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감독 인터뷰
2022-03-17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수학과 인생은 연결되어 있다

‘수포자’들은 왠지 마음의 벽을 쌓게 되는 소재와 제목일 수도 있지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굿 윌 헌팅>이나 <뷰티풀 마인드>처럼 수학을 가교 삼아 삶의 용기를 전하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대한민국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이곳에서는 밤이 되면 또 다른 수업이 시작된다.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동훈고등학교에 입학한 한지우(김동휘)는 유독 수학에 약해 전학을 권유받을 만큼 고전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를 찾아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은 그의 정체를 숨기고 동훈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지우는 학성이 자신의 수학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랜만에 장편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을 만나 수학과 휴먼 드라마가 어떻게 교합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 상위권 학생들의 입시 전쟁과 시험 비리에서는 드라마 <SKY 캐슬>이, 학생과 스승의 교감에서는 <굿 윌 헌팅>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실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의식했나.

= 내가 시나리오를 받은 건 2018년 8월이었다. 3~4년 동안 준비했으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SKY 캐슬>보다 먼저 시작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구스 반 산트의 <굿 윌 헌팅>이나 <파인딩 포레스터> 두 작품을 잘 응용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영화들은 모두 당연히 참고해야 하기에 다시 찾아서 봤다. <뷰티풀 마인드>나 <굿 윌 헌팅>, 수학을 다룬 건 아니지만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면 전문적인 지식을 긴 시간 열거하는 장면은 굉장히 짧다. 오히려 주인공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교감하는가에 집중하지 수식이 많이 나오진 않는다. 학성이 수업이 이루어지는 ‘과학관 B103’에서 만끽하는 즐거움이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딱 지금 정도만 수학이 등장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수학의 비중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수식인 오일러 공식 역시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원주율 파이의 소수점 숫자를 계이름으로 옮긴 ‘파이송’ 등이 수학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구체적인 소리의 예술로 옮겨내는 역할을 한다. 왜 바흐의 곡을 선택했나. 그리고 이지수 음악감독과 파이송을 만들 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 수학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은연중에 수학이 언제 어디서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음악 역시 수학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를 직관적이고 세련되게 디자인하기 위해 피아노로 파이송을 연주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실제로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파이송도 있는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쓰인 곡은 즐겁고 귀에 잘 들어오게끔 다른 박자와 호흡으로 새로 작업했다. 가장 무난한 연출 방식대로라면 피아노 연주는 20초 정도만 하고 O.S.T가 들어오겠지만, 현장에서 파이송을 직접 들으며 완곡을 모두 들려줘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바흐의 첼로곡도 시나리오 단계부터 있었다. 바흐 이전에 사용했던 피타고라스의 음계는 옥타브가 넘어갈수록 동일음이 유지되지 않고 오차가 생긴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는 한 옥타브에서 균일하게 나눈 음계를 쓸 수 있게 한다. 바흐 자체가 수학자의 면모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바흐의 곡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 수학이라는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소재와 따뜻한 휴먼 드라마 사이의 연결 지점을 어떻게 찾아갔나.

= 구름다리 위에서 학성이 지우에게 용기에 대해 말한다. 한 소년을 오랫동안 지켜본 후 그에게 조언하기 위해 꺼낸 이야기다. 태생적 수학 천재로서 학성이 생각하기에 용기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요구하는 태도다. 지름길로 가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은 수학에도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이 수학과 인생을 잇는 연결고리가 된다.

- 최민식 하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아니었다. 이번 영화에서 최민식은 조금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명불허전 최고의 배우인 최민식과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

= 개인적으로 90년대부터 최민식 배우를 좋아했다. 오래된 ‘찐팬’이다. <해피엔드>를 보면 다용도실에서 쭈그려 앉아 우유팩을 사각사각 섬세하게 자르는 컷이 있다. 최민식은 이러한 생활 연기도 굉장히 잘하는 배우다. 그래서 경비실에서 연필을 깎는 뒷모습이라든지 경비복을 입고 고등학생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흥분됐다.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굉장히 명확하다. 스스로에게 어마어마하게 솔직하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에는 몸이 반응하고, 특유의 눈빛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가공된 연기에서 진짜를 보여줄 수 있다.

- 2007년 개봉작 <소녀×소녀>는 은근히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영화다. 학생들이 등장하는 건 같아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와는 많이 다르다.

=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했던 산학협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기술적으로나 제작비 면에서나 아쉬움이 많다. 2주 동안 프로모션형 개봉을 했다. 당시 많이 위축돼 있었는데 달시 파켓 평론가가 별 3개 반을 줘서 굉장히 고마웠다. 얼마 전 듀나 평론가가 “티빙에 <소녀×소녀>가 없는 건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라고 쓴 글도 봤다. (웃음)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두 작품에는 유사점이 있다. <소녀×소녀>는 어떤 교훈보다는 모범생과 일진이 일탈을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만든 영화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학성과 지우 역시 일상에서 벗어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일탈을 한다. ‘우리, 즐겁게 놀아보자’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임신부 액션영화. 어쩌면 시리즈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재앙이 닥쳐 한반도가 고립된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 공군이 아기를 지키기 위해 한국을 탈출하는 이야기다. 주인공과 AI 로봇, 어머니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하는 로드 무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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