다. 이 영화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았다고 들었는데,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
살마 아예크 리들리 스콧의 아내인 지아니나와 친한 친구기 때문에 <하우스 오브 구찌>가 영화로 만들어질 거란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일부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출연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수락했다. 지아니나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년을 노력했다. 모두가 꽃뱀이라고 생각하는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치오를 진심으로 사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을 이유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유능한 작가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를 연기할 딱 맞는 배우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 피나는 능란한 조종가인데, TV 점술가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나.
살마 아예크 피나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도 남아 있는 기록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가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피나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공부했고 이야기해줬다. 피나는 작은 역할이고, 영화는 피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와 레이디 가가는 파트리치아와 피나의 관계가 완전해 보일 수 있도록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신경 썼다. 고객의 돈을 노리는 심령술사는 흔하다.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그저 그런 고객이 아니었다. 그런데 피나가 그런 파트리치아를 좋아하게 된다. 피나와 있을 때 파트리치아는 달랐다.
-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의 관계가 시들어가는 과정에 따른 인물의 변화는 극적이지 않고 서서히 진행된다. 그 변화가 대본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었는지 궁금하다.
애덤 드라이버 대본에 특정하게 어떤 변화가 명시되어 있었던 건 아니다. 인물에 보여지는 작은 변화를 포착해 상상력을 넓히는 방법으로 캐릭터를 탐구했다. 과장된 것 같은 것부터 지워나가면서 인물을 준비했다. 촬영 시작까지 주어진 시간은 2주에 불과했다. 2주 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에 자신감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다른 의견에 마음을 열었다. 사실 상대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에 아이디어를 내놓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출연자들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장면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할 수 있고 그걸 다른 출연자들이 따라주는 일은 대단한 희열을 선사한다. 그리고 리들리의 촬영장은 그게 가능했다. 리들리의 촬영장은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될 수 있는 위대한 환경이다.
- 로돌포 구치(제러미 아이언스)에게 구치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러미 아이언스 로돌포 구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았고, 안온한 삶을 살았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안락의자에 앉아서 편안한 삶을 영위했다. 그랬기에 영화배우로 활동할 수도 있었을 거다. “구치는 박물관에 있다”는 그의 대사처럼 그는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뒤를 돌아보느라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의 삶을 아들을 통해 살고자 했고 아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 삶에 행복하지 못하면 그 누구를 통해서도 행복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로돌포는 아들인 마우리치오와의 관계가 어려웠고, 마우리치오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로돌포는 자기의 꿈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 파트리치아에게 구치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레이디 가가 파트리치아에게 구치는 자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파트리치아는 이전에는 한번도 중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우리치오를 만나면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탈세 혐의로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파트리치아는 온몸으로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그때가 캐릭터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파트리치아는 더 나은 삶을 꿈꿨고 모든 것을 원했다. 구치는 그 수단이었다. 파트리치아의 엄마는 그녀가 12살이었을 때부터 부유층 자제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남자들과 결혼해야 한다고 주입했다. 그리고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파트리치아는 운수업으로 위장한 마피아의 딸로 자랐다. 가족의 일에 참여하고 중요한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은 당연했을 것이다.
- 영화는 파트리치아의 22살부터 49살까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20년이 넘는 시간을 연기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레이디 가가 물론 도전이었다. 내가 22살을 연기했다는 건, 우선 리들리가 나를 그런 의미에서 믿어준 데 대해 감사할 일이다. (웃음) 촬영을 준비하는 나의 트레일러는 과학전시장 같았다. 파트리치아의 30년이 시간 순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그날 촬영이 어디냐에 따라 딱 맞는 시점의 헤어와 의상을 선택했다. 가발, 염색약, 화장품 모두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 시대에 만들어진 재료를 찾아서 새롭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