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이재규 감독이 말하는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2022-01-29
글 : 임수연
좀비물답게 잔인하지만 사회적 함의 놓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향한 기대감이 심상치 않다. 1월14일 메인 예고편 공개 이후 <지금 우리 학교는>은 역대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장 빠른 조회수 상승 추이를 보이며 ‘K좀비’의 글로벌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처음 기획됐던 것은 아직 <부산행>과 <킹덤> 시리즈가 나오기 이전이었다. 드라마를 제작한 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는 “지금처럼 좀비물이 대세가 되기 전에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말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에서 학원물과 좀비물을 결합한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제작진은 다양한 층위의 고민을 거치며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시리즈의 쇼러너와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의 제작 과정 및 이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한 웹툰 원작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 딱 7년 전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영상화를 처음 제안한 것은 이재규 감독과 연출부 생활을 함께하기도 했던 박순배 필름몬스터 기획 프로듀서였다. “죽음의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어른 혹은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질문은 이재규 감독이 원작을 읽고 일주일 만에 <지금 우리 학교는>을 꼭 드라마로 구현해내리라 결심하게 이끌었다. <부산행>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좀비물은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원작 지적재산권(IP)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간이 1~2년 정도 필요했고, 판권을 구입한 후 천성일 작가가 합류해 각색 작업이 시작됐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온조(박지후)의 아버지가 소방관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등 웹툰에 비해 디테일한 설정이 추가된다. “이미 웹툰에 좋은 이야기와 그림이 있다. 이것을 실사화한다는 것은 소설과 또 다른 부담감이 있다. 웹툰에서 용인되는 이야기와 영상물에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드라마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관계나 주요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필요했다. 기존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져올 것은 가져오고, 설정을 좀더 추가하거나 다른 색을 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좀더 발전시켰다.”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드라마 포맷으로 논의됐지만,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표현 수위에 제한이 있었다. 원래 방송국 편성을 논의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물은 좀비물다워야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기 때문에” 수위 및 제작비 등을 고려해 OTT 플랫폼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부산행>의 좀비들을 알고 있는 학생들

◦ “좀비가 왜 학교에 나와? 영화에 나와야지!” 최근 메인 예고편이 공개된 후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작중 인물들이 좀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특히 해외 시청자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화제가 됐던 영화 <부산행>을 언급한 대사(“It’ s ‘Train to Busan’”)를 “베스트 라인”으로 꼽았다. 이는 “현실의 우리는 좀비물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극중 인물들은 이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진행하는 것이 더 이상할 것 같다”라는 생각에 반영된 세계관이다. 원작 웹툰은 2009년 연재를 시작했지만 드라마는 2021년 10월21일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확산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때문에 “2016년에 개봉한 <부산행>을 학생들이 알고 있다는 설정은 극중 배경을 반영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계급 문제 그리고 ‘학폭’

◦ 역사적으로 좀비 장르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함의와 무관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사회에 만연한 폭력이 바이러스의 창궐과 맥을 함께한다. “연인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 부부간 폭력 그리고 집단적으로 한 인물을 린치하는 상황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 사회를 배경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학교 폭력 문제다. 이재규 감독은 “학교 폭력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커서 성인이 되고, 사회가 여전히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이 소재가 전 연령층에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학생과 그를 무시하는 학생간의 갈등 묘사는 계급 문제를 표면화한다. 그렇게 “한국 사회 내 극단적인 상황을 학생들의 세계에 끌어와 갈등을 표면화시키는 과정에서 계급 문제나 학교 폭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는” 소재가 된다. 이재규 감독은 “좀비 바이러스가 인간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끝내는 것 역시 인간이 되어야 한다. 폭력과 시스템의 부조리를 원망하는 인간이 이를 반격하고자 만든 바이러스는 과연 희망의 씨앗일까 혹은 절망의 시작일까” 라고 덧붙였다.

어른스럽지 않기에 어른들보다 나을 수 있는

◦ 좀비 바이러스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설정값이다. 이재규 감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렇게 “영웅이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이 인기 있는 시대”에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생들이 작은 히어로 혹은 안티히어로가 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좀비에 대처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어른들의 그것과 대비된다. “그들은 어른보다 더 직접적, 순간적, 즉물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애들이 안됐다’거나 ‘어른스럽지 못하다’라고 하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정말로 어른스럽지 못한 것인지, 우리가 스무살이 되면서 잃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교육 시스템에 억눌린 학생들은 좀비와 다르지 않다

◦ 정해진 등교 시간 안에 교문을 통과하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달리기를 준비하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떼를 지어 이동하는 학생들은 좀비들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의도된 연출이다. “목동에 살 때 베란다에 서서 김밥 옆구리 터지듯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늘 안됐다고 생각했다. 좀비에게 공격당하는 아이들은 원래도 좀비처럼 살고 있었다는, 일종의 복선처럼 작용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한국 교육 시스템의 억압적인 환경은 좀비 장르 문법에서 새로운 변주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학생들이 휴대폰을 강제 반납해야 하는 규율은 한국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영미권에서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를 후시녹음 과정에서 추가”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대걸레로 좀비에 맞서다

◦ 역시 젊은 학생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성급한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해 ‘K좀비’들은 유독 빨리 달린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들은 어쩐지 더욱 힘이 넘친다. 대다수의 좀비물이 그러한 것처럼 “기존에 갖고 있는 능력치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10대 특유의 에너지가 액션에도 반영됐다는 것이 이재규 감독의 설명이다. 가령 운동부 학생이 좀비가 되면 더 강력한 힘을, 더 빠른 달리기를 보여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소리에 민감하지만 시각적으로는 형체나 밝기 정도만 구분할 수 있는, “죽은 인간이 아닌 죽은 동물에 가까운 형태”의 움직임으로 역동성을 더했다. 이들에 맞서는 학생들은 총으로 좀비를 제압하는 서양의 좀비물과는 다른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 극 초반에는 좀비를 밀쳐낸 후 시간을 버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던 주인공들은 점점 대걸레, 활과 화살, 칼 등의 도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또한 <부산행> 등의 좀비영화를 통해 좀비의 습성을 학습했기 때문에 그들이 소리에 민감해한다거나 뇌관을 파괴하면 죽일 수 있다는 등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이 보여주는 것은 화려한 액션보다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느낌에 가깝다. 싸움을 잘하는 설정을 가진 수혁(로몬)은 “캐릭터의 매력을 좀더 보여줄 수 있는 액션과 막싸움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갔다.

현장감을 끌어올리는 롱테이크 촬영

◦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야심이 느껴지는 롱테이크숏들이 초반부터 여러 번 등장한다. 이는 테크닉을 과시하는 촬영이라기보다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리얼리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는 시작 3분 정도는 이게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아예 구분되지 않도록 찍어보자는 욕심도 있었다. 내지는 1~2부는 그 기조를 유지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면 조명은 포기해야만 한다. 상업 드라마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되기 때문에 대신 현장감을 줄 수 있는 숏들을 고민하게 됐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는 초반부를 비롯해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매회 한두번 정도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이 등장한다.

얼마나 잔인할까?

◦ 주동민 작가는 이재규 감독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감독님, 제발 잔인하게만 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예고편을 보고 “이것만으로도 모든 게 해소됐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이재규 감독은 좀비물다운 표현 수위는 보여주되 지나치게 잔인해서 마니아들만 즐기는 좀비물로 만들지는 않으려고 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상황의 잔인함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적당한 수위를 맞춰나갔다. “비디오 심의 결과 폭력성·대사·공포·약물·모방위험 등 5개 항목에서 ‘높음’을 받았지만, 주제 면에서는 15세이상관람가에 가깝다. 전체적으로는 16.5~17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학교에서 악마적인 공간으로

◦ 호러영화에서는 현란하고 변화무쌍한 공간보다는 폐쇄된 곳이 주로 등장한다. 그중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학교다. 하지만 이재규 감독은 촬영하는 입장에서 “학교는 자칫 그림이 단조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기에 고민이 많았다고 전한다. “어떻게 하면 이를 더 강렬하고 지루하지 않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공간마다 다른 색을 부여하되 전반적으로 영어덜트·학원물다운 발랄한 색을 썼다. 강한 원색은 아니지만 비비드한 컬러로, 경계에 가까운 혼합색을 써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에 있는 인간 군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학생들이 입는 교복은 피와 대비되게끔 가라앉은 녹색으로 설정됐다.” 드라마 초반에는 학교 건물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카메라워킹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이 공간이 곧 좀비들에게 침범당하고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일종의 복선이다. 아이들에게 아주 일상적이고 성스러웠던 공간이 악마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작중 배경이 되는 효산고등학교는 길이 90m, 2~4층 높이로 제작한 세트로 구현한 것이다.

10대 관객을 대상으로 한 대본 모니터링

◦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이 10대의 세계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제작진은 몇 차례 검증을 거쳤다. 청소년들이 쓰지 않는 말이나 반응을 걸러내기 위해 10대를 대상으로 대본 모니터링을 진행했고, 현장에 있는 학생 배우들에게도 의견을 자주 물었다. 하지만 전체 세대를 아우르는 보다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모든 피드백을 수용하진 않았다. “핍진성은 어떤 문화나 관습 체계 안에서 정의된다. 가령 요즘은 교장 문패를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극중에서는 이를 등장시켜야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또한 제작진은 고등학교 2학년의 생태계를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16살부터 20대 초중반까지의 젊은 배우를 기용했고, 이들이 진짜 친구처럼 보이게 하려고 촬영 전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자주 마련했다. 다른 배우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역을 바꾼 대본 리딩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면 배우들 사이에서 스파크가 튄다. 분량이 적었던 배우가 큰 역할을 연기하게 되면 욕심이 생겨 열정적으로 연기한다. 그러면 서로에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들의 관계가 굉장히 견고해졌다.”

인지도보다는 캐릭터 근접도를 염두에 둔 캐스팅

◦ 주요 성인 캐릭터를 제외하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얼굴을 과감하게 기용한 시리즈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제작진이 만들고 싶었던 배역에 가장 근접한 배우를 찾은 후 실제 배우와 캐릭터를 믹스시킬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한다”는 목표를 두고 오디션을 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캐릭터가 되려고 했던 배우들도 점점 자신이 곧 그 캐릭터와 동일하다고 믿고 접근해서 더 편하게 연기했다”는 것이 이재규 감독의 설명이다. 그 결과 대중에게 이미 각인된 색깔이 없는 배우들은 실제 효산고등학교 학생들처럼 보인다. 온조 역의 박지후는 “관찰자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요즘 평균의 여자 청소년을 대변할 수 있는” 얼굴이기에 제작진의 선택을 받았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온조가 내 동생이나 딸, 누나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를 보면 청산 역의 (윤)찬영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며 “오디션 당시 1분 만에 ‘당신은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요즘 친구들 같지 않게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반응하는데, 이런 배우가 흔치 않다”고 배우의 앞날을 응원했다. 수혁 역의 로몬과 남라 역의 조이현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배우들”로 소개했다. 이중 누군가는, 혹은 많은 이들이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의 뒤를 이을 월드 스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재규 감독이 말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 감상 팁

“평상시보다 사운드를 20~30% 크게, 방의 조명 혹은 화면을 조금만 어둡게 하면 훨씬 더 흥미롭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세번까지는 계속 반복 감상해도 재밌을 거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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