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배우 배두나' 펴낸 백은하배우연구소 소장 백은하를 만나다
2021-12-30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배우 이병헌에 관한 가장 희귀한 보고서’가 세상에 나온 지 1년하고 열흘 뒤, ‘배우 배두나에 관한 가장 입체적인 보고서’가 뒤를 이었다. 2018년 자신의 이름을 건 백은하배우연구소를 열고 ‘액톨로지’(배우학, Actorology)를 제안해온 영화 저널리스트 백은하의 작품이다. 그는 <씨네21> 기자로서 영화와 영화인들에 대해 쓰기 시작해 매체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았고,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배우 연구에 관한 학문적 접근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기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다각도로 세공해 활동 중인 그가 배우연구소 소장이자 독립출판사 대표로서 집대성한 ‘배두나론’이 316페이지의 책으로 엮였다. 편집자, 마케터의 일까지 도맡느라 어느새 <배우 배두나>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 갈증을 느꼈다는 그와 허브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배우연구소 설립 이전에 <우리시대 한국배우>(2004), <배우의 얼굴 24시>(2008) 같은 책을 발표했다. 언제부터 배우를 들여다보는 일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나.

=어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의 광팬이었다기보다 그 안에 있는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다 <씨네21>에 입사하자마자 표지 인터뷰를 거의 전담했다. 비평에 집중하는 선배들이나 산업을 잘 아는 선배들 틈에서 배우를 만날 기회가 내게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그러면서 배우들을 상대하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체질적으로도 맞는다는 걸 알게 됐고, 전문 분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배우 배두나>의 서문에 “이제는 배우를 포장하는 문장이 아니라, 배우를 이해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라고 적었다. 배우 연구자로서 배우를 이해하는 작업을 어떻게 정의하나.

=결국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배우의 연기를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식의 글을 쓸 때면 이 사람이 얼마나 ‘소름 돋는’ , ‘신들린’ , ‘찬란한’ 연기를 했는지 수식을 붙이면서 문장을 만들게 된다. 나는 이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그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연기를 한 건지, 그 방법과 동력이 궁금하다. 추상적인 것을 손에 잡히게, 눈에 보이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배우를 이해하는 일에 한걸음씩 다가가기 위해 꺼내든 도구들이 액톨로지 시리즈에 있다. 이병헌의 필모그래피와 충무로 흥행사를 나란히 놓고 본다거나 배두나의 fMRI 영상(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한다거나 하는 기획들은 어떻게 구상했나.

=액톨로지 시리즈의 출발 자체가 ‘모든 배우는 다 다르다’라는 전제다. 스타나 심벌로서 배우를 카테고리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병헌, 배두나의 경력을 살펴보며 그 사람만의 무언가를 발견하려 했다. 배우 이병헌은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하고, 한류 스타가 되고, 할리우드에 간 사람이다. <오징어 게임>의 프런트맨일 뿐 아니라 한국 콘텐츠 산업의 프런트맨 같은 사람인 거다. 그를 보면 산업이 보이고 시대가 보일 거라는 생각에 구체적인 지표를 놓고 이야기했다. 반면 배두나는 그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흥행 성적을 분석하기보다 연기자로서 그가 가진 공감 능력, 소통 능력을 시각화해보고 싶었다.

-책에 참여할 인터뷰어, 인터뷰이, 필자를 그러모으는 기준도 궁금하다. 무술감독 정두홍, 손석우 BH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이병헌과의 협업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나 스타일리스트가 모델의 관점에서 배두나의 매력을 해설하는 것도 경쾌하게 읽혔다.

=한 사람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원칙을 세웠다. 배우에게 누굴 만나면 좋을지 추천받지도 않는다. 두나씨도 책이 나오고 나서야 누가 자신에 대해 말했는지 알았다. (웃음) 배우에 대해 말할 사람을 찾다보면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 육체성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가 몸을 어떻게 움직여 연기하는지, 옷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갈 수밖에. <배우 배두나>를 소개하며 ‘배두나에 관한 가장 입체적인 보고서’라는 카피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가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동료들에게 각기 다른 상으로 맺혔고, 그럼에도 “따라가다보면 계속 새로운 미디어의 세계가 열렸던”(김민영 넷플릭스 코리아 부사장) 존재가 된 서사를 보여주는 것. 그래서 이 책이 배두나의 팬, 동료들과 후배 배우들에게도 읽혔으면 한다. 배두나가 했던 선택들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희망과 용기를 줬으면 한다.

-<배우 배두나>에 꼬박 1년을 바쳤다. 매체에서 일할 때와 달리 하나의 주제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때의 만족도는 어떤가.

=<고양이를 부탁해> O.S.T인 모임 별의 노래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에 ‘네덜란드산 초록맥주병’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건 하이네켄이지 않나. 지금 배두나 배우가 모델인 맥주이자 이번 <배우 배두나> 팝업 스토어의 손님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우주적인 기운을 크게 느꼈다. 한 사람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책을 쓴다는 건 그만큼 희한하고 경이로운 작업이다. 누군가와 길게 연애를 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는 정보를, 아주 깊숙하게 알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이 사람이 질리지 않고 좋다면 그건 약도 없다. (웃음) 지금까지 책을 쓴 배우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개인으로서 백은하도 자신에 대해 무한히 고민하는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연구자가 된 것 아닐까.

=그럴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분명한 파악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다. 이건 연구 대상을 정하는 기준과도 관련이 있다. 내가 지금부터 1년 동안 이 사람 연기만 볼 자신이 있는 배우를 고른다. 다만 연구 대상의 성비는 맞추려고 하고, 다양한 출신의 배우들을 다뤄보고 싶다. 공채 탤런트 출신, 모델 출신 배우를 차례로 다뤘으니 연극, 뮤지컬판에 있었거나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도 다뤄보고 싶다. 그렇게 10년쯤 지나 액톨로지 시리즈 열권이 나오면 한국의 다채로운 배우사, 영화산업사를 깊이 있게 훑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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