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도깨비 깃발>(이하 <해적2>)은 지향점이 확실한 영화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유머로 무장해 설 연휴 극장가를 찾은 가족 단위 관객에게 최대한의 만족감을 안기는 것이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정훈 감독의 생각도 뚜렷했다. 현실에서 두 아이의 아빠라는 그는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호쾌한 어드벤처물을 떠올렸다. <해적2> 개봉(1월26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감독을 만났다.
-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이 이끌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1>)과 배우 라인업부터 배경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액션과 비주얼, 유머로 승부했던 전편의 태도는 계승한 듯하다. 대중영화로서 <해적2>의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했나.
= 전편도 액션 활극이었지만 이번 영화는 어드벤처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유머 코드에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임팩트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바다 밑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을 담아보자는 목적을 갖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눈높이에 맞춰 만든 유머도 있다.
-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영화에는 여러 리더가 나온다. 이방원, 최영, 의적단을 이끄는 무치(강하늘), 해적단을 이끄는 해랑(한효주), 역적 부흥수(권상우) 등등. 부흥수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기 단원들을 희생시키는 리더이며, 이를 보고 무너진 무치 같은 리더도 있다. 해적왕을 꿈꾸는 막이(이광수)는 이기적이다. 해랑은 책임감이 강하고, 무치는 희생이 중요하기보다는 같이 살아야 다음을 모색할 수 있다는 쪽이다. 둘의 입장은 다르지만 결국 <해적2>는 해랑이 무치를 리더로 인정하는 과정을 로맨스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 혹시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줬나.
= 중요한 장면을 준비할 때 과연 우리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까를 항상 질문했다. 8살짜리 딸은 재밌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이해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웃음) 10살 된 큰아이는 굉장히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영화를 거의 100% 이해했다. 그래서 이건 10~11살만 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보물 찾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중장년 관객에게도 유년기에 본 어드벤처물에 대한 향수가 있다.
= 한국영화 중에선 어드벤처물이라고 딱 떠올릴 만한 작품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 보고 자랐던 보물 찾는 어드벤처물들, 가령 <구니스>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 본 <보물섬>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떠올렸다.
- 해적선의 비주얼을 구현할 때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나.
=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물론 <해적1>까지 기존 해적물들을 참조했지만 특정 작품을 떠올리기보다는 바다와 범선에 관한 모든 영화와 이미지를 염두에 뒀다. 과연 배가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있을까? 이게 고민의 시작점이었다. 고려는 아라비아 상인과 무역하는 등 여러 문물이 뒤섞인 시대였다. <해적1>에도 서양의 돛대를 단 배가 나온다.그렇다면 이번에는 아예 국경 없는 해적을 컨셉으로 잡고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배를 만들어보자고 논의했다. 고증을 위해 당시 배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얼핏 보면 <해적2>의 해적선이 서양의 배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배 앞 문양이라든지 한옥의 아름다운 선을 녹여낸 동양의 정서를 찾아볼 수 있다.
- 주요 배역들의 비주얼은 어떻게 결정됐나.
= 의적들의 의상은 기본적으로 패전병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무치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고려 무관이었을 때 장착했던 보호 장구가 반쯤 찢어진 채로 남아 있다. 영화 초반에 다른 도적들을 속였다가 상투가 잘리는 바람에 머리가 짧아졌다. 해적들은 국경이 없기 때문에 서구의 다양한 문물이 의상 속에 섞여 있다. 어떤 캐릭터는 중동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해랑은 아라베스크적인 이미지도 있다. 의상은 남성화된 카리스마나 여전사의 전형적인 이미지보다는 자연스럽게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컨셉을 잡았다.
- 막이를 보면 <원피스>의 우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웃음)
= 사실 그 방향으로 확 밀고 나간 적은 없다. 그런데 뭘 해도 우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광수씨가 키가 크고 코도 길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탐라 귀족이었던 부흥수는 캐릭터의 무게감을 잘 살릴 수 있는 의상을 선택했다. 그렇게 캐릭터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의상들을 만들었다.
- 총제작비가 200억원대인 작품의 프로덕션을 운용하는 과정은 어땠나.
= 구체적인 운용은 프로듀서나 제작사 대표님이 훨씬 잘 알 부분이고, 현장에서 촬영하면서는 20억원짜리 영화나 200억원짜리 영화나 찍는 건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것은 이만큼 있는데 그 안에서 허용되는 것은 늘 적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한다. CG와 최첨단 카메라, 조명기, 배 제작에 투입된 비용이나 배를 움직이는 짐벌에 많은 돈이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날 찍어야 하는 분량은 무조건 그날 완료하는 것이 중요했다.
- 보물이 숨겨져 있는 ‘번개섬’의 디자인에 대한 고민도 많았겠다.
= 코로나19 이전에는 사실 해외 로케이션을 계획했었다. 실제 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팬데믹이 시작됐고,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화산섬이라면 ‘불의 고리’ 어딘가에 있을 테고, 그렇다면 역시 제주도가 적절했다. 단층 구조나 현무암이 두드러지는 공간에서 촬영을 많이 했다. 영화 속 번개섬의 모습은 CG와 실제 제주도의 풍광이 함께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