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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선고 다음의 삶 JTBC 드라마 '한 사람만'
2021-12-31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불치병과 시한부 선고가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연인의 사랑을 검증하고 가족 안에서의 쓸모를 확인받는 장치로 작동하는 이야기에 암만 감정이입을 해봤자 자신이 죽어 없어지는 ‘만약’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 남은 삶을 헤아려야 하는 당사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것이 같지는 않을 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겪지 않으면 모를 막막한 사건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어도 소망을 겹치고 싶은 곳은 생겼다. JTBC 드라마 <한 사람만>의 여성 전용 호스피스 ‘아침의 빛’ 원장 막달레나 수녀(이수미)는 이렇게 말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달라져 있거든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어요. 외롭고 무섭죠.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공간을 생각한 겁니다.”

목욕탕 세신사 표인숙(안은진)은 28살에 뇌종양 4기 진단을 받았다. 시한부 선고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르는 무감한 상태로 호스피스에 들어온 그에게 막달레나 수녀는 “호스피스 입원비를 할부로 해달라고 말한 것은 자네가 처음”이었다고 경쾌하게 말한다. 죽어도 미련이 없다는 태도와 할부를 치를 계획이 충돌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삶은 내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밤. 인숙은 아버지에게 오랜 학대를 당해 생명이 위태로운 동네 꼬마 하산아(서연우)의 소식을 듣고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다시 되살린다. 호스피스 룸메이트인 강세연(강예원)과 성미도(박수영)는 인숙의 이야기를 듣고 어차피 죽는데 나쁜 놈 ‘한 사람만’ 데려가자며 뜻을 모은다.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점은 아이가 구해지는지 아닌지를 길게 늘려 서스펜스의 소재로 삼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와 재회한 아이가 이제 살았다고 안심하는 전개가 2회로 딱 마무리된다. 인숙과 세연, 미도. 각자의 인생에서 겉돌던 세 여자는 처음 우리로 묶이는 충만감을 느끼고, 서로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면서 시한부 선고 다음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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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왓챠, 웨이브)

‘아침의 빛’은 각 호실의 이름을 환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에서 따왔다. 인숙이 머물게 된 방 이름은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을 땄다. 휴양지의 노인들이 해가 지는 찰나의 녹색 광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은 델핀느(마리 리비에르)가 그 빛을 소망하는 것처럼, 세연이 죽기 전에 녹색 광선을 보고 싶다고 하자 인숙은 “나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인용과 재인용을 거치며 소망이 확장되고, 타인의 소망을 자신도 바라게 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약간 뭉클해진다.

<베스트 극장-194화 호스피스 아줌마> (웨이브)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택한 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정숙(윤여정)은 간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가족들은 병을 알리지 않고 호스피스 일을 계속하는 정숙에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야속함을 토로한다. 줄곧 침착하게 이별을 준비하던 정숙은 딱 한번 “나 이 세상에 더 섞여 있고 싶어”라고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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