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도 극장가엔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비록 살만 칸의 액션 스릴러 <안팀: 더 파이널 트루스>는 기대치를 밑돌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수르야반시>에 이어 1983년 인도 크리켓 월드컵 대표팀의 신화적 승리를 스크린에 재현한 란비르 싱의 스포츠 드라마 <’83>이 순항하며 마침내 길었던 흥행의 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극장가를 더욱 뜨겁게 달군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다. 급기야 발리우드 넘버원인 <수르야반시>의 기록을 능가하는 흥행 성적을 거뒀는데,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례적으로 외화가 ‘올해의 인기상’을 거머쥔 셈이다. 제아무리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대작도 이와 같은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 거미 인간 시리즈만큼은 이미 여러 차례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둬왔고, 이번에도 외화의 대표주자다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만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최대 규모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대대적으로 개봉한 것이 특히 인상적인데, 전통적으로 자국 영화가 프라임타임의 스크린을 독식하던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달라진 현지 관객의 입맛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발리우드는 기본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발리우드의 지금을 있게 한 흥행 요소, 다시 말해 특유의 액션, 코미디, 로맨스 등을 춤과 노래로 버무린 영화들을 위드 코로나 극장가의 선봉에 내세웠다. 나름의 계산대로 좀 식상하더라도 원초적인 한방이 관객에게 확실히 통한다는 것을 <수르야반시>가 입증했다. 긴 기다림 끝에 뻔한 흥행 공식의 답습이란 면에선 아쉬움을 느낄 수 있으나 다시 본궤도에 오르기 위한 숨 고르기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는 발리우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남인도(텔루구어) 액션영화 <푸쉬파: 더 라이즈파트1>도 텔루구어 외에 말라야람어, 타밀어, 칸나다어, 힌디어 더빙판 또한 개봉하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정면 승부하는 상황에서 적은 홍보에도 준수한 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흥행에서 <’83>을 능가하는 기세를 보이며 지역 영화가 주류 영화를 압박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만의 장점이라면 더욱 진한 지역 영화의 ‘스왜그’에 주목할 만하다. 엄청난 스케일의 외화와 확실한 색깔을 가진 지역 영화 사이에 자칫 애매해질 수 있는 발리우드의 향후 과제 또한 확인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