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영웅' 윤제균 감독의 대담
2022-01-06
글 : 이주현
글 : 최성열
첫 뮤지컬영화, 어땠나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윤제균 감독.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을 연출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한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으로 뮤지컬영화에 도전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선보인다.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원작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후 196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제3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총 10개 부문을 휩쓸기도 한 작품이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에 정착한 푸에르토리코인 10대 아이들 샤크파와 그들을 못마땅해하는 백인 아이들 제트파가 세력 다툼을 하는 상황 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겹쳐놓은 작품으로, 비극적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한때 제트파 친구들과 어울렸던 토니(앤설 엘고트)와 샤크파의 리더인 베르나르도의 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다. 창작자로서 매번 과감한 도전을 시도하는 동시에 대중의 마음까지 정확히 적중시켜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번에도 뮤지컬 장르의 무한한 매력 속으로 관객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처음으로 뮤지컬영화를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역시나 처음 뮤지컬영화를 만든 윤제균 감독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해운대> <국제시장>, 두편의 천만 영화를 만든 윤제균 감독 역시 최근 대형 뮤지컬영화 <영웅>(2022년 개봉예정)을 연출했다. 최고의 흥행 감독이자 첫 뮤지컬 연출이라는 교집합으로 만난 두 감독은 뮤지컬영화를 만들면서 고민한 내용들을 공유하며 20분 남짓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E.T.>”라는 말로 첫인사를 건넨 윤제균 감독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국제시장>을 재밌게 봤다”라고 화답하자 대담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하게 달아올랐다. 윤제균 감독의 얼굴엔 존경하는 감독을 대면하는 기쁨이 가득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도엔 동료 감독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윤제균 감독의 대담 영상은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윤제균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감독님의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고, 감독님과 같은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당신 인생 최고의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전 언제나 <E.T.>라고 대답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오, <E.T.>! (웃음) 저도 당신의 영화 <국제시장>을 봤어요. 5, 6년쯤 전에 뉴욕에서 봤는데, 훌륭했습니다.

윤제균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신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보았습니다. 재미, 감동, 새로운 볼거리.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최근에 뮤지컬영화 <영웅>을 만들었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는데요, 우선 감독님께서 왜 다른 장르가 아니고 뮤지컬 장르를 선택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이 질문에는 우리 서로 대답해야겠어요. 당신도 왜 뮤지컬영화를 만들었는지 얘기해줘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아마도 우리의 답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10살 때부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부모님이 LP를 사줬거든요. 1957년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의 레코드였죠. 그 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입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뮤지컬은 <사랑은 비를 타고>이고, 그다음은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입니다. 저는 항상 춤과 음악과 연기가 함께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영화화에 착수하기 전까지는 뮤지컬을 만들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용기를 내서 오리지널 저작자들에게 영화화 권리에 대해 개인적으로 물어봤는데, 그들이 나를 믿어주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 수 있었어요.

젊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다

윤제균 뮤지컬영화 <영웅>을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사운드를 라이브로 할 것인지 후시녹음으로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독님은 뮤지컬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당신은 몇곡을 라이브로, 몇곡을 후시녹음했나요?

윤제균 5 대 5였어요. 세트는 라이브로 가고, 로케이션일 땐 주로 후시녹음을 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마찬가지로 저도 라이브로 가려고 했어요. 음향 세트가 갖춰진 실내 촬영일 땐 라이브가 더 좋았습니다. 실외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면 주변의 소음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공중에서 사라지죠. 우리는 이번에 4곡을 라이브로 했는데요. <One Hand, One Heart>, 리타 모레노가 부르는 <Somewhere>, 마리아가 발코니에서 부르는 <Tonight>는 75% 라이브였고, 도 라이브였죠. 라이브로 뮤지컬 장면을 촬영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느낌부터가 다르잖아요. 당신도 알다시피 배우들이 미리 녹음한 음악이 재생되는 상태에서 노래를 하면 그냥 입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모든 보컬 스킬과 에너지를 실어서 부르게 되죠. 그런데 만약 라이브라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을 방해하는 플레이백(미리 녹음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 없으면, 완전히 생생한 사운드가 나옵니다.

윤제균 저는 라이브로 녹음할 때, 배우들이 인이어 이어폰에서 나오는 반주를 들으며 노래를 했는데 감독님은 라이브로 녹음할 때 배우들의 소리를 어떻게 녹음했는지 궁금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보다시피 우리는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웃음) 배우들이 라이브로 노래할 때 스코어가 나오는 인이어를 꼈고, 플레이백일 때도 같은 방식으로 인이어를 꽂고 진행했어요. 혹시 그런 문제는 없었나요? 배우들이 인이어를 끼고 노래하면 후반작업에서 화면에 보이는 배우들의 인이어 장치를 지워야 하는 문제 말이에요.

윤제균 그래서 CG로 지운 게 2천컷이 넘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와우! 정말 많네요. (웃음)

윤제균 이번엔 배우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감독님 정도의 거장이면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을 텐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선 주연부터 조연까지 신인배우들을 기용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제일 유명한 배우는 리타 모레노죠(리타 모레노는 1961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아니타를 연기한 배우이며, 이번 영화에선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 발렌티나를 연기한다.-편집자). 그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그런데 전 젊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실제 캐릭터의 나이처럼 보이는 젊은 배우들과 함께 말이죠. 그들이 30대 후반처럼 보이는 건 원치 않았어요. 뮤지컬에서도 실제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잖아요. 18살에서 21살을 연기할 수 있는, 그 나이대 배우들을 원했습니다. 모두 어린 친구들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사실 영화는 실제보다 더 살이 쪄 보이거나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엔 주인공들이 무조건 아주 젊었으면 했어요. 그렇다 보니 유명한 가수와 댄서들이 많지 않았고, 전세계 라틴아메리카 출신들에게 만약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인) 샤크 걸 혹은 샤크 보이의 일원으로 오디션을 보고 싶으면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본 오디션이 3만건 정도였어요. 캐스팅 디렉터 신디가 말해줬죠. 무려 3만개의 오디션 셀프 테이프가 왔다고. 단지 이 네 역할, 마리아, 토니,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 역에 3만건의 오디션 셀프 테이프가 온 거예요. 캐스팅에만 1년이 걸린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그런데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캐스팅이 길어지면서 초기에 캐스팅한 사람들이 그사이 이 역할을 연기하기에 너무 나이를 먹게 되면 어떡하지 싶었던 거죠. 다행히 1년 안에 캐스팅을 완료해서 문제없이 모두와 함께할 수 있었 습니다.

윤제균 오랜 세월 함께해온 야누시 카민스키 촬영감독이 이번에도 촬영을 맡았는데요, 촬영의 컨셉, 원칙도 궁금합니다. 저는 노래를 할 때는 되도록 컷을 끊지 않겠다는 게 촬영의 컨셉이었는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촬영 컨셉은 무엇이었나요?

스티븐 스필버그 저는 노래 장면에 커트가 많아요. 그렇게 규칙을 많이 두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정했던 건 실제 거리의 모습처럼 보이게 찍는 것, 실제처럼 보이게 찍는 것이었습니다. 판타지처럼 보이거나 연극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가 자연광이 드는 장소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실제 몇몇 장면에선 매우 밝게 찍고 싶었어요. 노래 가 나오는 장면은 매우 밝고 컬러풀하길 바랐죠. 밝은 빛과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것처럼요. 다른 많은 부분에선, 예를 들면 당신이 방 안으로 걸어들어갈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방식이라든지 그 빛이 테이블에 닿는 방식, 구석에 있는 램프가 방 안 구석을 비추는 방식을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요. 햇빛과 균형을 이루도록 리얼한 조명을 만들려 했어요.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이게끔. 이 인물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윤제균 영화를 보면서 세트인지 로케이션인지 구분하기 힘든 장면도 많았는데요, 세트 촬영의 비중은 어느 정도였나요?

스티븐 스필버그 퍼센티지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영화의 실외 장면은 모두 실외에서 찍었어요. 대부분 뉴욕 로케이션이었고 뉴저지주의 패터슨에서도 찍었죠. 대부분의 실내 장면도 세트가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찍었어요. 진짜로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공간에서 말이죠. 일부는 세트를 지었는데, 베르나르도와 아니타의 아파트는 세트로 지은 거예요. 발코니가 있는 공동 연립주택 건물의 통풍구 공간은 실제로 뉴욕의 할렘에서 촬영했어요. 그곳에서 마리아가 <Tonight>를 부르는데, 그 노래 장면의 경우 더 근접한 앵글을 잡기 위해 세트에서 찍은 부분도 있어요. 세트에서 찍는 게 실외에서 찍는 것보다 사운드가 더 좋았기 때문이죠. <Tonight>는 최대한 라이브로 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에게 바치는 영화

윤제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 ‘아버지에게’(For Dad)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이 자막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우리 부모님은 저와 세명의 여형제들을 정말 사랑해주셨어요. 부모님과 아주 가깝게 지냈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어요. 1961년작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영화였고요. 아버지는 계속해서 얘기했죠. “스티브!” 아버지는 저를 ‘스티브’라 불렀는데, 언제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볼 수 있냐고 하셨어요. 그러면 저는 “아버지, 저 아직 영화 만드는 중이에요, 아직 찍고 있어요” 했고요. 그때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계셨어요. 그리고 103살에 돌아가셨죠. 전 아버지에게 아이패드의 페이스타임을 이용해서 영화 촬영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아버지는 LA에 계셨고 저는 뉴욕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LA에 계신 아버지가 실시간으로 아이패드를 통해 제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찍는 걸 보셨죠. 아버지와 저는 이런 추억을 계속 쌓았어요. 그런데 저는 영화를 제때 끝내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2020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었어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정말 좋아하셨기 때문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윤제균 감독

윤제균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팬들, 관객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한국에 계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을 몇번 방문한 적도 있고, 서울에 친한 친구들도 몇 있는데요, 모쪼록 여러분들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환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는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입니다. 10대나 젊은 사람은 물론 어른이라면 누구나 포용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함께 울 수도 있고, 서로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서로 의지할 수도 있는 러브 스토리입니다. 러브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좋아할 것입니다.

윤제균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이렇게 얘기 나눠서 저도 정말 좋았어요. 감독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거워요.

윤제균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독님과 함께한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시간이 너무 짧았죠. 다음에 꼭 만납시다. LA에 오게 되면 꼭 저를 만나러 오세요.

윤제균 그럴게요. 기회가 된다면 제가 만든 영화 <영웅>도 감독님께 보여드리고 싶네요.

스티븐 스필버그 보내주세요! 영화 보고 바로 이야기해줄게요.

윤제균 정말요? 영광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그럴게요. 약속하죠.

윤제균 <영웅>은 아마도 2022년 여름쯤 개봉할 것 같은데요, 영화가 나오면 감독님께도 꼭 보여드릴게요.

스티븐 스필버그 그때쯤이면 LA에 있을 거예요. 영화 보내주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목격자예요. 당신이 영화를 보내준다는 얘기를 모두 들었으니 분명히 제게 영화를 전달해줄 거예요. (웃음)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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