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대만 청춘영화의 정석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2022-02-09
글 : 홍은애 (영화평론가)

샤오룬(커전둥)은 동네에서 농구 시합 도중 벼락을 맞아 쓰러지고 눈을 뜨니 저승에 와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승의 모든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그의 손목엔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염주가 채워지고, 흰색 염주를 가진 자만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규칙에 따라 샤오룬은 검은 염주를 흰색 염주로 바꾸기 위해 ‘월하노인’(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사랑의 신) 역할을 지원한다. 하지만 월하노인이 되려면 빠르게 사람과 사람에게 붉은 실을 연결해줘야 하기 때문에 자질을 검증받기 위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그러려면 반드시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그는 같은 시기에 저승에 온 핑키(왕정)와 파트너가 되고, 힘겹게 테스트에 통과해 이승에 가 커플을 매칭해주는 임무를 맡는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이승의 인간들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주고 흰색 염주를 채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샤오룬은 샤오미(송운화)와 마주치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다. 샤오룬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샤오미의 근처를 맴돌고, 핑키는 그런 샤오룬을 못마땅해하면서 그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 귀두성(유민 보야)은 500년 전에 있었던 원한을 풀기 위해 저승을 탈출해 인간세계에 온다. 귀두성의 등장으로 샤오미는 위험해 처하고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샤오룬은 귀두성과 맞서지만 열세에 몰린다. 마침 저승에서 귀두성을 쫓아온 두 사자(우두와 마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다. 샤오룬은 샤오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연을 이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그녀 앞에 다시 귀두성이 나타나고 저승사자마저 귀두성의 힘에 밀리고 만다. 위기에 몰린 샤오룬에게 전생(500년 전)의 기억이 떠오르고 샤오미를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와 <몬몬몬 몬스터>(2017)를 연출한 구파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그의 동명 소설 <월노>(月老)를 영화화했다. 구파도 감독은 사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유명한 소설가였다. 그의 전작품은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 감독은 이번엔 데뷔작의 풋풋하고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에 ‘월하노인’의 민담을 추가해 판타지 로맨스 장르로 확장했다. 여기에 코믹 요소를 가미해 자칫 사후세계의 관습에 빠지기 쉬운 서사에 새로움을 선사한다. 염라대왕은 러닝 셔츠 차림으로 등장하고, 샤오룬의 염주는 데이터 오류로 스캔에 실패하고, 환생의 방법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미지로 보여주는 식이다. 다만, 주요 인물에 집중했던 전작과 달리 500년 전의 복수를 위해 악귀가 돼 등장하는 인물(귀두성)로 인해 긴장감과 볼거리는 풍부해졌지만 서사의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영화의 밀도를 느슨하게 만든 것은 아쉽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는 대만 청춘영화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주인공 커징텅 역의 커전둥이 샤오룬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키는 허당 매력을 발산한다. <나의 소녀시대>의 린전선 역으로 매력을 마음껏 발휘한 송운화는 샤오미 역으로 돌아와 한 남자만을 그리워 하고 사랑하는 애틋한 감정을 지닌 인물로 열연하고, <반교: 디텐션> 의 왕정은 코믹하고 발랄하지만 내면에 아픔을 간직한 핑키를 선보인다. 이들 외에도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코믹한 케미를 보여준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21년 부천판타스틱영화 제와 타이베이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대만금마장영화 제에서 시각효과상, 분장/의상디자인상, 음향효과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CHECK POINT

월하노인이 되기 위한 테스트

1단계는 일정한 거리에서 마네킹의 손목에 붉은색 고리 던지기, 2단계는 움직이는 인물로 바뀌고, 마지막 3단계는 파트너와 함께 정해진 시간 안에 움직이는 인물의 손가락에 붉은색 고리를 던져 끼워넣기다. 샤오룬이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데 1년이나 걸렸을 정도로 월하노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사후세계의 소품들

샤오룬이 사망한 후 저승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공간은 죽은 영혼을 심판하는 잡동사니들로 가득찬 창고다. 책상 위에 16 비트 구형 컴퓨터가 놓여 있고, 전생의 선행과 악행을 확인 하기 위해 배정받은 염주를 스캔하는 기계도 보인다. 환생하는 영혼들은 기억을 삭제하기 위해 자판기의 망각 우유을 뽑아 마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간세계로 이동한다.

엔딩 크레딧의 반려동물 사진

영화에는 샤오룬의 반려견이자 샤오미와 재회를 이뤄주는 강아지 아루가 등장한다. 또한 죽은 영혼이 인간세계로 환생 하기 위해서는 흰색 구슬의 숫자에 따라 가장 낮은 단계의 매미에서 작은보호탑해파리, 달팽이, 바퀴벌레, 카멜레온, 박쥐, 뱀, 비둘기, 돼지, 바다거북, 곰, 돌고래, 원숭이, 개, 사람, 고양이까지 순서가 정해진다. 제작진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동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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