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언제나 갑자기 오는구나.” 타케미치(기타무라 다쿠미)가 생애 유일한 여자 친구인 히나타(이마다 미오) 앞에 번번이 불현듯 등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20년 현재 DVD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타케미치는 사장에게 맞서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무력한 남자다. 그는 우연히 접한 뉴스에서 폭력 조직이 저지른 트럭 사고의 희생자가 고교 때 여자 친구였던 히나타와 그녀의 동생 나오토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던 그를 누군가가 철로로 떠민다. 죽음의 순간 그는 느닷없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시절 촌스러운 양아치였던 타케미치는 미조고 5인조와 함께 시부야 공고 2학년들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중이다. 호기로운 태도와 달리 그와 일행은 3학년 키요마사에게 호되게 당한다. 뜻밖의 구원자는 폭주족 도쿄 만지회의 총장 마이키(요시자와 료)다. 도쿄 만지회는 다름 아닌 히나타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고의 배후에 있는 조직이다. 마이키를 제지해야 그녀를 살릴 수 있는데, 그는 어쩐 일로 키요마사를 상대로 처절하게 맞서던 타케미치에게 흥미를 느끼고 친구로 삼는다.
얼빠졌거나 소심하고, 평범하지 않아 남의 이목을 끄는 남성, 그를 보살피거나 그가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여성, 또 이들의 주변에서 무시무시한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의 구도는 <엔젤 전설> <오늘부터 우리는!!>과 같은 학원폭력물뿐 아니라 <아이 엠 어 히어로>와 같은 좀비물 등 여태껏 일본 코믹스에서 숱하게 접한 설정이다. 유사한 형식의 <도쿄 리벤저스>에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한심한 인생의 주인공 타케미치가 사랑하는 여성 히나타를 구하기 위한 방법인 타임 리프를 내세워 그간 여러 작품에서 반복, 활용된 설정에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며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최초의 시간 여행에서 타케미치는 나오토를 살려내지만 히나타는 구하지 못한다. 조금씩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 히나타를 구할 수 있는 조건은 매번 달라진다. 도쿄 만지회의 주요 인물 마이키와 키사키 텟카를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첫 번째 과제였다면, 과거에서 돌아올 때마다 마이키를 제거해야 하거나 마이키의 오른팔 드라켄의 목숨을 구제해야 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제가 이어진다.
동명의 원작은 주인공이 활보하도록 하는 동력을 히나타를 향한 연정뿐 아니라 낭만화된 불량배들 사이의 우정, 그리고 바로잡았다고 생각하는 과거로부터 불거진 부작용에서 찾으려는 데 비해 영화는 다른 요소들의 비중을 줄이고 타케미치와 히나타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이 점은 타임 리프라는 상상적 가설에서 비롯한 서사 속 이론적 맹점을 사소하게 만든다. 나오토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한 일인지, 과거로 돌아가 조정한 일들의 여파로 변경된 현재의 사태에 개연성이 있는지 하는 의문이나 지적 가능한 오류는 시간 여행을 소재를 다룬 영화들에서 수차례 지적돼왔던 바다. 그럼에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건 등장인물의 감정에 관객이 공명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도쿄 리벤저스>라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재차 과거로 돌아가 고군분투하는 타케미치의 사랑과 갱생 의지가 그러한 감정에 해당하며 몰입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원작 만화가 실사화되는 데는 원작을 다양한 매체의 틀에서 새롭게 경험하기를 원하는 대중의 욕구가 저변에 깔려 있고, 대개 등장인물이 원작과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대중의 1차적 평가인 점을 고려하면, 원작에서 최강으로 그려지는 마이키의 카리스마를 해당 배우가 완벽히 소화했는지에 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것 같다. 또 “나한테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어”, “도쿄 만지회는 개인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팀이야” 등의 대사를 몸을 꼬는 일 없이 받아들일 만한 무감한 관객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CHECK POINT
원작과의 비교
히나타를 구하기 위한 다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매번 자기 뜻대로 바뀌지 않는 현재다. 바로잡았다 여겼던 과거를 지나 도래한 현재는 어딘가 조금씩 비틀어져 있다. 히나타의 연명을 위해 제시되는 과제는 끝이 없고, 현재 25권까지 이어진 원작의 핵심 동력도 여기에 있다. 또 원작에서 드러난 성적 대상화의 장면들이 영화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인다.
TV애니메이션
<도쿄 리벤저스>는 실사화 이전 2021년 4월부터 9월까지 일본에서 TV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선보였다. 총 24화로 구성된 방송은 주인공 타케미치가 중학생인 설정이 그대로인 점을 보더라도 원작에 더욱 충실한 편이다.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과 OTT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일본 학원폭력물의 추억
영화는 지나간 일본 학원폭력물의 계보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다. 이른바 ‘울보 히어로’ 타케미치를 보고 있자면, 마음은 천사인데 외모는 악마인 주인공을 둘러싼 난장판을 그린 <엔젤 전설>, 평범을 거부하는 콤비를 다룬 <오늘부터 우리는!!>과 동일 작가의 <건방진 천사>뿐 아니라 특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학원폭력물의 대명사로 불리는 <상남 2인조>를 읽던 시절의 향수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