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또 하나의 거대하고 새로운 가상 세계 '매트릭스: 리저렉션'
2021-12-29
글 : 김현수

네오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다시 깨어났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겠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라나 워쇼스키 감독이 릴리 워쇼스키 감독과 함께 만들었던 <매트릭스> 3부작과 바로 이어지는 4편 격의 영화다. 이전 시리즈를 아는 관객에게 네오로 더 알려진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비디오게임 개발자다. 그가 다니는 게임 회사 ‘데우스 마키나’에서 개발한 게임 ‘매트릭스’ 3부작은 대성공을 거뒀고, 그의 사업 파트너인 스미스(조너선 그로프)는 투자사인 워너브러더스에서 4편 게임을 만들기 원한다며 개발을 종용한다. 토마스는 평소 회사 근처 카페 ‘시뮬라떼’를 자주 애용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티파니(캐리앤 모스)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난다. 자주 마주쳐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그녀의 아이들, 남편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토마스의 주치 상담의(닐 패트릭 해리스)는 그에게 늘 파란약을 권유하지만 그의 몽롱함은 가시지 않는다. 대체 토마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돌려 묻자면, 네오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다시 매트릭스 안에 갇혀 게임 개발자의 삶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걸까.

<매트릭스> 3부작에서 토마스는 네오로 각성하여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에 갇힌 인류의 현실을 깨닫고 인간을 배터리 삼아 매트릭스에 가둬둔 기계들에 대항해 ‘평화’를 얻어낸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잃었고 네오와 함께 싸우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많은 뒷이야기가 의문으로 남은 채 이야기가 마무리됐었다. 네오에게 처음 빨간약을 권했던 모피어스(로런스 피시번)는 어떻게 됐을까. 기계들에 맞서 싸워 지켜낸 마지막 도시 시온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이전 3부작이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의 잔해들을 수집하듯 모아 또 하나의 거대하고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야기와 캐릭터, 액션과 시각효과, 음악 등 모든 면에서 과거 <매트릭스> 3부작의 프로덕션과 연결되어 있다. 이전 시리즈의 ‘매트릭스’ 대신 ‘모달’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등장하고 잠을 자듯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헤매던 토마스의 눈을 뜨게 만들어주는 인물로 벅스라는 파란 머리의 여인(제시카 헤닉)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팔에는 흰 토끼 타투가 그려져 있다. <매트릭스> 1편에서 네오가 홀리듯 따라갔던 인물의 팔에 새겨진 것과 같은 타투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재등장은 물론, 이전 3부작의 우주선인 느부갓네살호에 이어 므네모시네호가 등장하며, 모피어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캐릭터를 로런스 피시번이 아니라 새로운 배우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맡는다. 과거의 시리즈가 반복되는 것 같지만 형상이나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 그 이유는 뭘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전 시리즈와 함께 반복되는 테마는 지금 여기가 분명 현실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고 인간과 기계가 서로의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매트릭스> 3부작은 199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스튜디오와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와 제작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었다. 워너브러더스는 아무도 이해 못하는 시나리오를 쓴 신인감독에게 6500만달러의 예산을 덜컥 맡겼고 이를 성사시킨 제작자 조엘 실버는 1980년대 할리우드 남자 액션 스타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그는 키아누 리브스라는 신인을 영화 한편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가장 많은 배우 1위의 자리에 앉혔다. 최근의 액션영화에서 당연하다시피 한 주연배우들의 아시아 무술 연기는 원화평 무술감독과 그의 제자들이 이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에 남긴 유산이며, 존 카에타 시각효과담당이 만들어낸 ‘블릿 타임’ 장면은 시각효과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일 수 있으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버전의 네오와 트리니티의 이야기라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라나 워쇼스키 감독이 자신의 인생사를 이 영화에 담았다.

CHECK POINT

라나 워쇼스키

<센스8>을 완성한 이후 부모를 떠나보내야 했던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그 슬픔을 달랠 이야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네오와 트리니티를 되살리며 과거 3부작을 만들 당시의 자신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반영해 이야기를 구상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스터에그

<매트릭스> 3부작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극중 등장하는 새로운 가상 세계 ‘모달’의 풍경에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건물과 가게, 간판과 상호명이 <매트릭스>의 오리지널리티를 교묘하게 비틀어 만들어졌다. 군중 장면에는 <매트릭스>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존 카에타를 비롯해 제작진의 얼굴과 배우 톰 하디의 얼굴이 쓰였다.

샌프란시스코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했는데,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마천루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가장 중요한 ‘그 장면’은 샌프란시스코 몽고메리 스트리트에 위치한 43층 높이의 건물에서 촬영했다. 지상과의 거리는 172m였다. 배우 무게의 모래주머니로 12번 실험했고, 스턴트 대역배우들이 24번 리허설한 끝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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