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광고인의 영화 만들기, '온 세상이 하얗다' 김지석 감독
2022-02-17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광고를 만들다가 영화 연출에 도전한 김지석 감독의 데뷔작 <온 세상이 하얗다>는 익숙한 영화문법의 테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 불쑥 튀어나오거나 전후 맥락을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 등장하는 식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경한 리듬인데 그것이 엔딩의 진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돌고래유괴단 출신으로 광고 촬영 현장에서 영화를 품어왔던 그에게 첫 장편 작업을 마친 소감을 물었다.

- 알코올중독 치매 환자라 할 수 있는, 기억을 자주 잃는 남자와 그 앞에서 계속 거짓말을 하는 여자가 각자의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죽음을 향해 떠나는 이야기다. 어떤 의도에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나.

= 영상 전공자는 아니지만 광고를 만들다 보니 주변에서 영화 연출을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30대를 지나오면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이야기로 엮어보자 생각했다.

- 매일 죽고 싶어 하는 모인(강길우)이 본가인 태백으로 허언증이 있는 화림(박가영)과 함께 떠날 때, 두 사람은 통일 소식을 라디오 뉴스로 접한다. 시대 배경을 통일을 맞이하는 가상의 2023년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 두 주인공이 자살하러 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을 겪었으면 하는 막연한 상상에서 강도도 만나고 법당에 들러 점괘도 보는 이야기를 넣었다. 그러다 둘이 외부와 감정적으로 차단된 상태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통일 소식을 떠올리게 됐다. 통일이 되든 말든 아무 상관없다고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돌고래유괴단을 거쳐 영화 연출을 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 처음에는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와중에 광고 촬영 현장에서 문득 현장의 에너지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다가 돌고래유괴단 구인 공고를 보게 됐고 조감독 생활을 3년 정도 했다. 입봉작인 ‘롯데렌터카’ 광고를 만들면서 동시에 첫 장편을 만들었다.

- 단 5회차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 주말을 활용해서 찍었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준비 기간은 3개월 정도 걸렸고, 서울 2회차, 강원도 3회차에 나눠 찍었다. 광고 현장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스케줄과 동선 짜는 법을 익혀둔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 인원 규모도 최소화해서 촬영팀 2명, 조명팀 2명, 음향팀 2명, 연출부 4명이 차량 두대로 나눠 다녔다.

- 제작비는 어떻게 조달했나.

= 지원을 받지 못해 자비로 만들었다. 제작비를 몇백만원 정도로 예상했는데 어림도 없는 금액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나중에는 불어나는 액수에 손을 놓다시피했지만 광고 일을 하면서 벌어 썼다.

- 광고와 영화 연출을 병행할 계획인가.

= 그렇다. 지금은 회사를 나와 혼자 일하고 있고, 영화 아이템을 구상 중이다. 종교에 관한, 미스터리한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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