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드라이브 마이 카'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만나다
2021-12-30
글 : 임수연
연기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캐릭터에 집중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기 디렉팅 방식은 이젠 널리 알려진 트리비아가 됐다. 연기 워크숍을 통해 만난 비전문 배우들을 수개월간 관찰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한 <해피 아워>가 대표적인데, 그는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 우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감정에서 시네마틱한 모먼트를 발견하는 아티스트다. 그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연기 경력 30여년에 가까운 베테랑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핵심적인 파트너다. 그는 죽은 아내와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고독한 연극 연출가 가후쿠를 연기한다. 다양한 연기 경험을 거친 그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만나 빚어낸 흥미로운 화학작용은 아마 당사자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유수의 해외 시상식과 매체에서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배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화상으로 만났다.

-<드라이브 마이 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인상은.

=이 작품 정말 어렵겠구나….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이나 극중 등장하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이 가진 힘도 있었지만 감독님의 스타일이 강하게 들어간 시나리오였다. 작품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어서 함께한다면 엄청난 보람을 느끼겠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담감 때문에 다소 무겁게 다가왔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대본 리딩과 리허설 방식은 워낙에 유명하다. 감정을 배제하고 대본을 읽고 또 읽게 하면서 배우가 텍스트와 친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직접 경험해보니 어땠나.

=일단 감정을 배제한 대본 리딩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효과적인 연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읽을 때는 그냥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방법을 통하면 대사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저절로 몸 안에 겹겹이 새겨 들어오게 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굉장히 날카롭고 섬세한 분이라 우리가 대사를 조금이라도 다르게 치면 콕 집어서 수정해준다. 대본을 읽을 때 말과 몸이 어긋나는 지점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쉼표에서 쉬는 타이밍과 다시 대사를 치는 순간까지 지정해준다. 그렇게 리허설을 한 후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면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연출과 배우들이 함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필름메이킹과도 닮았다. 무엇보다 어떤 연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감독님에게 진짜 연출가처럼 현장에 나와달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배우들의 연기를 열심히 관찰하면 현장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우리에게 시간과 돈이 많았다면 연극 <바냐 아저씨>를 통째로 다 찍게 했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 속에도 묘사되는 것처럼 배우들이 리허설하고 연기하고 그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똑같이 느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경험이 있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구성이 많다. 원작 소설에는 가후쿠의 심리가 묘사되어 있지만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관객이 짐작해야 한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에게 <존 카사베티스가 말하다>와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를 읽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사실은 내가 젊었을 때 성경처럼 읽으며 감동받았던 책들이었다.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 연기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책장 한구석에 봉인해뒀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내 연기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보자고 결심했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캐릭터 자체에 집중하며 관객과 함께 인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연기가 있다. 설령 가후쿠의 감정에 관객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관객이 뭔가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지 않을까. TV드라마도 예산이 큰 상업영화도 작은 사이즈의 아트하우스영화도 출연하며 늘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있다. 매번 고민이 있지만 모든 연기를 경험하면서 전부 소화해보고 싶다.

-죽은 아내 오토와의 정사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딱 한 장면이다. 그때 오토는 전생에 칠성장어였던 소녀의 이야기를 한다.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오토의 감정과 달리 가후쿠는 눈을 가리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가후쿠에게는 오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단절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아무리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라 해도 상대에겐 들어갈 수 없는 우물이 있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붉은색의 서브 900 자동차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자동차라는 공간이 가진 영화적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였을 것 같다.

=자동차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이다. 가후쿠가 조수석에 앉는지, 뒷좌석에 앉는지에 따라 인물의 심정과 연결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실제로 달리면서 촬영했다. 죽은 아내와 불륜 관계였던 다카즈키(오카다 마사키)와 대화하는 롱테이크 신을 찍을 때는 녹음기사도 함께 차에 탔고, 감독님은 트렁크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분위기를 함께했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종종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후쿠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바냐 아저씨>를 읽을 때는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이 작품을 대하는 가후쿠의 자세가 이 인물의 감정을 읽어내는 하나의 힌트가 된다. 사실 바냐와 가후쿠는 닮은 부분이 많다.

-한국과 인연이 많다. 이재한 감독의 <사요나라 이츠카>, 김태희와 공연한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 김성수 감독의 <무명인>, 소재만 놓고 보면 재일 조선인을 다룬 <박치기!> 같은 영화도 있다. 한국 감독과의 협업을 또 염두에 두고 있나.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지 그 비밀을 캐보고 싶을 정도다. (웃음)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도 너무 많다. 일본에서 특별전을 했던 고 김기영 감독은 DVD도 갖고 있을 만큼 좋아한다. 훌륭한 감독님들이 정말 많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젊은 유망주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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