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가기 위해 미싱을 탔다. 교복 입은 또래를 향한 부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밤새 실타래를 돌리던 소녀들에게 노동교실은 평범한 10대의 희로애락을 허락받는 공간이었다. 그 유일한 성장의 뜰을 당국이 폐쇄하자 1977년 9월9일, 180여명의 청계피복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교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격렬하게 투쟁했다. 누군가는 뛰어내렸고 누군가는 유리 조각으로 자기 몸을 그었던 이 사건으로 구속되어 감옥에 다녀온 여자들이 있다. <미싱타는 여자들> 속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선생이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일찍이 감옥으로부터 몸은 풀려났으나 그 상처는 쉽사리 해제하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몸과 내면을 기록했다. “객관적 정황보다는 화면 안에서 증언하고 대화하는 당사자들의 표정, 몸짓, 음색 변화에 더 주목해달라”고 주문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은 그 바람대로 “가장 아팠지만 또 가장 빛났던 시절의” 영혼들을 무대 위에 되살려냈다.
-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의 본격적인 발화점은 언제였을까.
김정영 서울시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의 의뢰로 봉제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생애 구술사를 아카이빙한 일이 시작이었다. 일전에 삼풍백화점에 관한 기억을 채록한 적 있었기에 이번에도 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부탁해 박태숙, 이숙희 선생님 등을 처음 만났는데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시절 10대 소녀의 눈으로 각각 새롭게 회고하는 선생님들의 증언이 놀라웠다. 인터뷰 작업을 더 확장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 애초의 계획보다 점점 더 9·9 사건의 중심으로 향해가면서, 그동안 한번도 관련된 기억을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않았던 인물들에게서 처음으로 그 아픔을 전해 듣는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듯하다.
김정영 오랫동안 담아둔 마음의 이야기를 어렵게 끄집어내는 이 순간을 감당할 능력이 내게 있을까, 그 부분이 제작 과정 내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수한 시기, 특정한 지역, 특별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나기보다 대중을 위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혁래 감독님의 공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함께하자고 추가 인터뷰 촬영을 제안한 이후로 그에게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혁래 만들면서 부각하고 싶었던 건 투쟁사 이면에 존재하는 어리고 평범한 10대들이었다. 늘 자기 옆에서 일하는 또래 여자아이를 그저 ‘o번 시다’로 알고 있다가 교실에서야 서로 ‘네가 미자구나, 순자구나’ 하면서 친구가 되었고, 그건 누가 베풀어준 게 아니라 선생들이 직접 싸워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결과적인 실패나 상처를 논하기 이전에 이 자체로 이미 얼마나 좋은 역사인가. 여성 조합원들이 싸워서 스스로 배우고 즐기게 된 기억이 우리 역사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 스크린에 띄워놓은 자료 앞에서 인터뷰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로 대화하거나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등 일종의 무대장치를 적극 활용했다. 연출자가 개입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고민을 했나.
김정영 처음에는 이 노동조합의 투쟁이 갖는 의미를 보다 현재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노동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서사를 접목하려는 시도도 구상했다. 파리바게뜨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러다 이혁래 감독이 청계피복노조에만 집중해도 동시대적 의미가 잘 드러날 거라고 초심을 일깨워주면서 아주 재미있는 포부를 들려줬다. “이번 작업을 <무한도전>처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혁래 우리가 다루는 주제의 무게를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기는 한데, 연출자가 출연자들에게 최소의 상황과 무대를 마련해주고 리액션을 기다리는 예능의 방법론을 빗댄 것이었다. 리액션을 통해서만 튀어나올 수 있는 진실이 있고 그걸 추출하고 싶었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반응, 화면에 새겨진 기운을 통해 ‘진실감’이 전달된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김정영 목표했던 바를 훨씬 넘어선 수위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 날에는 대화 장면을 찍고 나면 모두가 다 진이 빠지기도 했다. <미싱타는 여자들>에서 정식 스탭은 감독인 나와 이혁래 두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대체로 그날그날 도움을 요청한 동료 감독, 스탭들로 채워졌는데 다들 촬영장에 와서 생각지도 않게 함께 우는 경험을 했다. (웃음) 박찬옥, 민용근, 소준문 감독님 등등이었다.
- 초록 가득한 언덕에서 세 여성이 미싱 돌리는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 마지막에는 <흔들리지 않게>를 합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최초에 구상해둔 이미지인가.
김정영 평화시장 옥상에서 무언가 함께하는 모습으로 끝나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9·9 사건이 일어난 빌딩 내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동대문의 지형도가 많이 바뀌면서 현실적으로 옥상밖에 대안이 없었다. 전태일재단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라도 장소 섭외가 가능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스럽다. 엔딩 장면은 실제로도 마지막날에 모두 모여 촬영했다.
이혁래 그 시절 가난한 10대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만족도 높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노래였다. 가장 아픈 기억과 가장 빛나는 순간이 함께 겹쳐져 있는 그 시절을 선생님들이 다시 체험할 수 있게, 직접 40여년 전의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 많은 눈물이 응축된 사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보다도 당사자들의 용기가 강력하게 전염된다.
김정영 선생님들과 한 시절을 보내고 나니 무서운 게 없어졌고 내게도 없던 용기가 생겼다. 5년간의 다큐멘터리 작업 덕분에 살면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다 하게 됐다고 보면 된다. (웃음) 운전면허도 땄고 생애 처음 건강검진도 받았으니까!
- 그렇다면 신작 착수에도 새 동력을 얻었겠다. 차기작 계획은.
김정영 <미싱타는 여자들>처럼 ‘여자들’ 시리즈를 이어갈 작정이다.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고 싶다.
이혁래 <미싱타는 여자들>을 만드는 동안 너무 좋은 분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좀 나쁜 사람들이 나오는 장르 극영화를 만들까 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